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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일 화요일

집으로 가자 (70) 쟁이에 대한 추억 - 김성수 목사님



저는 "쟁이" 라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이 "쟁이" 는 원래 "장이" 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표준말을 써서 그 느낌을 다 전달할 수 없는 것을
바른 표기법을 떠나서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있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나에게 "초등학교" 보다는 "국민학교" 라는 말이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쟁이" 라는 말입니다.
"장이" 는 수공업적인 기술로써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하거나 하는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 '미장이', '옹기장이' 등 전문적인 손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 말이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름 앞에 붙으면
그 홀한 단어가 거대한 태산처럼 느껴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 라 부르고, 음악을 하던 사람들을 "풍각쟁이" 라 부르던
우리 조상들의 예술에 대한 무지 속에서 나온 저급한 말도 저에겐 전혀 거부감이 없습니다.
그런 "쟁이" 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저에게 심어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인을 거침없이 "쟁이" 로 "프로 딴따라" 로 부르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유재하 입니다.
그 선배는 저보다 겨우 두 살이 많았음에도 전 그 앞에만 서면
그 "쟁이" 의 거대함 앞에서 주눅이 들어 음악에 관한 한 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앞에서 음악이 함부로 회자되면,
그 "음악 쟁이" 는 마치 전 세계 음악인들의 대표처럼 음악을 변호하고
또 다른 "음악 쟁이" 를 감쌌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리워진 길" 등 주옥같은 곡들을 듣고 있으면,
그리 화려한 창법의 가수가 아님에도 그 만의 독특한 세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듣는 이를 그렇게 만드는 그의 매력,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서는 타협치 않는,
유재하의 음악에 대한 열심과 사랑이 그대로 읽혀지기 때문입니다.
"쟁이" 란 바로 자기 일에 대해 그렇게 빠져 버리는 사람입니다.

전 그 후에도 그렇게 자기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쟁이" 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소설가인 "은어낚시 통신" 의 윤대녕,
"서른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의 시인 최영미 선배,
사랑하는 나의 후배 기타리스트인 켄 송,
그리고 아직 풋열매 같이 농익지 않았지만 그 모습에서 "쟁이" 의 냄새가
너무도 짙게 배어 있는 내가 사랑하는 아트센터의 그림꾼들하며,
제 주변에는 그런 쟁이 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 솔직히 그들의 삶을 존경합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 저토록 행복할 수 있을까?
늘 부러움으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뮤지컬 "Phantom of the Opera" 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열정이 집착이 될 때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것을 거기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열정과 집착은 아주 작은, 아니 어쩌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를 즐기거나 사랑하는 것을 우리는 '열정' 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이뤄내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집착' 이라 합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자랑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열정의 소유자들만을
우리는 "쟁이" 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림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과
그 일을 통해 본인의 이름을 내려는 사람의 작품은 금방 티가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이 아닌,
예수로 말미암아 이생의 안일과 번영을 얻어내려는 사람들을
저는 예수쟁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것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라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으면 안 됩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뽑아들고 로마군을 두들겨 패주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카타콤과 갑바도기아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렇게 지하 무덤 속에서 문둥병으로 죽어 가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저주 받은 자들입니까? 그들의 죽음을 모독하지 맙시다.

예수는 모든 피조물이 보는 앞에서 벌거벗겨져서 죽었습니다.
죄로 인해 눈이 밝아져, 벌거벗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했던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하나님이신 그 분이 만천하에 벌거벗겨지심으로,
그리고 바로 나에게, 그 벌거벗었음으로 부끄러웠던 나에게, 의의 흰 옷이 입혀진 것입니다.

전 그 예수로 만족합니다. 전 그 예수만으로 즐겁습니다.
저는 그러므로 누구에게든지 자신 있게 저는 "예수쟁이입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얼마 전 어느 능력 있는 목사님이란 분이 LA에 오셔서 부흥화를 하셨습니다.
그 분의 집회를 일간지 신문 전면광고를 통해 보았습니다.
축복성회 광고 문구가 이러하더군요.
"사업에 실패하신 분, 고민이 많으신 분, 아이를 못 가지시는 분,
능력 있는 신앙을 갖기 원하시는 분, 어려운 병이 있으신 분 다 오십시오.
능력의 종, 신유의 종, 축복의 종이 오셨습니다."

