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9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14) 용서 (Forgiveness)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어떠한 죄도 용서해 주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만일 죄를 짓게 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하나님께 나아와서
죄를 용서해 주십사 요청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용서와 구원에 관련해서 얼마나 근본적인 위치에
있는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주어진 가장 기본이 되는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갈라디아서 3:26-2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구약성경에서 모든 종류의 제사와 종교 의식이나 성막과 성전에 관계되는
모든 말씀들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있게 될 일들에 대한 그림자요,
예표였음을 신약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고 마시는 일이나 명절이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 문제로,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런 것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라는 것이 단지 용서함으로써 용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해마다 절기마다 드리는 제사와 의식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25-26)
"대제사장은 해마다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 몸을 여러 번 바치셔야 하였다고 하면,
그는 창세 이래로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애시려고 시대의 종말에 오직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개인적으로 행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것처럼 왜곡시키는 위험스러운 생각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 는 원리는,
결국 구약성경의 모든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경의 모든 말씀이 초점을 맞추어 기록
되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 중심인가?
아니면, 나 중심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창세기에서의 요셉의 삶을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에 대한 이해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요셉이 했던 일이란 그저, 아버지인 야곱이 입혀 준
색동옷을 입고 지난 밤에 꾼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한 것 뿐인데,
이후의 요셉의 삶은, 형들에게 버림받아 죽을 고비를 넘겨 노예로 팔리고,
주인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댓가로 감옥에 갇혀 갖은 고생을
하다가 애굽왕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세상의 풍요의 땅 애굽에서 권력의
이인자인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을 혹자는,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순종하고
인내하여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크게 일으키신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답을 바라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나' 중심인 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랑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칠 년 대흉년 중 삼 년째에 요셉의 형들이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와서 총리인 요셉에게 머리를 굽혔을 때,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형들
앞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형들 뿐만 아니라
형들의 자손들까지 내가 보살피리다" 라고 형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모든 상황과 고난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기 위하여 허락
하신 것이라는 요셉의 고백이, 거기에 쓰임을 받은 형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셔서 야곱과 그의 가족들을 죽음에서
구원하신 그림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살다가신 삶의 모습으로 겹쳐져
보여 집니다.

우리의 삶 속에 닥쳐오는 여러가지 고난과 시험들을 대하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풍랑을 잠잠하게 해 달라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나된 생각과 행동들을 죽여가시며 그 풍랑 속에서도 하늘의 소망으로 말미
암아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간구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그분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이 나로 하여금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삼 년 전에 저에게 허락하신 그 일을 담담히 나누고자 합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광야의 여정이 시작되기 직전에 저희 가정에 찾아 온 일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온지 구 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주어진 고향 나들이였습니다.

한 달 동안 가족, 친지, 친구들을 모두 만나면서 꽤 힘든 강행군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려는 일들을 제 나름대로 기도하고 구하는 가운데
기뻐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파하면서, 값진 경험들을 하고 돌아왔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가게 된 주된 이유는, 저의 아버님과 장모님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여행이 있기 일년 전에, 저 혼자만 먼저 한국에 가서
두 분을 만나뵙고 왔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먼저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평생을 교회에 다니셨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한 집안의 종손으로 귀하게 자라나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조건을 겸비한 팔방미인이십니다. 그런데, 건축공무원을 하시다가
건축사업에 손대신 후로 족족 이런저런 환경과 이유로 인해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산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 마침내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대가 먹을 게 있다지만, 제가 아는 한, 그것마저도 몽땅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년 전에 제가 처했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런 상황을 저의 아버님에게 허락하신 것인데도, 아버님은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시고 그 때 떠나 버리셨습니다.

그 때가 제가 유치원 다닐 때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의 삶은 저의 어머님의 고난의 시작이셨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신 어머님은 학원을 운영하시면서 아버님의 한량끼를 만족시켜
주어야 했고, 저는 할아버님, 할머님과 같이 살면서 방학 때만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제가 대종손인지라 조부모님께서 저를 부모님
에게 보내지 않으셨기 때문이지요.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런 아버님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칠 년 가까이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 그런 아버님에게 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영주권이 네임첵에 걸린지 이 년 가까이 되었던 때라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몸담은 회사마다 망한 후에 취업 비자 만료가 십 개월을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회사가 지금 다니는 회사입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때
한창 회사가 lay-off 중에 제가 홀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영주권 신청이 세 번째로 다시 시작되었지만, 일 단계 후에 네임첵에 걸려
미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이 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영주권 카드가 날아왔습니다.
I-485 승인이 난 것도 아니었고, 회사 변호사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는
그런 카드가 말입니다.

