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8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34) 성도의 고난 (Long Suffering)



마가복음 4장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등불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로 이어지는데,
그 모든 비유가 다 천국의 비유들이고,
그 끝에 결론으로 풍랑 속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사람들은 풍랑 속에서 하늘에 머리를 두고 잠을 잘 수 있는,
이 땅의 힘과 가치에 부하뇌동하지 않는 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비유가 나열되고 있는 거기에 풍랑의 이야기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풍랑 속에서 주무신 것은, 하늘을 배게 삼아 주무시는 주님의 안식은
이 세상의 그 어떤 풍랑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밝히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함께 옆에 있던 제자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주님을 깨우는데,
그 때 주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믿음이 없는 자들아" 하시면서 제자들을 호되게 꾸짖으십니다.
풍랑으로 다 죽게 된 상태에서 스승을 서둘러 깨우는 제자들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했다고
믿음이 없는 자들로 몰아붙이십니까?

그것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일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제자들과 교회에게 '믿음' 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사건에 집착하여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풍랑 속에서도 하늘의 소망을 굳게 잡고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강 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믿음이 없는 자라고 호통을 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삶 속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고난과 모함과 시험들을 대하면서
자신이 부인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하늘 소망으로 말미암아 

안식 안으로 들어가 가만히 거하는 것이지
그 고난을 잠잠케 해 달라고 그 풍랑 속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그 예수를 깨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게 불신앙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조르기 전에
그 문제 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없는 나의 불가능함을 고백하는 기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 있는 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믿음은 풍랑을 없애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 잠자는 데에 필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를 나열해 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이 발전시키고 쌓아놓은 역사와 문명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과학과 문명이 이렇게 발전을 했는데,
전쟁과 시기와 다툼과 모함과 배신과 억지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세상은 점점 살기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자살율은 점점 높아져 가고, 사람들은 더욱 더 살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범죄는 더욱 흉악해지고 인심은 점점 피폐해져 갑니다.

밤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도 힘들어지고 가정집에도 보안 장치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묻지 마 살인’ 과 ‘묻지 마 불륜’, 아버지가 친 딸을 강간하고, 아들이 어머니를 난자해서 죽이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공해로 인해 마실 물이 사라져 가고,
새로운 전염병이나 신종 플루 등이 속속 의학계에 새로이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10% 가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데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비만인 사람이 10억 명인 시대입니다.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고,
마실 물이 없어서 더러운 쓰레기가 둥둥 떠 있는 물을 떠먹으며
자식들의 반을 수인성 전염병으로 먼저 앞서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다른 한 쪽에서는 너무 먹어서 그 살을 떼어내기 위해 막대한 세금이 지출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비만이 의료보험으로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비만이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억지와 불평등과 불합리와 이기주의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한 고통은 자기만 행복하면 된다는 인간의 죄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류의 문명이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러한 죄인들의 세상 속에서 인간의 죄가 뿌려 놓은 고난들을 함께 겪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폐수를 흘려보내면 그 더러운 물을 함께 마셔야 하고,
누군가가 몰래 매연을 뿜어내면 그 오염된 공기를 함께 마셔야 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창고에만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기에 그 옆의 누군가는 굶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이 발전시키고 쌓아놓은 역사와 문명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성도에게 고난을 통과시키시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는,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과정에서 고난을 통과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예수를 잘 믿는 어머니가 가난과 질병 속에 던져지기도 하고,
부모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애꿎은 자식이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웃의 구원을 위해 내가 고난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백성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으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위해 아무 잘못 없는 요셉이 도구로 쓰여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과 그의 형제들을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끌고 들어오기 위해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도 그러한 역할이 맡겨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 찾아오거나, 예기치 않게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예기치 않게 자식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한 상황들이
하나님의 언약 성취에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 상황을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당하는 그러한 상황들을 통하여
누군가가 하나님의 언약 속으로 들어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 절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담대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이 필요하신 것이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그 일은 우리를 비켜가지 않습니다.

