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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4일 수요일

창세기 강해집 1,2,3 / 김성수 목사님 (2009)



[서문]

양복 입은 무당들
무당이 굿을 합니다. 신명나게 한판 노네요.
걸쭉한 목소리로 호령을 합니다.
정성이 부족하다고 ...
정성이 부족하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연신 돼지머리에 퍼런 돈 다발을 안깁니다.
그리고는 손바닥이 아려올 때까지 열심히 빕니다.
무당은 자기에게 강림한 신의 목소리를 흉내 냅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신기해합니다.
행여 신이 땡깡이라도 부릴까봐 돼지머리에 정성을 다하고
이제 허리까지 요동을 치며 빕니다.
다른 소리에 잡생각이 들까봐 소리를 크게 내어 기도를 올립니다.

무당은 열이 올랐습니다.
무당은 이 시점에서 맹한 구복자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합니다.
날이 시퍼런 작두를 펼칩니다. 그 작두 날 위에 머리카락을 한 올 올려봅니다.
머리카락은 서늘하게 두 동강이가 나고 사람들 마음은 더욱 주눅이 듭니다.
그 때 무당은 맨발로 그 작두 위를 걷습니다.
심지어 그 날이 선 작두 위에서 덩실 덩실 춤을 춥니다.
이제 그 곳에 모인 불쌍한 중생들은 그 작두 위에 선 무당과
그 위에 강림했다는 귀신에게 꼼짝을 못하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복을 위해서 무당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당 앞 강단에 어떤 이가 섰습니다.
탁자를 치며 목소리를 높여 무언가를 외칩니다. 때때로 노래도 불러줍니다.
우스개 소리로 웃겨주기도 합니다. 신명나게 한 판 놉니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복 이야기로 마무리가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복을 얻기 위해서는 정성이 필요하다고 협박을 합니다.
헌금이 부족하다.
봉사가 부족하다.
기도가 부족하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헌금을 합니다.
자기가 한 만큼 몇 배로 돌려 받을 수 있다는 그 강대상 앞의 무당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오로지 자신에게 떨어질 복에 관해서만 기도를 합니다.
다른 잡생각이 들까봐 큰 소리를 내어 자신의 귀에 자신의 목소리만 들리도록

기도를 합니다. 행여 다른 이보다 목소리가 작으면 정성이 부족하다
신이 노할까봐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무당이 작두를 타듯 강대상 앞의 또 다른 무당은 가끔씩 사람들을 쓰러뜨려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거품을 물고 쓰러지게도 합니다.
은니를 금니로 바꿀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풀릴 거라고
반복해서 외칩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추임새를 넣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 강대상 앞의 또 다른 무당에게 자신들의 정신을 빼앗깁니다.

거기에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없습니다.
그들도 예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는 예수는 복만 내려주면 되는 그런 예수입니다.
자신들에게 복만 내려준다면 그는 예수여도 좋고 몽달귀신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추악한 죄 덩어리인지 전혀 모릅니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 무서운 지옥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으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비록 이 세상의 복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예배당 안에서의 굿판은 오늘도 여기저기서 신명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무당들의 북소리에 맞추어 ...
부디 이 창세기에 들어있는 복음의 칼날이 양복입은 무당들의 춤사위를 멎게 하는
작은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라며

                                                                                         2009년 3월
                                                                                  California Santa Clarita에서
                                                                                                                 김성수



[창세기 강해 1] 천지창조와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1장~8장)  

