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a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1-70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a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1-70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70) 하쿠나 마타타, 별 일 없이 살아 간다는 것 (Peace)




샬롬,

어제 밤에 비바람이 엄청 불었습니다.
그 여파로 펜스의 일부분이 떨어져 넘어졌습니다.

밤 늦게 당한 일이라서 어쩌지 못하고,
아침에 가 보니 여기저기 나뒹굴어져 있더군요.
옆 펜스도 덩달아 넘어질까 봐
부랴부랴 2x4 나무기둥 하나를 단단히 박아 놓았습니다.

옆집 물건이 날아와서 부딪힌 거라 옆집에서 고친다고 하네요.
이런 난리와 난리 가운데도

저희집 아이들은 쿨쿨 잠만 잘 자더군요.

평화입니다  아빠 엄마가 있으니 ... 



2012년 11월 21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9) 감사 (Thanksgiving)



샬롬,

Thanksgiving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리며.
전도서 11장 히브리역, 칠십인역, 그리스역을 통해 알게 된 진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전도서 11:1-2 개역개정)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서 11:1-2 새번역)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
 
 
(전도서 11:1 히브리역)
샤라크(send away, cast away, push away) 레켐(food for man or beast, bread)
알(above, over, against) 파님(the faceas a noun, before as a preposition)
마임(water, urine, semen, wasting water)
키(but, then, therefore, although, because) 로브(abundance, multitude)
욤(a day, from one sunset to the next) 마짜(appear, exist, to occur, be present)
 
사람 또는 동물, 곧 네페쉬를 위한 음식 또는 떡을 물(더러운 물 또는 정액) 위로
던져라. 왜냐하면, 그 날이 번성하고 풍부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도서 11:1 칠십인역)
아포스텔로(set apart, send out) 호(the) 아르토스(bread) 수(you) 에피(over, upon, on)
프로소폰(the front, presence, face) 호(the) 후도르(water)
호티(because) 엔(in) 플레또스(fulness, multitude) 호(the) 헤메라(a day)
헤우리스코(find, get, obtain, preceive, see) 아우토스(self, oneself, the same person, together)
 
너는 그 떡을 존재하는 그 물 위로 따로 구별하여 던져라.
왜냐하면, 번성하고 충만함 안에서 그 날 자체로 이해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전도서 11:1 그리스역)
아포스텔로(set apart, send out) 호(the) 아르토스(bread) 에고(I) 에피(over, upon, on)
프로소폰(the front, presence, face) 호(the) 후도르(water)
호티(because) 엔(in) 플레또스(fulness, multitude) 호(the) 헤메라(a day)
헤우리스코(find, get, obtain, preceive, see) 아우토스(self, oneself, the same person, together)
 
나는 그 떡을 존재하는 그 물 위로 따로 구별하여 던진다.
왜냐하면, 번성하고 충만함 안에서 그 날 자체로 이해하여 보기 때문이다.
 
종합해 보면,  네페쉬를 위한 그 떡 곧 그리스도 예수를
자기 존재의 표출로 우글거리는 정액 곧 더러운 물 위로 구별하여 던져
버리십시오.
왜냐하면, 번성함과 충만함 안에서 그 떡 곧 예수 그리스도가
그 날 곧 희년(Jubilee), 안식으로 이해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1장 2절도 번역해 보면, (1절의 '그 날' 이 곧 2절의 '그 7' 을 의미합니다)
그 7 의 부분을 넘겨주고 그 8 로 모읍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땅 위에 있는 악을 절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절은 2절의 구체적 설명이고, 2절은 1절의 강조입니다. 짝(mate) ...
 
완성, 안식(Sabbath)을 의미하는 7로 넘겨짐은,
안식 후 첫 날 곧 시작, 출발(Exodus)을 의미하는 8로 모입니다.
8인 그리스도와 연합된 '나' 는, 더 이상 두 마음으로 그 하나를 선과 악으로
치우쳐 보지(에이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충만한 생명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평화, 샬롬> 으로 보기(호라오)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우리 안에 심으셔서 나로 하여금 힘껏 고생하며
열심히 알아가게 하시고, 그 결실을 전부 나누며 마음껏 누리는 평화와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피와 양분을 서로 공급받아 한 몸으로 자라나게
되는가 봅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희년(Jubilee)을 선포하시고 그 날이 완성되었다고, 자기를 가리켜 말씀하신 예수님 ...
 