복음 전파의 용이를 위해 바울을 감옥에 쳐 넣은 하나님의 처사가 이해가 됩니까?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자 바울을 시기하던 사람들은 더 신이 나서 복음을 전했고,
바울을 좇던 사람들도 더 열심히 복음 전파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 그 일을 위해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은 뭡니까?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지요.
성도의 고난에는 그러한 국면도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성도는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하기에 아무 잘못 없이 고난을 통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 이외의 모든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묶여 있습니다.
가시적 발전이나 성공이나 진보나 향상 등이 주어질 때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반면에, 퇴보나 실패 등이 주어지게 되면 급 실망하거나 좌절을 하고 불행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보이지 않는 믿음을 그리스도 라는 실체로 알아버린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만 그 믿음을 주십니다.

욥에게서 모든 보이는 것들을 다 빼앗아 버리면 그가 하나님을 배신할 것이라는 
마귀의 빈정거림에
"그래 내 종 욥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들인지 한 번 봐라" 하시면서
아무 잘못 없는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찰나의 시간 동안에,
당신의 백성의 믿음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밝히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고난이 닥칠 때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이 곧 결론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소망하고
절대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담대히 그 하나님을 자랑하는 풍랑 속의 잠잠함을 세상에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8:24-26 한글개역)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 지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바로 이러한 모습을 보고 옆에서 마주 보고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또한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성도에게도 위로와 격려가 가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고난 가운데 그 믿음과 하나의 소망 안에서 잘 견뎌내고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형제자매들이 ‘저 사람도 저렇게 잘 견뎌내는데, 나도 분발 해야지’ 하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됨됨이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징계로서의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히브리서 12:2-10 새번역)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또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자녀에게 말하듯이 하신 이 권면을 잊었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에 낙심하지 말아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을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징계를 받을 때에 참아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녀에게 대하시듯이 여러분에게 대하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든 자녀가 받은 징계를 여러분이 받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은 사생아이지, 참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의 아버지도 훈육자로 모시고 공경하거든,
하물며 영들의 아버지께 복종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는 잠시 동안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징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십니다.

여기서 '징계' 라고 번역된 헬라어 ‘파이데이아’ 는 ‘자식 만들기’ 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징계의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 잘 듣는 순종과 거룩 안으로 참여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케 해 주시기 위해 고난과 핍박을 허락하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와는 정반대의 삶의 원리로 경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십자가의 원리로 사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이 세상과 어긋난 길로 향하게 되고,
그것이 마땅치 않은 세상은 성도를 핍박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함이나 순결함이나 그리스도 안의 의나 선함이 탐탁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 세상 속 이방인인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 한글개역)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6:26 한글개역)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7:14 한글개역)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여섯 번째로는,
성도에게 그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나' 라는 자기 가치와 존재를 보호하고 자랑하기 위한
배반, 시기, 질투, 모함, 매 맞음, 투옥, 억지 등등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 곧 이 세상과 작별하는 죽음으로의 행진을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베드로전서 4:12-13 한글개역)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우리 성도들에게 닥치는 고난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 모두가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 그 완성을 위해 찰나의 우리네 인생 동안에 잠시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길에 고난이 주어지면 잘 감당하고, 그 길에 잠시 평안을 주시거든 잘 누리고,
다시 고난이 오면 또 견디고, 또 방학을 주시면 잘 누리면 됩니다.
그게 별 일 없이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6 새번역)
보아라, 내가 너희를 내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과 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진해져라.