제1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제2장 천지창조의 교훈
제3장 빛이 있으라
제4장 궁창, 궁창 위의 물, 궁창 아래의 물
제5장 세우시고 채우시는 하나님
제6장 새와 물고기 그리고 짐승들
제7장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다는 것
제8장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 가라
제9장 안식
제10장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제11장 생명나무와 선악과
제12장 에덴동산에 담겨 있는 복된 소식
제13장 아담과 하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제14장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제15장 가죽옷을 입게 된 자들의 삶
제16장 선을 향한 타락의 작정
제17장 더함과 제함의 저주
제18장 타락의 결과
제19장 심판 속에 꽃피는 구원
제20장 가인과 아벨과 셋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
제21장 구원받은 살인자들
제22장 살해하는 자들과 맞아 죽는 자들
제23장 왕, 제사장, 선지자 그 거룩한 삼위일체의 삶이여
제24장 여자의 믿음과 죽음의 신학
제25장 족보에 나타난 동행의 삶
제26장 노아의 방주와 물위를 걷는 자들
제27장 거인숭배문화에 젖어있는 저주받을 교회(Ⅰ)
제28장 거인숭배문화에 젖어있는 저주받을 교회(Ⅱ)
제29장 거인숭배문화에 젖어있는 저주받을 교회(Ⅲ)
제30장 거인숭배문화에 젖어있는 저주받을 교회(Ⅳ)
제31장 왜곡된 혼인관계와 심판이 담고 있는 것(Ⅰ)
제32장 왜곡된 혼인관계와 심판이 담고 있는 것(Ⅱ)
제33장 "그러나"의 은혜
제34장 하나님의 언약과 노아의 반응

[창세기 강해 2]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생애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9장~26장)
제1장 방주와 무지개 그리고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제2장 소수에서 다수로 전파되어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
제3장 아담, 가인, 라멕, 네피림, 니므롯, 바벨탑 그리고 아브라함(Ⅰ)
제4장 아담, 가인, 라멕, 네피림, 니므롯, 바벨탑 그리고 아브라함(Ⅱ)
제5장 바벨의 심판과 족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제6장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제7장 아브라함과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
제8장 성도드이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제9장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제10장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
제11장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
제12장 교회여 세상을 향해 출격(出格)하라
제13장 창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인신칭의
제14장 믿음의 왕 노릇, 은혜의 왕 노릇
제15장 은혜언약과 쪼갠 고기 그리고 할례
제16장 아브라함과 살, 하갈과 예수 그리스도
제17장 내 백성아,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
제18장 나그네를 대접하는 나그네들의 삶 할례 받은 자들이 삶
제19장 이기(利己)와 이타(利他)의 갈림길에서
제20장 농담으로 여겼더라
제21장 롯의 교훈
제22장 죄와 벌, 그리고 죄와 은혜
제23장 네 일이 다 선히 해결 되었느니라
제24장 이스마엘과 이삭, 옛 언약과 새 언약
제25장 브엘세바의 나그네
제26장 모리아산의 여호와이레를 통해서 본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Ⅰ)
제27장 모리아산의 여호와이레를 통해서 본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Ⅱ)
제28장 하나님의 언약과 그 언약에 속한 자가 치러야 할 대가
제29장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통해서 본 여호와의 전쟁
제30장 아브라함과 야곱 그리고 은혜의 사람 이삭의 삶
제31장 나그네의 귀향
제32장 하나님의 선택과 장자들의 삶
제33장 이삭의기도
제34장 보이는 팥죽과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언약
제35장 내 말을 들어라 내가 복을 주리라
제36장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주(Ⅰ)
제37장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주(Ⅱ)
제38장 이삭의 언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강해 3]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창세기 27~50장) 

제1장 일상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험악한 삶
제2장 교회로 흐르는 야곱의 축복
제3장 벧엘의 하나님
제4장 왜 야곱인가?(Ⅰ)
제5장 왜 야곱인가?(Ⅱ)
제6장 신랑과 신부 그리고 우물가
제7장 라헬과 레아 그리고 야곱
제8장 믿음, 그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물
제9장 얍복 나루터에서의 씨름
제10장 얍복 강 이후의 성도의 삶
제11장 실패도 은사다
제12장 예수 지옥, 김밥 천국
제13장 에서의 형통을 조심하라
제14장 꿈은 꾸는 것이 아니라 꾸어지는 것이다
제15장 창녀 다말, 유다를 구하다
제16장 고난의 목적지
제17장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왜 이리도 힘이 드는가?
제18장 복 받은 자의 삶에 찾아오는 기근
제19장 금관의 예수
제20장 내 백성아, 베냐민을 놓아라
제21장 이유 있는 모함
제22장 유다의 후손들아, 네 가슴에 양철북을 울려라
제23장 "내가 네 시다바리가?"
제24장 고통과 용서
제25장 거북이 날다
제26장 누가 과연 높은 자인가?
제27장 거룩한 빼앗김
제28장 지팡이를 의지하여
제29장 저주도 축복인가/
제30장 상선약속(上善若水): 신자는 죽어서 말한다
제31장 반용부봉(攀龍附鳳)