하나님의 선물로 거저 받은 고난 가운데 알게 되어 '나' 가 된 진리를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는,
그 죽음 너머 그 생명을 즐거이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8) 인생의 여정 끝에 직면하는 세상과의 이별, 별세(Departure, Exodus)



샬롬,
저주의 물로 죽고 마른 땅으로 다시 살아나는 세례 곧 홍해를 지나
사 십 년 광야, 인생의 여정 끝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세상과의 이별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사 십 일 광야 시험을 이기시고,
그 이별을 우리에게 몸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누셨던 그 별세의 이야기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 시험을 마치시고 갈릴리로 가셨는데,
소문이 널리 퍼져 거기서도 모든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희년을 설교하시고 그 날이 완성되었다고,
모든 사람들(폴루스)에게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22절에서, 모든 사람들은
요셉(let him add, 그에게 하나를 더하게 하다)의 아들인 진리(레고)가 아닌,
그의 입 밖으로 나오는 말(로고스)에 감탄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4: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이 말은, 흔히들 말하는, 예수님을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는 고향 사람들이
요셉이라는 하찮은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라고 빈정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칭찬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담긴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그 말만을 보고 감탄하며 예수님에게 자기의 유익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23절에서, 그렇게 감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치는 자야, 네 자신이나 고쳐라' 와 같은 비유(파라볼레)를
들었다(아쿠오).
가버나움(카파르 나훔) 곧 이스라엘의 땅, 옛 성전 안에서 되어지는 것을,
고향(파트리스) 곧 아버지의 땅, 하늘 집 (heavenly home) 안에서도 되라고

말하는 구나."

(누가복음 4:2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그리고는 24절로 이어집니다.
"그 어떤 선지자도 그 아버지의 집(파트리스) 안으로 받아들인 자는 아무도 없다."

(누가복음 4:24)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는 25절부터 27절까지,
선지자의 때에 유대인이 아닌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열거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의 때에
성전 안의 유대인은 단 한 사람도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8절에서, 그 말을 들은 회당(수나고게) 곧 성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분노, 욕정(뚜모스) 곧 희생제물을 죽일려는(뚜오) 욕정으로 가득하여,

(누가복음 4: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절에서, 예수님을 똑바로 세워(아니스테미) 예루살렘(호 폴리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예루살렘(호 폴리스) 그 산의 벼랑(forehead 이마, 전체의 대표) 끝까지

질질 끌고가서(아고) 머리를 아래로 숙이게 죽이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4: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절에서, 그러나(데) 나(에고) 곧 하나님이신 그 예수님은
그 여정(포레우오마이) 곧 별세(depart)의 시험(페이라) 가운데(메소스)를 통해(디아)
지나갔습니다(디에르코마이).

(누가복음 4:30)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우리 성도는 세상과 이별을 하였고, 이별을 하고 있고, 이별을 할 것입니다.
그 종말은 새로운 출발 곧 새 창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창조는 종말로 끝을 맺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종말은 새 창조의 출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고치는 자야, 네 자신이나 고쳐라' 라는 비유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 곧 별세의 여정 가운데 겪으셔야 했던 시험이셨습니다.

언약의 기둥에 달려 죽으시기 전까지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거기서 내려와라" 라고,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그렇게 조롱하였습니다.

도수장에 질질 끌려가 말 없이 죽은 어린양의 모습으로,
하나님이신 그분이 죄된 인간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당신의 신부를 보는

기쁨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 죽음이 나의 죽음이고, 우리 성도 모두의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버지된 마음으로 아들된 우리에게 절절히 보내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4:10-12)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그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소리로 전해지는 진리(레마)를 보지(호라오) 못하고,
그 진리를 담고 있는 그 말(로고스)만을 보고(옵타노마이) 감동하고 감탄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말이 자기에게 유익이 되느냐, 유익이 되지 않느냐,
두 마음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말로 인해 서운함과 원망과 분노(뚜모스)가 마음에 쌓이다 보면,
그 소리를 죽이는(뚜오) 탐심(에피뚜미아)의 자리까지 갑니다.
소리는 그저 그 진리를 전할 뿐인데 말입니다.
자기 스스로 그 소리에게 자기를 투영하기 때문이지요.