곧바로 저 혼자만 무작정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삼 일 밤낮으로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님의 에베소서 강해설교 전편을 CD로 만들어 무작정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때까지 아버님에 대한 앙금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아버님을 용서했다고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팔 년 만의 재회를 했었습니다. 가 보니,
벌써 몇 달 전에 암이 발견 되었는데, 아버님은 치료할 생각은 않으시고 더욱더
악의에 차서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당신을 이런 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분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태신앙 때부터 듣고 배워
왔던 자기 편의대로 가공된 성경지식들을 모조리 다 비워내야 하는 힘든 고통이
따라야 함에도, 전혀 받아들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가져온 설교 CD는 들으시겠다는 말에 약간의 긴장이 풀려 휴전을
하고, 동생들을 만나 가져온 설교 CD를 전해 주었습니다. 장모님께 드린 것까지
합치면 약 400장의 CD를 구웠는데, 그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가방에는 CD 꾸러미와 속옷 몇 벌 뿐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난 후에, 장모님을 뵙고 설교 CD를 들으시라고 전해 드렸습니다.
장모님은 불교신자 이신데, 장인어른께서 제 아내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신 후로,
약국을 혼자 운영하시면서 어렵게 삼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친척들에게 속아 가산을 많이 잃어버리셨는데, 지금도 교회라는 말만 들으
셔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에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설교를 들으시라고 CD를 들이밀었으니
가당키나 했겠습니까.
저에게 지나온 이야기를 하시면서, 저나 제 아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말리지
않겠지만, 당신에게는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법 없이도 사실만큼
착하고 여린 분이신데, 과거에 당하신 쓰라린 경험들이 쓴뿌리로 남아 복음을
거부하고 계셨습니다.


그 후로 일 년이 지나, 이제 가족과 함께 그분들을 다시 만나러 한국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마치, 전장터에 총알받이로 제일 앞서 나가는 그런 기분이었지만,
내심 혹여나 약간은 변화된 모습이실거라 기대도 했었습니다. 그때는 마지막 기회
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평소와는 달리,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제 옆에 꼭 붙어 있었습니다.
가서 일어날 일들을 짐작했을 테지요.

그런데, 여전히 조금도 바뀌지 않으신 모습으로 반갑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일 년 전에 드린 설교 CD는 하나도 듣지 않으셨고,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복수의 칼은 조금도 무디어지지 않고 더욱 날이 시퍼렇게 서 있었습니다.
단지, 자식들의 복을 빌어주기 위해 예배당에 나가주는 그저 그런 명목상의
기독교인으로 되어 버리셨습니다.

그 다음 날로 전쟁은 선포되었고, 밤을 세워가며 잘못 알고 계시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하나하나 말씀드렸습니다. 마침내, 아버님은 감정이 폭발해 버리셨
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하시고, 저의 신앙을 조롱하기도 하시며, 이럴려고
왔으면 당장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되는 순간,
성령님께 매달려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저의 입에서는 제가 지난 몇 년동안 미국에서 경험했던, 아버님이 과거
에 하나님을 놓아 버리도록 만들었던 똑같은 경험이, 저의 살아온 이야기로 흘러
나왔습니다.