2012년 4월 3일 화요일

[사도신경 강해집] 예수는 교회를 낳고 교회는 예수를 낳고 / 김성수 목사님 (2010)


[서문]

진짜 사도신경의 진의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정을 도와 주신 Paul, Kelly 감사드리고, 늘 표지 디자인을 도와주는 우리 석진이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서머나 교회
교우들과 전 세계의 서머나 인터넷 모임 가족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Monterey Park 에서
                                                                                thinking of you 24/7
                                                                                                  김성수

[목차]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2.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와 경륜
3.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Ⅰ) : 예수
4.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Ⅱ) : 죽임 당한 그리스도
5.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Ⅲ) : 우리 주
6.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Ⅳ) : 외아들
7.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8.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9.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Ⅰ)
10.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Ⅱ)
11.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Ⅲ)
12. 장사한 지 사흘 만에
13. 음부에 내려가사
14.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15. 하늘에 오르사 : 승천
16.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17.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18. 성령을 믿사오며
19.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20.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요한계시록 강해집 1,2 / 김성수 목사님 (2010)


[서문]
역사는 묵시라는 씨앗이 시간 속에서 펼쳐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덮이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필연성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기각당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이 오롯이 서게 되는 묵시의 세계,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 하나님에 의해 완료된 묵시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묵시를 펼치면 역사가 되고 역사를 돌돌 말아 축역하면 묵시가 되는 것인즉,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공부하게 되면 역사의 이유와 존재의 의의를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 10월
                                                            몬트레이 팍에서 김성수

[목차]

요한계시록 강해집 1 묵시에게 공격당하는 역사

1.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1)(계1:1-8)
2.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2)(계1:1-8)
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1:1-3)
4.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계1:4-6)
5. 보좌 앞의 일곱 영(계1:4-8)
6. 예수 그리스도(계1:4-8)
7. 나라와 제사장으로(계1:5-6)
8.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1:7-8)
9. Union with Christ(계1:9-10)
10. 환난의 밧모섬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자(계1:10-16)
11.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계1:12-16)
12. 일곱 별과 일곱 촛대(계1:16-20)
13. 두려워 말라(계1:17-20)
14. 이기는 자는(계2:1-7)
15.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계2:1-7)
16. 서머나 교회의사자에게 편지하기를(1)(계2:8-11)
17. 서머나 교회에게 편지하기를(2)-교회의 아픔, 나의 아픔(계2:8-11)
18.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계2:12-17)
19.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계2;14-16)
20.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계2;18-29)
21. 이세벨의 가르침(계2:18-29)
22. 두아디라 교회의 남은자들(계2:24-29)
23. 사데 교회에 편지하기를(계3;1-6)
24.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계3:1-3)
25.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계3:7-12)
26.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계3:14-22)
27. 이미 완성된 천상의 교회(1)(계4:1-6)
28. 이미 완성된 천상의 교회(2)(계4:1-11)
29. 일곱 인(印)으로 봉한 책(계5:1-10)
30. 사자와 어린양(계5:1-8)
31. 지금 찬송 하십시오(계5:7-14)
32. 왜 하나님의 백성인 나에게도재앙이 임하는가?(계6-11)
33. 재앙의 정체(계6:1-8)
34. 순교자의 삶(계6:9-11)
35. 내 삶에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나타날 때(계6:12-17)
36. 교회의 신분과 영적인 실존(계7:1-17)
37. We shall overcome (계8:1-5)
38. 누구와의전투인가?(계8:6-9)
39. 거기서 나오라(Come out, my people)(계6:12-17)
40. 전갈을 밟으십시오(계8:13-9:12)
41. 이 만 만의 마병대(계9:12-21)
42. 배에서는 쓰더라(계10;1-11)
43.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10:9-11)
44. 교회의 전투와 교회의 권세(계11:1-6)
45. 약할 때 강함 되시네(1)(계11:7-13)
46. 약할 때 강함 되시네(2)(계11:7-13)
47. 일곱 번째 나팔(계:11:15-19)
48. 언약의 하나님(1)(계11:19)
49. 언약의 하나님(2)(계11:19)
50. 예수를 낳은 교회, 예수를 낳을 교회(계12:1-6)