(로마서 16:19 새번역)
여러분의 순종은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로 기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세상이 가치라고 합의해 놓은 그 어떤 것을 추구하게 되면
우리는 그 세상의 어두움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들을 하나하나 놓아가는 가운데 참 안식이 우리를 덮쳐 오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겨우 십 원 짜리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꽉 움켜진 손을 펴서 붙잡고 있는 것들을 놓고,
그 빈손으로 하나님과 부둥켜 안는 2012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1년 12월 27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33) 착각 (Illusion)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하는 우리네 모두는
저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내가 알아가야 하는 것도
예수님 뿐이라고 말합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분도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우리네 인생 가운데 얼마나 할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이제 곧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그분을 뵈었을 때
"네가 아는 나를 말해보렴"
그러시면 뭐라고 대답할 건가요?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병도 고쳤는데
나를 모르세요?"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내 모습 그대로 면목없이 왔습니다."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당신만 믿고 왔는데 나에게 준비된 천국을 주세요."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는데요. 뭐가 이리도 복잡해요."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항상 나를 위하여 나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당신을 잘 압니다."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나의 전부를 내 놓았어요.
나를 모르세요?"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성령님이 나에게 가르쳐 줄 때까지 기다렸는데,
아직 아무런 대답이 없네요."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나는 당신만을 사랑했어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요?"

이러실 건가요?

"너 이야기만 하지 말고 너 앞에 있는 나를 말해 보렴"
이러시는 예수님 앞에서 내놓을 말은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아직 잘 몰라요.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알고 싶어요."


주님 앞에서 이러실 건가요? ...


(마태복음 7:21-23)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2011년 12월 25일 일요일

로마서 강해 (5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5:8-11)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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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Romans/Romans_052_122511.mp3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32) 그럴 때마다 (In all my prayers)




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형제자매들이
힘써 모여
우리 주님 안에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먹고 마셨다

입으로 먹고 마실 때는
너무나 달콤하여 더 먹을려고 애를 쓰지만
배로 흘러 들어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될 때는
너무 쓰리고 아파 소리치고 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절규한다


이제 십자가에 못박혀 꼼짝달싹 못한다는 걸 알아요!
그럼에도 지금 내가 또 십자가에 못박히고 있다니 ...
정말 싫다, 언제까지 ...


그럴 때마다 미세한 음성이 속삭인다


너는 이미 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너는 내 안에서 나와 연합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단다
저주의 나무 위에서 죽어가는 너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라

그게 네가 아니란다 그건 나란다
그렇게 너의 사망의 빚을 나의 피로 대신 갚았단다
그러니 나무 사이에 숨지말고 담대히 빛으로 나아오라


그럴 때마다 나는 울고 만다


하나님 당신을 나에게 알리시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 당신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당신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뻔뻔함에 놀라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그 모습에 놀라


그럴 때마다 나는 소리친다


주님, 왜 나인가요?
아버지, 저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소서
나를 생명책에서 지우시더라도 저들을 기억하소서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물으신다


정말 그럴 수 있겠니?
네 피를 빨아먹는 원수를 위해 너를 내어줄 수 있겠니?
너에게로만 향했던 사랑을 저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겠니?
이제 너는 아무 것도 아닌게 되는데도 괜찮겠니?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린다 ...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로마서 강해 (51) 죄인, 생명을 사기 위해 뛰는 사람들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5:5-11)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7.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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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Romans/Romans_051_121111.mp3




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동영상] 로마서 강해 (50) 아직 죄인 + 그리스도의 죽으심 = 하나님 사랑의 확증 (II)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31) 하늘 한 번 보고 나 한 번 보고

 

 


 

어디서 누군가가 나에게
예수의 예 자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라고 해도
허허 웃을 수 있고 ...
 
어디서 또 누군가가
복음의 ㅂ 자도 모르는 놈이 잘난 체 한다고 해도
허허 웃을 수 있고 ...
 
어디서 또 다른 누군가가
내 교회 교인 빼가는 나쁜 놈이라고 해도
허허 웃을 수 있고 ...
 
어디서 또 누군가가
사람을 좇고 허튼 말을 삼키는 이단 나부랭이 라고 해도
허허 웃을 수 있고 ...
 
어디서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여 발로 지근지근 밟을지라도
허허 웃을 수 있고 ...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게 맞는 거라고, 그게 옳은 거라고 ...


그래서,
죄인 중의 괴수인 내가 붙잡을 수밖에 없는 건
오직 예수 뿐이라고 ...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를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하늘 한 번 쳐다보며 그저 씩 웃지요.