성공에 눈이 어두워 온갖 꾀를 부려 보았지만 결국에는 홈리스가 된 경험들,
그 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주님으로 만난 후에 일어났던 저의 인생의 변화들,
특히 지난 일 년 동안 저와 아내가 각각 다른 교회를 출석하면서 일어났던 어려움
들을 말씀드리는 가운데 아버님의 눈빛은 점차 누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당신의 지난 모습을 자식인 저의 모습을 통해 보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
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다른건 몰라도 부부가 따로 떨어져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저에게 다시 가족이 있는 교회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다시 시작하실거라 약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당신 자식의 가정이 어떻게 될까봐 그 시퍼렇게 날선 칼을 스스로 깨어
버리셨습니다. 그 때, 제 아내에게 저를 용서해 달라고 하시면서 아버님께서 눈물
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평생 아버님의 눈물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평생 처음으로 아버님을
가슴에 꼭 안아 보았습니다. 예전엔 그렇게 크게 보였던 분이 초라하고 작은
칠 십세 노인으로 제 가슴에 들어와 계셨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저도 만지셨습니다. 일년 전의 저의 행보가 저의 신앙이 아닌
신념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조성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신앙 아닌 신념조차도 선하게 이용하셔서
그 안에서 새로운 재회를 허락하시고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저를 일초도 지나지 않은 그 순간에 회개의 자리로 나오게 하셨고,
아버님께 아버님의 뜻대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령님께서 저의 어머님도 만지셨습니다.
수 십년의 힘든 시간을 지나는 동안, 당신 자신도 모르게 신앙을 놓아가고 계셨던
것을 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버님과 저와의 모습을 보시면서 그 동안의 신앙의 슬럼프를 눈물로 고백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고생한 시간들이 오늘을 위해 주어졌다는 고백을 하시고는
기도의 입이 회복되셨습니다. 제가 한국을 떠나는 그 날까지 저와 저의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서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웃음을 선물로 보여 주셨습니다.

제 아내도 성령님께서 만지셨습니다. 저와 함께 하면서부터 경험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들로 인해 알게 모르게 많이 힘들어 했는데, 지난 일 년 동안 상실되었던
저에 대한 믿음도 회복되었고, 과거의 쓴뿌리도 치유가 되었습니다.

사실, 겉으로는 아내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아버님이 암 투병을 어떻게
하시는지 많이 걱정하며 갔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피부에 동전만한 구멍이
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고름을 손수 짜내셨는데, 그 후에 검사를 해도 암이 발견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주님을 부인하는 상태에서 예견된 시간대로 암이 진행되어 일 년 안에 돌아
가셨었다면, 그저 그렇게 한평생을 원망만 하시다가 주님도 모르고 지옥에서
영원히 또 한 번의 후회와 원망을 하셨을 것이고, 저도 일 년 전에 그저 그렇게
아버님에게 복음을 전했던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평생을 힘들어 했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님에게 암이 발병되지 않았다면, 아버님을 향해서 눈물로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나님께 맡긴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간만 지내다가, 결국에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시겠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남은 삶을 살아가실 아버님을 생각하면 기쁘고 또 기쁘면서도, 하나님께서 허락
하시는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한 시간들로 인해 너무 힘들어 하지 않으시기를
주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한 달 간의 시간은 살같이 흘러갔었고, 미국에 돌아 온 후로
온 가족이 함께 떠날 채비를 하루하루 준비하며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접하게 된 소식은,
서머나교회 인터넷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이 2009년 12월에 들려왔었습니다.
그때 저는 서머나교회 웹페이지에 그 글이 올라오자마자 5분도 채 안 되어서
김성수 목사님께 메일을 드렸습니다. 저도 그 모임에 꼭 참석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글은 지역별 모임을 만들 리더를 찾는 공지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글을 찬찬히 읽어봤더라면, 아마도 목사님께 그런 메일을 드리지
는 않았을 겁니다. 아뭏든, 제 이메일 아이디가 서머나교회 홈페이지에 올라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 혼자서 전전긍긍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연락이 오면 어떡하지?
메일이 오면 답장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때마다 제 아내의 담대함이 저에게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어 주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어디서나 주님의 지체들을 만나게 해 주시고, 주님 안에서 교제를
나누게 하시며, 그 만남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데,
당신이 왜 지레 겁을 먹고 걱정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 옆에 아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저는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2010년 1월부터 네 가정이 모여 산호세 인터넷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성수 목사님께서 산호세 사경회 오셨을 때 하룻밤을 함께 지샌 가정,
제가 일 년 남짓 저 혼자 나갔었던 교회에서 알게 된 가정,
처음으로 저에게 메일을 보내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고 했던 가정,
그리고 저희 가정.

지금은 열 가정이 모이는 서머나교회 산호세구역이 되었습니다.
벌써 이 십 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 모임 안에서 역사하신 선하신 일들이 궁금하시지요?

글을 쓰고 있는 저도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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