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7일 일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2)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차이는?




우리 안에 계시는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어떤 때는 세례로 임하시고 어떤 때는 충만으로 임하시는 걸까요?
이 질문 안에 이미 답이 들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신 분들이 계실겁니다.

세례(침례)의 어원인, "Baptizo" 는 원래 몸이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자기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회심한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죽고 다시 살아난 것을, 교회들에게 공적으로 알리는 예식입니다.

초대교회 이전부터 보통 강이나 호수같은 깊은 물에서 대중앞에서 침례를 행했으므로, 박해 때에는 목숨을 내놓고 침례를 시행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인 죄인임을 시인합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님이요 구원자로 시인합니까?
당신은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아뭏든, 단 한번 주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게 하는 '성령세례' 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효과적으로 살게 해 주는 '성령충만' 에 관해, 기독교인들 중의 대부분이 혼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의 능력과 충만을 알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 순종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가운데 충만케 되며, 우리의 삶은 그분께서 맺어가시는 열매로 풍성케 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성령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고린도전서 6:19),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몸 가운데 거하고 계신다(고린도후서 6:16)"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성령의 약속은 이미 우리에게 충만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항상 구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항상 주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의 모습은 정말정말 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죽어 있던 먼지만 풀풀 나던 마른 뼈들이,
하나님께서 생기(성령)를 넣으시고 눈을 뜨게 하시니 새살이 돋아있고 살아있는 교회로 되어 있더라는 것이 성경의 진술입니다.

지금도 아볼루온이 던지는 불화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는 않는지, 믿음의 방패가 손에 들려 그 불화살을 막아내고 있는지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마귀가 "너는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그러니 천국에 갈려면 잘 선택해봐. 잘못되면 낙오할지도 몰라." 라고 미혹할지라도,
"아니야, 예수님께서 이미 나와 동행하고 계시니, 나는 안전하다!" 라고 사망을 야단칠 수 있는 담대함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통제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순종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우리는 주변에서 예수를 잘 믿다가 배교하신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집도 타겟인지, 모 이단단체에서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오시는데, "예수 믿으세요" 하고 방문하시는 그 분들께 저와 아내가 드리는 말은, 한결같이 "예수 믿으세요" 입니다. 같은 두말 사이에 벌어져 있는 간격이 느껴지십니까!

지난 번에는 평생을 예수 잘 믿다가 느즈막에 이단으로 배교하신 노부부께서 방문하셔서, 그분들이 알고 계시는 '예수'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런 분들의 열심은 왠만한 어른이라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열정과 헌신을 동반합니다. 그분들이 가신 후에, 한동안 저와 아내는 마음이 아파서 서로를 바라볼 뿐입니다.

예수를 바로 알고 믿는게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죄인들인데도 어떤 이들은 유기시키시고 어떤 이들은 택하셨는가?
이런 질문들로 심신이 피곤해지기까지 바닥까지 내려갑니다.

(디모데후서 3:6-8)
"그들 가운데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여러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에 짓눌려 있고,
언제나 배우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전혀 이를 수 없습니다.
또 이 사람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배반한 것과 같이,
진리를 배반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요, 믿음에 낙오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 즉,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결국 떠나가는 자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영' 이 함께 하시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일년 후, 오년 후, 십년 후, 죽기 전에 어떻게 되어 있을까 생각하면 정말 두럽고 떨림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더욱더 하나님을 붙잡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실 중의 하나는, 이미 성취된 아래의 두 진술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베드로가 말씀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2:9-10)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이 몸이 되어서,
충만하게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의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

(베드로후서 1:3-4)
"그리스도께서는 신적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불러 주신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충만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베드로후서 1:2)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디모데후서 3:15-17)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유능하게 하고,
온갖 선한 일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나님의 복을 다시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복(바라크)은 곧 '영생' 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자, 왕중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영접한 후로, 세상사람들이 즐기는 세상 풍속과 죄의 유혹과 사망의 권세 아래로 다시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한번 가진 신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보혈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보혈을 입어 사망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자들은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 딸을 그냥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로 확인이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떠한 고난, 환난, 징계조차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이 미워서 때리는 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 다 잘 되라고 때리는 '사랑의 매' 인 것을요...

우리는, 영생을 얻은 자, 다른 말로 신적 성품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자녀' 라는 신분(Authority) 에 맞게,
우리에게 주신 역할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이 땅의 나그네요 순례자의 여정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경주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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