그게 나 인데도, 여전히 남에게만 시선을 두고 있네요.
그게 나의 죄됨을 드러내는 데 쓰이는 것이라면,
감사히 죽음의 자리에 가만히 서 있겠습니다. 그 죽음 너머 그 생명을 소망하면서 ...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으로 희년(Jubilee)의 완성된 그 날이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어져 있습니다.
죽음 너머 생명을 바라보며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7) 인내 (perseverance)


샬롬, 벌써 육 년이라는 시간이 촌음과 같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어느 때로부터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어떻게 감지되는 걸까요?


하나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아빠가 열심이었고,
엄마도 덩달아 열심이었던 저희 가정 ...
그러니 아이들에게 교회 친구가 많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지요. 마음으로는 여기는 아닌 데 하면서도,
내가 바꾸어 보리라는 만용을 부리고 있었던 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홀단신으로 아무도 없는 광야에 던져진 듯 내팽개쳐진 저희 네 식구,
아이들은 토요일 밤마다 제게, "내일 교회 안 가나요?" 라고 물어본 시간이

일 년 남짓 됩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닥치는 시간도 어른 못지 않게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살아 있으니까 일 년 남짓 후부터는 한 가정 두 가정 모이게 되었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게 되었지요.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시간, 아빠 엄마가 힘들어 하는 시간,
그 시간들을 말씀을 공부하는 시간 가운데 함께 나누게 되었지요.
말씀 안에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외로움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그 시간을 가진 지가 벌써 사 년 남짓 되어 갑니다.
그 동안 아이들의 생각이 많이 성숙해 진 것 같습니다.


집에서 홀로 아이들과 함께 주일을 보내던 시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몇 가정이 모여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
지금은 매 주일 힘써 모여 예배를 함께 하는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학교 아이들도 열 명이 넘습니다.


육 년 ... 그 시간 가운데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어느 예배당 귀퉁이 의자에라도 앉아 있고 싶었던 때가 적지 않았지요.
그 때마다 저희 가정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지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마치 "이겨라 이겨라 우리 교회 이겨라" 라고 응원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희 홈페이지 주소도 미국에 점 찍힌 우리 교회, woorichurch.us 이지요.
지금은, 우리 주님 안에 하나된 형제자매들과 함께
서머나 교회 북가주 구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나누고 있습니다.


가장 힘들 때가 오면 가장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때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교회로 힘써 모여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 때가 언제 올지 요원할 것 같지만,
조바심 이라는 괴물이 바로 나 라는 것을 안다면, 넉넉히 인내할 수 있지요.

기다림 ... 우리 성도에게는 친숙한 말일 겁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보면 그 시간 자체가 기쁨이 되어 하늘 소망이 배가 됩니다.
우리네 삶 가운데 고난, 기쁨, 소망, 이런 말들이 감지되는 것도

믿음의 씨가 심겨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곳 모임은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빈번히 찾아 오던 여호와의 증인들도 발길을 끊어 버렸지요.
이단으로부터도 외면 당하는 ... ㅎㅎ
찾아가지 않아도 찾아 오셔서 말씀을 나누게 되어 저는 좋았는데,

그분들은 힘드셨나 봅니다.

우리는 그저 힘써 모여 말씀을 함께 나눈 것 뿐인데,
그 어떤 교회를 가도 상관없지만 그 인터넷 교회만은 절대 가면 안된다고

이 지역에서 소문이 나 있답니다.
한인 교회만 해도 삼 백 여 곳이 넘는,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인데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어떤 미사여구로 속일지라도 하나인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서로들 자기가 옳다고 싸우지만, 결국 자기네들 스스로가 증명하는 셈이지요.

그래서인지 점점 고립되어 간다는 말이 더욱 실감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도 간혹 찾아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적이지요.
그렇게 삼 년 동안 알게 된 분들이 벌써 열 네 가정이 넘습니다.

지난 주일은 임 집사님의 누님께서 임종하셔서 추모예배를 함께 하였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4학년 아이의 아빠인 한 형제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문득,
"아빠,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아빠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살고 계시는 집이야. 하나님이 어디 계시니?" "라고 하자,
"내 안에요." 라고 대답하고는 하늘을 바라 보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을 줄 알았던 게임매니아 천방지축 4학년 막둥이가
하나님을 궁금해 하더라는 겁니다.