저는 전화번호부 책의 무당들의 광고와 그 신문 광고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경원 보살이란 용한 무당의 광고 문구를 그대로 옮겨 보면,
"집 안에 우황이 있는 분, 자녀들의 문제, 이성간의 불화, 가정 문제에는
산신기도가 즉효 했습니다. 언제든지 찾아와서 제가 모시는 산신을 만나십시오."
설화 무당의 광고는,
"몸이 아프신 분, 직업을 구하지 못하신 분,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의 전망,
사업 운이 없을 때 위기에서 개척방법, 배우자 만나는 방법과 시기,
모두 영으로 봐 드립니다."

뭐가 다릅니까?
무당들의 광고와 능력 있는 목사의 광고가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불교인들조차 그들의 기복 신앙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유난히 오늘은 
예수만으로 만족해 할 수 있는 "예수쟁이" 들이 그립습니다.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집으로 가자 (69) 집으로 갑시다 - 김성수 목사님



"집으로 갑시다."
얼마 전 우리 교회 엔지니어인 승호가 방명록에 올려놓은 글입니다.
글을 쓴 사람이 "최승호" 라고 적혀 있는 것이 제게는 참 생뚱했습니다.
승호는 말이 없습니다.
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는 법이 없습니다.
그 아이가 있던 자리는 아무런 표가 나지 않습니다.

승호를 만난 것은 벌써 4, 5년 전의 일입니다.
청년 문화 선교단으로 많이 분주했던 때였습니다.
한참 멤버들하고 연습을 하고 있는데,
미국에 와서부터 잘 따르던 음악 하는 동생 녀셕이 승호를 데리고 왔습니다.
엔지니어를 하고 싶어 하는 후배인데, 조인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승호는 그 때도 전혀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후에 'Art center' 에 설교를 하러 갔는데, 거기에 승호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다니는 우리 교회 청년 지원이의 죽마고우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는 줄곧 승호를 지켜봐 왔습니다.

그는 의리가 뭔지를 알더라고요.
그리고, 열심히 노동해서 번 돈으로 교회 동생들을 불러다 고기를 구워 먹이고
함께 운동을 하는 마음이 푸근한 사람입니다.
남들이 하기 꺼리는 허드렛일과 힘든 일을 아무 말 없이 해내는 멋진 사람입니다.
그런 승호이기에 개척 멤버이면서도 교회 게시판에 이제서야 처음 글을 올리는 
승호의 외마디 언질은
제게는 마치 큰 스림들이 일 년에 한 번 무슨 절기 때나 행사 때 내리는 법어처럼
여러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집으로 갑시다."

그 말 없는 승호가 가슴 벅차하면서 교회에게 이 말을 던질 때까지 승호는 많이 생각했을 겁니다.
집으로 가야만 우리는 살 수 있음을 승호는 알고 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지금 뼈아프게 겪교 있음도 제가 압니다.
그는 지금 뭔가 변화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 속에 그냥 담아두기에는 너무 벅찬 무언가를 승호는 알고 있습니다.
설교 시간이면 그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으며 몰두하는 그를, 저는 늘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말씀에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을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게으르고 가식적인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황소같은 녀석이기에 저는 승호를 좋아합니다.

요 며칠 승호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때도 아무도 모르게 슬쩍 와서 열심히 무언가를 기도하고, 그렇게 슬쩍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머물다 간 그 자리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기대와 소망도 그 자리에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엊그제는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 말 없는 승호가 기도를 하면서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저도 갑자기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
왠지 울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울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저는 황소같이 말이 없는 사람들이 참고, 참고 참다가 흘리는 눈물을 참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아버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주시는 내 아버지,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면서 나의 나 됨을 위해서 자기 아픔을 참으시면서
자식의 고통을 지켜보시는 그 아버지 앞에서 흘리는 그 눈물은
참으로 가치 있고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좌절의 눈물도 아니고, 실패의 눈물도 아니고, 패배의 눈물도 아니고,
내가 힘들 때 그냥 나를 바라만 보고 있어줘도 힘이 나는 다정한 어떤 존재 앞에서 흘러내리는
감사의 눈물이며,
안전함을 확인한 자의 안도의 눈물이며,
나의 손내를 빠짐없이 세세하게 이야기해도 진지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주시고
함께 끌어안고 울어주시는, 게다가 해결책까지 제공해 주시는 그 사랑하는 분 앞에서의
순결한 어리광입니다.

