2011년 7월 21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 예배 (Worship)




하나님의 '복(바라크)'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그 복을 '하나님의 영광'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인 영원한 생명력을 상실한 우리 인간들은, 목이 마르는 갈급함을 항상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끝은 죽음으로 결말이 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죽기 위해 태어나며, 태어난 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눈과 귀가 멀어버린 세상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자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야 할 그들의 목마름을, 세상의 것들로 해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라고 다를까요?
예수님을 알기 전의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목마름을 해갈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들로, 돈, 명예, 이성, 술, 마약, 도박, 취미, 운동, 권력, 철학, 인기 등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일생을 허비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더욱더 가중되는 목마름에서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왜 목마름이라는 갈급함과 갈망을 남겨두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목말라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 목마름은 우리를 향해 은혜를 부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생명력이 끊어져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하나씩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 하나님의 갈증은 해갈되는 것이고, 우리도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끊어졌던 생명력이 회복되어 비로소 갈증이 해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엉뚱하게도 세상의 것들로 그 갈증의 해갈을 변이시켜 버렸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셔서, "내가 목이 마르니 물 좀 주겠느냐?"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남편을 자기가 의지할 세상적인 힘으로 오해하여 다섯이나 갈아 치우는 그 여인에게, 영원히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하시고, 진정한 참된 예배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유대인이 짐승처럼 여기던 사마리아인, 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천대받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던 죄인인 여인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셔야만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 "내가 목이 마르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는 목마름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예수님 자신이 그 목마름이 되셔서 죽으시고, 우리에게 해갈을 선물하실 것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약속하심으로, 우리의 해갈의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또한, 남편을 데려 오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의 잘못된 해갈의 방법을 폭로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우리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 잘못된 해갈 방법 중에서 가장 악하게 변이된 것이,
'그릇된 예배' 입니다.

보통, '예배' 라고 하면 기독교의 공적 예배의식을 떠올리게 되는데, 예배(Worship)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정의는, 자기가 가장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 자기 인생의 중심에 올려놓는 행위를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자기자신의 해탈을 위해 부처를 예배하며, 이슬람도 하루에 다섯번씩 메카를 향해 절을 하면서 알라를 예배합니다. 힌두교도 그들의 무수히 많은 신들을 예배하고, 심지어 무신론자도 자기자신을 예배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어떤 힘있는 존재의 도움을 구하는 수단으로 만들어 진 것이므로, 결국 그들이 섬기는 것은, 그들이 부르고 경배하는 그들의 신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목마름을 해갈하는데 필요한 '어떤 것' 인 것입니다.

그 '어떤 것' 이 나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유익을 준다면, 하나님이든, 부처든, 알라든, 어떤 이름을 가진 신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우상숭배' 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우상(Idol)' 의 정의가 명확하게 나옵니다.

(출애굽기 32:1,4)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 중 두번째 계명에도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따라서, 자기의 욕망과 욕심을 위하여 예배하는 대상은
모두 다 우상입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가장 가치있는 자리에 올려드리고, 그분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을 찬양하는, 예배하는 피조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올바른 예배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시고, 타락한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들을 은혜로 구원해 내셔서, 그 은혜를 깨달아 가는 가운데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는 자로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 감격스럽지 않으십니까!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고만장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한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인 율법을 주셨는데, 우리 인간들은 전혀 지키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지킬 능력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탁월한 유대인들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가 증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바른 예배자의 자리로 갈수 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우리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참된 예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같이 되려 했던 '아담(Human)' 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흙에 불과한 허무한 존재임을 깨달은 '아벨(Vanity)' 의 자리로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으면 절대 행복할 수도, 만족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자기가 노력하여 이룩한 결과로 말미암아,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드려지는 그릇된 예배의 표본이, '가인' 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냅니다. 그 다음의 행동은 동생 '아벨' 을 때려 죽입니다. 결국, 그릇된 예배자의 삶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를 항상 때려 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말로,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의 삶은 이 땅에서 힘의 원리로 살아가는 그릇된 예배자에게 맞아 죽는 삶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게 된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정해진 장소와 제사와 같은 방법에 의해 예배가 드려지는 것을 폐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렇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의 우리의 모습이 구약과 신약에서 다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의 모습은 바뀔 수가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자기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흠 없는 대속제물인 어린양을 가지고 나아갔던 것이고, 신약에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흠 없는 대속제물이요,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케 하신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성령세례를 받은 자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제물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에서 계시된 모형들의 실체(Reality)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죄없는 화목제물로 드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왕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계시되었던 구약의 성전과 제사와 절기들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지성소에 이미 들어간 자들이 되었으므로, 양을 죽여 각을 떠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고, 매번 절기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버린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흩어지는 것입니다.

땅끝이 어디일까요?
우스개 소리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다 보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땅끝이겠지요.

(히브리서 9:23-26)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조물은
이런 의식으로 깨끗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하늘에 있는 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사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성소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고 하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애시려고 시대의 종말에 오직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 안에 들어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지성소가 되어 버린 우리 안에서 천국의 실체인 예배가 항시 드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흠없는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체이신 예수를 제물로 바치는 삶,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흠없는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죽여 가십니다. 그 제물은 우리의 노력과 열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만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흠 없는 제물이신 예수님의 성품과 죽기까지 순종하신 삶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내가 한 것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명령을 죽기까지 순종하는 증인의 삶, 곧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가는 삶이, 진정한 참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인격과 우리 성도의 인격이 만나 교제하는 모습이 형식으로 드러나는 모습인 것입니다. 참된 예배를 통해서만이 사랑이 나오고, 교제와 봉사가 나오고, 구제와 섬김이 나오고, 전도와 선교가 나옵니다.


오늘 날까지도 유대인들 곧 율법주의자들이 안식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자유' 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움, 그 '자유' 를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을 영원한 사망을 대신 짊어지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죽은 자 가운데 첫 열매가 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선물로 거저 주셨습니다.

영생은 영원히 사는 생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사니깐요.
영생은, 죽기까지 자기를 비워 다른 이들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이신 그 '사랑' 입니다.
곧,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그 선하신 일을 기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찬양하고, 찬송하고, 예배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들의 매일매일의 순종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로마서 12: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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