'죽음' 너머 '생명' 이라는 의미는,
공허와 혼돈과 흑암인 나를 빛만 가득한 나로 새롭게 창조하는 말일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사라지고 오직 오늘을 영원으로 사는 하나님 나라,
그 씨가 창세 전에 택정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지금도 심겨지고 있습니다.

그 아이 안에 심겨진 그 씨가 무럭무럭 자라나 백으로 완성되는 결실의 그 날을
소망합니다.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6) 우리 주님 안에서 문안을 올립니다 (Greeting in Christ)


샬롬,

멀리 있어 뵙지 못하는 분들이 이모저모로 소식을 전해 주셔서
따뜻한 마음과 고마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디스크 치료를 위해 한국에 계셨던 허집사님 내외분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서울 서머나 교회는 한 번 방문하셨는데, 목사님과 여러 분들을 만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시간을 가늠하지 못해 한 시간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예배당이 가득찰 만큼
많이 오셨고, 손집사님과 여러 분들과의 따뜻한 교제 중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셔서 이곳의 주일 교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갔답니다.
정말 따뜻이 맞아 주셨고 넉넉히 대접을 받으셨다고, 서울 서머나 교우들께 고마움을

전하셨습니다.

그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모임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연히 듭니다.

히브리서 2장 12절 이하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야만 하신 이유를
일생 동안 종노릇 해야 하는 의무로 인해 <다나토스> 그 완성된 죽음을 무서워하는

(포보스) 여자들(호우토스) 곧 교회를 놓아주기 위해서 (히2:15)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모두가 그 무엇보다 싫어하는 죽음, 그 죽음이 뭔지 몰라 마냥 무서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자녀를 꽁꽁 묶어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죽음은 우리가 무서워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언약의 기둥에서 신 포도주(sour wine, 식초)를 받으시고
머리를 숙여(또는 turn to flight 여행을 떠나) 성령님을 우리에게 넘겨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

(시편 69:21)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그들은 나에게 독을 타서 주고,
목이 말라 마실 것을 달라고 하면 나에게 식초를 내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야만 하신 이유는 당신의 신부인 교회 곧 나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그 영광은, 우리 안에 폭력적으로 뚫고 들어와 버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복음의 발로 나에게 전해진 그 사랑은, 당신의 신부인 우리 이웃에게도 나를 통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전해지는 자리에는 그 분의 죽음 곧 나의 죽음이 전제되는 것입니다.
향유옥합을 깨서 준비한 그 분의 죽음 곧 나의 주검인 마리아, 그 쓴 물의 이야기와
함께 ...

우리 모두가 그 성령님을 받은, 다른 말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 사랑하는 자로
지어져 가면 좋겠습니다.

세계 각 처의 주어진 자리에서 말씀의 완성으로 죽어가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여러분, 우리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소망을 가지며,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5) 헛되고 헛되다 (Vanity)


샬롬,

우리네 살아가는 세상은
자기네들이 만들고 자기네들이 부수고
그러다가 죽어갑니다.

그것을 보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뉴욕 월스트리트 금소(Golden Bull) 쓰러지다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3) 성도의 표지, 고난 (Suffering)


샬롬,
마태복음 24장은 8절까지 재난의 시작이 이러이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재난'은 '산고(birth pain)' 곧 새 생명을 낳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15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에서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로 굳어질대로 굳어진 사탄의 회당인 멸망당할 가증스러운
것은 바로 '나' 입니다.
그 '나'가 거룩한 곳 즉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아골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멸망의 지옥 자식인 내가
어떻게 반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서 굳건히 서 있는 것인지
난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골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죽어 마땅한 자임을
시인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죽은 자에게만 독수리가 모여들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유대 땅에서 그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8절에서 그 산고의 마지막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15-28절 중간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어,
그 어떤 거짓말로 속일지라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특히, 24절에서 언급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false' 가 아니라 'pseudo' 입니다. 다른 말로, 진짜와 똑같은 모조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 12장 4절의 에피소드와 똑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워서,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비밀(secret)을
다 안다는 듯이 거들먹 거리는 행함이 정점에 달하는 날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이미 와 있지요.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확연히 알 수 있지요.

이 땅에서 내가 부인 당하는 삶이, 내가 지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이기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자만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실 것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에 그들만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비밀(mystery)만으로 기뻐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9절을 원어로 보면,
'아이 밴 자들' 은 '그 자궁 안에서 헛소리 하는 자' 이고,
'젖먹이는 자들' 은 '그와 같은 것(교회) 안에서 여전히 젖만 빠는 진리가 아닌 자'
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당연히 화가 있지요.
그 마지막 날(헤메라)에 펄펄 살아 주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모양으로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boast, respect, honor, glorify)하면 좋겠습니다.