승호는 부유함이 뭔지를 경험해 본 아이입니다.
그리고, 승호는 강함이 무엇인지도 이미 압니다.
이제 승호는 하나님꼐서 왜 자기를 이렇게 이끌고 가시는지 그 이유를 안 것입니다.
그는 그래서 "단말마" 를 끊어버리는 고통,
"단말마" 같은 어려움과 신음 속에서 한 마디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집으로 갑시다."

우리는 그 "집" 에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 집으로만 향해서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상황과 환경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꼐서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안 사람만이
"집으로 가자" 고 형제들에게 격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 새벽에 우리 교회에게 승호가 한 이 말을 동일한 톤으로, 동일한 심정으로 하고 싶습니다.
"집으로 갑시다."
그래도 저는 우리 성도들이, 우리 하늘 가족들이 조금만 아주 조금씩만 아파했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집으로 가자 (68)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 김성수 목사님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후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 분을 비롯해서,
아직 대단한 가치를 가져 보지 못하고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어떻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까 벌써 27년 전 인가 봅니다.
저는 그 때 키가 제법 큰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뒤에 앉았습니다.
그 때 제 짝이 '동일' 이라는 아이였습니다.
조금 모자란 듯 그 나이에도 늘 코를 훌쩍거리는 키만 삐죽이 큰 아주 가난한 아이였습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늘 깍두기만 싸왔습니다.
작은 병에 한가득 깍두기를 담아서 혹시 국물이 흐를까봐
라면 봉지를 뚜껑에 꼭꼭 닫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점심 시간이면 예외없이 그
 신 깍두기 냄새가 늘 코를 찔렀습니다.
어떤 때는 거의 말라비틀어진 깍두기를 싸올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집에서 먹다 남은 것을 지가 혼자 꾸역꾸역 담아 온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참 좋았습니다.
누가 어떻게 놀려도 늘 헤헤 하고 웃기만 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다 정 못 보겠으면 제가 나서서 그 놀리던 아이들을 혼내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그렇게 늘 헤헤 거리기만 하던 동일이가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더니, 책상 안에 넣어둔 돈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책상 안에 넣었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반장이었던 저는 모두를 책상 위에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동일이 책상에서 돈 훔쳐간 사람은 조용히 자수해라."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웅성웅성 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울고 있는 동일이에게 "동일아, 너 돈 얼마 잃어버렸니?" 하고 물었더니, "20원" 그럽니다.
"20원?"
아무리 27년 전이라지만, 그 당시에도 20원은 동네 아이들 눈깔사탕 값도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정말 20원 잃어버렸어?" "응."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20원을 잃어버리고 중학생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엉엉 울다니 ...
머쓱해진 저는 반 아이들을 원위치 시키고 그 동일이와 함께 앉았습니다.
"동일아, 너 그 20원으로 뭐 하려고 그랬어?"
"아무 것도 할 건 없어, 그치만 처음으로 울 엄마가 준 돈이야."
"엄마가 처음으로 20원을 줬단 말야?"

그 아이는 생전 처음 엄마에게 용돈이라는 것을 받았던 것입니다. 단돈 20원을 ...
그런데, 그걸 잘 간수한다고 책상 안에다가 넣어 두었는데, 그만 잃어 버린 것입니다.
제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가 한 장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서 동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책상 깊숙이에다 20원을 넣어 두었습니다.
청소 시간이 되었을 때, 동일이가 펄쩍 펄쩍 뛰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동일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째 결석을 하자 담임선생님께서 절더러 그 아이 집엘 다녀와보라 하셨습니다.
주소를 들고 그 친구 집엘 찾아갔습니다. 흑석동 산동네였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 없었고, 버스를 타기 위해 중악대학교 앞을 지나오는데
저만치 동일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습니다.