 

 

 

 

2011년 12월 8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30) 자유 (Freedom)


뉴욕 서머나 모임의 김범중 님의 시
<이제> 를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김성수 목사님 설교를 듣기가
불안했고 두려웠고 아슬아슬했었다.

근데 이제는 참 편안하다.
목욕탕물에 들어 가 있는 기분이다.

다 폭로되었고, 때가 불어 있고,
하지만 몸은 가벼워진 그런 느낌?

행하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서는
말씀 전도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할까 ...

여러 분들께 소개해 보았지만 ...
들을 수 있는 맘이나 영을 소유하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듣는 분들은 놀란다.
눈과 귀와 가슴과 머리가 놀란다.

그리고 ...

더더욱 안타까워한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

나의 모순이 폭로되어도
이제는 수치스럽지 않다.

하지만 미안하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교회에게 ...





2011년 12월 5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29) 아이들 예배 가운데 풍성히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Only by Grace)

어제는 골로새서 2:16-17 을 통해, 구약에 계시하신 하나님의 율법이
계시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그분께로 인도하는 가정교사였음을
배웠습니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곧 율법의 실체이신, 썩지 않을 씨 곧 살아 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 전에 택정하신 그분의 백성들을
품에 안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 계시하신 모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그 율법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정죄하는 법조문이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은
그 법조문을 들어 우리를 참소하여 죄의 삯으로 사망을 주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해
인간을 정죄하는 그 법조문의 판결인 사망이라는 우리 죄의 책임을
단 한번 영원히 없애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과 원수였을 동안에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확실히 증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한
화목제물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으로 창세 전에 택정하신 당신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복인, 영원한 생명을 주실거라는 그 약속을 말라기 4:1-6 에서 말씀합니다.

(말라기 4:1-6)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용광로의 불길같이, 모든 것을 살라 버릴 날이 온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타 버릴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불이 그들을 살라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김없이 태울 것이다.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이루는 그 날에, 악한 자들은 너희 발바닥 밑에서 재와 같이 될 것이니,
너희가 그들을 짓밟을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라.
그것은 내가 호렙 산에서 내 종 모세를 시켜서, 온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이른 것이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그 약속을 이 마지막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에 따라 오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분이 처음 십일조로 드려진 화목제물이셨습니다.

말라기 3:8-10 에서, 십일조의 참된 의미를 곡해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영원히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고 일갈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의 것인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 올리시고
죽어야 할 죄인에게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부으실 것을 확언하십니다.

(말라기 3:8-10)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훔치고서도 '우리가 주님의 무엇을 훔쳤습니까?'
하고 되묻는구나.
십일조와 헌물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
너희 온 백성이 나의 것을 훔치니, 너희 모두가 저주를 받는다.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그것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일조로 드려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의 복으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풍성히 부으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입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10:3-10 에서, 하나님께서 화목제물로 한 몸을 예비하셨는데,
그분이 성경에서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영원히 죽으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율법 그 첫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온전히 세우셨습니다.

(히브리서 10:3-10)

그러나 제사에는 해마다 죄를 회상시키는 효력은 있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입히실 몸을 마련
하셨습니다. 주님은 번제와 속죄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나를 두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주님은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를 원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은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들입니다.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첫 번째 것을 폐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 것과 둘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로써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 둘 사이에 무엇이 삽입되었습니까?
인간이요 하나님이신 중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대언자, 곧 변호사로 서 계신 것입니다.

이제는 영원히 우리를 죄인으로 여기시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아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요 좋은 소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사망의 족쇄인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성령님께서 여전히 제 갈 길로만 갈려는 우리를 책망하시며 알게 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나의 전부가 하나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심을 고백하게 되고,
점점 내가 나의 주인 됨을 빼앗겨 결국에는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거룩한 자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공부를 마친 후에 4학년인 승연이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예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뇌 속에 심어 주세요."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로마서 강해 (50) 아직 죄인 + 그리스도의 죽으심 = 하나님 사랑의 확증 (II)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5:5-11)

5.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제 때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7. 의인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욱이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람은 드뭅니다.
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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