이곳 북가주 지역에서는, 서머나교회 로마서 강해 설교가
매주 수,목요일 오전 7시부터 30분간 공중파 채널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

그 마지막 날 너머 그 새 날을 소망합니다.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2) 울다 웃다 그러다가 죽다 (Life)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한 편의 설교말씀으로 인해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었지요.
그렇게, 김성수 목사님 설교말씀을 열심히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성경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었습니다.
그 안에 정말 예수가 계시는지 ... 정말 궁금했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다 읽어버렸지요.

그리고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죄인에게 부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이 '나' 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들을 지나 오는 동안 알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죽기 보다 힘든 것임을 뼈저리게 실감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일분 일초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선물일진대,
하나님께서 제게 시간을 조금 더 허락하셔서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을 함께 읽을 때면
나의 죄인됨이 더 명확히 폭로되어 죽은 듯이 널브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가급적 원어성경은 안 볼려고 노력하지요. 너무 아프니까요.

그럼에도, 매 주일 아이들과 함께 예수님을 나누는 시간이 주어져 있어
부득불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은혜지요,
안 그러면 어찌 엉덩이가 짖무르도록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

나 혼자라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떻겠습니까마는,
내가 말로 내뱉는 말이 진리가 아니고 거짓말이면, 듣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일분 일초를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나의 정체가 폭로되어 그냥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 떠올리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는 그 시간을 제게 허락하시는 한 저는 하고 싶습니다.
아니, 하게 해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이니까요 ...


예전에 나밖에 몰랐을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그걸 알기까지가 무척 많이 죽을만큼 엄청 힘드네요.
고난, 그게 하나님의 선물이라니 ... 할 말이 없습니다, 울다 웃다 ...


사실, 가족의 울타리로부터 쫒겨 날까봐 노심초사 했던 시절이 적지 않게 길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시간들 가운데 나밖에 몰랐던 모습들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거든요.
그 상처들은 나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그것마저 하나 하나 도려내며 갈려니, 말 그대로 죽을 맛입니다.

저보다 더 많이 도려낸 아내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지금도 예전과 다를 바가 없이 똑같이 지랄을 떨어도
불쌍한 눈으로 봐 주니
더욱 고맙지요.
정말 사랑으로 대하는지 아닌지 눈을 보면 알 수가 있다지요?

아내는 어릴 적부터 예수쟁이를 싫어했었죠.
자기밖에 모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그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아내가 우리 주님만 바라보는 비둘기, 예수쟁이가 되었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걸 매번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저에게는
홍두깨가 따로 필요없지요.

나 자신을 바라보면,
백 번 천 번 지옥에서 죽어 있어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죄인입니다.
그런 제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
긍휼하심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의 자유로우신 뜻대로 부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좋은 소식, 복음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나의 처음 자리인 
티끌 가운데 죽어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신 <토브> 거룩이지요.
그게 죽기보다 힘들지만요.
우리 주님만 바라보는 비둘기,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로 함께 있어 외롭지 않습니다.


눈 먼 자의 살아 있음,
'죄' 라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자아' 라는 낙타는 삼키다.
그러다가 ... 배 터져 죽다.

그렇게 죽어 있음,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어있는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눈 떠 보니 연합,
오늘 하루 엄청 깨졌다. 하루 살이가 힘들다.
그러다가 ... 그저 웃지요.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1) 나는 죄인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가 (Sinner vs. Christian)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도서 9:3)

This is the evil in everything that happens under the sun:
The same destiny overtakes all.
The hearts of men, moreover, are full of evil
and there is madness in their hearts while they live,
and afterward they join the dead

'무트(dead, 죽음)', LXX(칠십인역)에는 '네크로스' 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무트' 가 문맥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트 (말씀의 완성)' 가 나에게는
'다나토스 (영생을 위한 죽음)' 로 다가 오는지,
아니면 '네크로스 (영벌을 위한 죽음)' 로 다가 오는지 ...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호라오) 못함이니라
(전도서 5:1)

Guard your steps when you go to the house of God.
Go near to listen rather than
to offer the sacrifice of fools, who do not know(호라오) that they do w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