"김동일" 하고 크게 불렀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한 번도 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늘 "반장" 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전히 코를 질질 흘리면서 "반장" 하면서 달려왔습니다.
"너 왜 학교 안와?"
동일이는 연실 싱글벙글 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죽었다."
그 말을 하면서 조금 시무룩해 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싱글벙글 하면서 "반장 만나서 좋다." 고 했습니다.
동일이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고, 다시 학교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린하우스 라는 빵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빵을 한 개씩 사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빵을 먹으면서도 동일이는 한 쪽 손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헤어지면서, 그 손에 뭐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동일이는 슬며시 손을 펴서 제게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20원, 그 아이 손에는 때만 꼬질꼬질한 20원이 그렇게 오랫동안 쥐어져 있었습니다.
아마 책상 안에서 20원을 찾은 후 한 번도 놓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는 그 20원으로 정말 만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100원짜리 동전을 주고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 20원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 얼굴이 또렷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20원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서럽게 울던 모습도 생생이 떠오릅니다.
20원을 손에 꼭 쥐고 단팥빵을 게걸스럽게 먹던 그 아이 얼굴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세상에 찌들지 않은 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아이가 보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와 이모들에게 세배 돈을 받았습니다.
봉투를 보니 1불짜리 몇 장과 5불짜리 몇 장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둘째 아이는 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주머니에 넣어 보았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주머니를 꼭 쥐고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제 귀에 대고 뭔가 속삭입니다.
"아버님, 내가 아버님 사고 싶은 거 다 사주께."
"나 돈 있어, 이거 봐, 이만큼 ~"

살짝 봉투를 열어서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 연신 뭘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그냥 저렇게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냘 저렇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작은 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언젠가는 변하겠지만,
지금의 그 순결하고 순수함이 좋아서 그 아이를 으스러지도록 끌어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아빠, 쪼코렛 사줘."
그런데 그 순간 괜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난, 언제 이렇게 변해 버린 걸까?"


집으로 가자 (67) 축도에 대하여 - 김성수 목사님



어떤 분이 축도 (benediction) 에 관한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예배가 끝날 때 목사가 하는 축도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가에 대해서요.
오래 전의 경험이기는 합니다만, 목사님을 청빙하기 어려웠던 시골의 여러 교회들에서
목사님이 있는 교회를 매우 부러워하는 것을 수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 중에서도 전도사님이 아니라 목사님을 교역자로 청빙하기를 원하는 이유 중 하나가
'축복기도' 때문이라 합니다.
예배를 마친 후
목사가 축복기도를 하고 교인들은 그 축복을 받아 한 주일 동안 살아가는 것이
커다란 힘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경우,
예배가 끝날 때 행하는 축도를 축복기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축도는 결코 축복기도가 아니며, 그 둘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축복기도' 란 특정 사람이나 특정한 일을 위해 복을 빌어 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종종 다른 성도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 후에 말씀을 맡은 자가 하는 축도와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축도' 는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백성으로서 무리를 이룬 성도들 (교회) 가운데 확인되는
하나님의 언약의 선포와 수용입니다.
그러므로, 그 축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맡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회당이나 교회가 모이는 장소에서 바울의 서신서 등을 거의 그대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 성경을 읽어주는 자가 듣는 자들을 상대로 간단한 해설을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설교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읽어가면서 보통 서신의 맨 나중에 나오는,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어 주시는 복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언약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기록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교회)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고린도후서 13:13) 하고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독하는 것이 축도입니다.
축복의 내용을 선포하는 것이지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축도 할 때만 살짝 들어가서 축복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지의 소치인 것입니다.

그 시간은 목사의 축복 시간이 아닙니다.
목사가 축복권이 있나요?
성도로서 서로 서로 축복해 주는 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만,
누군가가 축복권, 저주권을 가지고 그것을 행사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러니까 목사가 축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 교회 멤버들의 축복을 간구하는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축도를 한답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교회) 무리와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오히려 교만의 소치인 것입니다.
자기가 축원하면 될 수도 있다는 오해를 불러 올 소지가 있지 않습니까?

예배가 끝날 무렵 행해지는 축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복이 어떤 것인지를 그저 대독, 낭독하는 것이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교회)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하고 성경에 기록되 대로 낭독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가 검증해 보아야 할 내용 중 하나는 
축도가 지나치게 난무하다는 사실입니다.
결혼식장에서도 축도를 하고, 장례식장에서도 축도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개업이나 회갑이나 생일잔치 같은 데서도 축도를 합니다.
복을 빌어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우리의 그런 관행은 축도의 본질적인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모이는 자리가 아닌 그런 자리에서 행해지는 축도는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축도는 오로지 교회로 모인 성도들의 예배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의 상속을 의미하는 매우 중요한 표징이 되기도 합니다.

요즈음 예배당에서 어떤 의식을 거행할 때
예배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예우상 축도를 하도록 배려하는 식의 관행은
잘 점검되어야 할 것입니다.
축도는 말씀을 낭독하거나 강설하는 것의 연장이며 마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축도의 내용 가운데는 인간의 어떠한 의도도 배제되어야 합니다.
단지 정해진 하나님의 언약을 예배를 통해 공적으로 선포하며 수용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에서 행해지는 축도는
목사가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것인 양 본질적으로 크게 오해되고 있기 때문에
축도를 장황하게 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축도에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생각을 첨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그의 교회가 그의 말씀을 통해 확인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축도를 하는 목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도록 축원하노라.' 든지,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축도하는 목사 자신이 그럴 만한 권한을 위임받은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2013년 11월 30일 토요일

집으로 가자 (66) 꽃피는 봄이 오면 - 김성수 목사님



평범하다는 것, 일반적인 것은 그다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이며 평범하며 일반적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일 겁니다.
우리가 태양과 공기와 바람과 비의 소중함을 모르듯,
우리 주변에 흔하게 널려있는 것들은 그렇게 홀대를 받기 일쑤입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평범한 사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는 그런 평범을 달가와하지 않는가 봅니다.
그 영화는 그렇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자극적이고 과장된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그런 평범함을 반기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원도의 어느 막장에서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고, 나라고 꿈이 막장 인생이었겠느냐고 ..."
넋두리를 하는 어느 광부의 모습이 슬픕니다.
가난하지만 넉넉한 품을 가진 떡장수 할머니의 친절이 따스합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중학교 관악부 선생님의 헛구역질이 낯설지 않습니다.
"음악은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야" 라고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도
밤무대에서 색소폰을 불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그렇게 힘겹게 살다가 외로울 때면 전화를 해서 "엄마, 아픈데 없어?" 하고 묻는 우리네 정은
그렇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서울서부터 그 무거운 반찬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삼척까지 내려오신
세상의 엄마들의 위대함은 어디다 비길까요?
한숨을 쉬는 선생님께 "왜 한숨을 쉬세요?" 하고 묻는 어린 학생에게
"사는 게 힘들어서 그래." 하고 대답하는 선생님,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 눈물 지으며 "나도 힘들어요." 하고 고개를 숙이는 그런 평범한 삶들.

평범함을 산다는 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다들 특별하게 살고 싶고 특별하게 취급을 받고 싶어 하는 이 세상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기적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범한 이야기가 좋은가 봅니다.

탄광촌의 탄가루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눈병이 걸려오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픔에 동참하게 되어버린 선생님의 안대를 보면서 우리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트위스트를 추며 그들을 애써 위로하려는 선생님을 보면서
바른 목회자 상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평범한 세상 속에 예수를 소개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정열을 품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데이트를 하는 어느 여중생의 뒤로
이제 인생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떡을 인 할머니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망의 부질없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올 것 같은 알 수 없는 소망을 따라 살다가 하릴없이 가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제가 가진 이 소망과는 너무나 다른, 회색빛 소망들입니다.
그렇게 긴 겨울 뿐인 세상에 봄이 온다는 것을 소리쳐 외치고 싶습니다.

중고등부 수련회에 올라갔었습니다. 오늘 오전은 함께 스키를 타는 시간이었습니다.
큰 녀석이 중고등부 수련에 따라 올라갔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외지에서 잠을 자게 된 아들이 안쓰럽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워낙 얌전하고 묵묵한 녀석이라 불편한 것이 있거나 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혼자 이불 속에서 울 것이 뻔한 그런 밍밍한 녀석 ...

형들과 누나들과 스키를 신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한참 후에 뒤를 쫓았습니다.
저만치 아래에 아들 녀석이 넘어져 있습니다.
스키를 고작 두 번 신어본 아이인데, 너무 높은 곳에 올라와 있습니다.
아마 형들과 누나들을 좇아 올라왔다가 혼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살짝 뒤에 가서 보니 혼자 앉아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습니다.
뒤에서 "영민아, 아빠야" 했습니다.
아이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를 보더니 환하게 웃습니다.
안도의 표정, 이제는 아무 걱정 없다는 안도의 표정입니다.
"왜, 무서워?"
아이는 너무 무섭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어른들이나 올라오는 곳인데 네가 왜 여기까지 왔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를 달랬습니다.

"아빠가 업어줄게, 아빠한테 업혀."
아이가 대답합니다. "아빠, 나는 너무 무거워서 아빠가 못 업어요."
"아빠는 먼저 내려가서 스키 타세요. 난 그냥 걸어 갈 거야." 그 상황에서도 아빠를 배려합니다.

저는 스키 패트롤을 불렀습니다.
아이가 겁먹지 않고 재미나게 내려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네들이 오기까지 거의 40여 분간 아이와 산꼭대기 눈 위에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만 자라다오." 아이를 꽉 안아주었습니다.

썰매를 가지고 온 스키 패트롤들이 아이를 달래서 아래까지 내려다 주었습니다.
아이에게 끝까지 아빠가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패트롤이 끄는 썰매와 보조를 맞추어 아이에게 애써 웃어 주면서 아래까지 내려갔습니다.
아이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한껏 웃어주며 그 길을 갑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그럴 겁니다.
아니, 저 같은 인간은 흉내 낼 수도 없는 관심과 집요함과 고집스런 사랑으로
우리 곁에서 함께 달리고 계시니까요.
오랜만에 아이와 한가로운 평범한, 그러나 아주 값진 산상 대화를 나눈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을 수 없습니다.

30 여 년 전 제가 우리 아이 나이였을 때 아버님과 할아버지 산소에 갔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 둘이 산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일부러 제게 신기한 것을 보여주신다며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서 먹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제게는 잊지 못할 시간들입니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빠가 산 속에서 자기 어깨에 손을 얹고 한 그 이야기를 사는 날 동안 꼭 기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영민아, 영민이하고 아빠하고 천국에서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게 아빠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
특별히 유명해지지 않아도 돼, 너무 부자가 되지 않아도 돼,
평범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잘 살다 가자."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의 얼굴이 다시 떠오릅니다.

신림동 산꼭대기에서 야학을 할 때 일입니다.
하루에 한 끼를 정략으로 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하겠냐고,
아마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고 아무런 관심도 갖고 계시지 않는 분이거나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하나님은 죽은 거라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곤 하던 때입니다.

초등학교 육 학년에 다니던 한 아이가 아래 동네의 화려한 불빛을 내려다보며,
"선생님, 저 아래에는 별자리가 있어요. 가만 가만 살펴보면 수많은 별자리가 저 아래에 있어요.
나도 언젠가는 저 아랫동네로 내려갈 거예요."
라고 말하는 그런 작은 꿈을 꾸던 아이에게
"그건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이 아니라고, 진짜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은 다른 것이야" 라고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습니다.

지금 그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상진아, 평범한 건 창피한 게 아냐,
특별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어.
평범한 삶을 기쁘게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란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를 알지 못하고는 안 되거든.
예수를 알고 천국을 사는 사람들은 평범을 살 줄 아는 거란다.
그들에게는 다른 꿈이 있거든 ..."

우리에게는 그 봄이 꼭 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