요한계시록 강해집 2 창녀 고멜들의 혼인잔치

51.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아이(계12:3-6)
52. 성도는 무엇으로 이기는가?(계12:7-16)
53.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계12:17-13:8)
54.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13:9-15)
55. 666(계13:16-14:1)
56.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계14:1-5)
57. 그러므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14:6-13)
58. 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계14:12-13)
59. 바보처럼 살다가 가지 마십시오(계14:14-20)
60. 전능하신 이, 만국의 왕이시여(계15:1-4)
61. 주를 두려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들(계15:1-4)
62. 의로우신 하나님, 의의 길로 행하는 날(계15:3-4)
63.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계15:3-4)
64. 진노의 일곱 금 대접(계15:5-8)
65. 진노의 대접과 은혜의 대접(계16:1-11)
66. 아마겟돈 전쟁(계16:12-16)
67.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계16:17-21)
68. 하나님이냐 우상이냐(계17:1-5)
69. 음녀의가진 금잔(계17:1-6)
70. 다섯은 망하고 하나는 있고(계17:6-13)
71. 어린양의 전쟁(1)(계17:9-17)
72. 어린양의 전쟁(2)(계17:9,14-18)
73.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계17:17-18)
74. 무너져버릴 사치의 세력(계18:1-4)
75. '미아 헤메라'(계18:4-13)
76. 지나가는 자가 되시렵니가?(계18:9-24)
77. 할렐루야,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19:1-6)
78.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19:7-8)
79. 가짜 신부(계19:7-10)
80.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1)(계19:10)
81.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2)(계19:10)
82. 지금도 싸우시는 주(충신과 진실)(계1911-12)
83.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는 이름(계19:11-12)
84.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19:13)
85.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1)(계19:15-16)
86.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2)(계19-16)
87. 천년왕국(계19:17-21)
88. 최후의 전쟁 그리고 작은 전쟁들(계19:17-20:3)
89.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자들(계20:4-6)
90. 백 보좌 심판(계20:7-15)
91. 너희는 나의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계21:1-8)
92. 새 하늘과 새 땅(계21:1-8)
93. 이미 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계21:1-8)
94.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계21:9-27)
95. 생명수의 강(계22:1-5)
96. 아멘, 주 에수여 오시옵소서(계22:6-21)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김성수 목사님 (2008)



[서문]

이 세상 어느 누가 과연 자신의 인생은 만족한 인생이었노라고 고백하며
이 땅을 떠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푸쉬킨처럼 은연중에 삶은 우리를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자신들은 삶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삶이라 표현을 했지만 사람들이 정작 섭섭해 하는 것은
그 삶을 주관하고 있는 어떤 힘 있는 존재에 대한 투정일 겝니다.

인생을 앞에 두고 단지 허둥대기만 했던 무능하고 가련한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 대학 시절은 그야말로 삶에 대한 공상으로 웃었다 울었다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인생은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나는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이러한 부모와 이러한 가정과 이러한 나라에
태어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존재로부터 주어진 이 인생의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하며, 종국에는 이 땅을 떠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깜깜한 동굴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미국의 어느 조종사가 정리를 했다는 머피의 법칙은 꼭 나를 위하여 만들어진
법칙처럼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의 희망과 상상과는
늘 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하는 것 같았고, 저는 그 때마다 누군가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삶이 나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마에 첫 주름이 생겨날 즈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프랑스 시인의 고백처럼 인생에
대한 신뢰와 동의가 제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삶은 한 번도 나를 속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지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내가 지나간 그 시간은 분명
나에게 유익이었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나의 인격적 성숙에 기여를 했고, 기쁨과 흥분은
그 나름대로 나의 인생의 맛깔스러움을 보태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도 삶의 이정표가 좀 더 명확했으면 하는 바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때마다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그 큰 손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이끄심에 전적인 동의를 하게 되었지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 경륜하시는 창조주이시면서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벗이며 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어둡고 추악한 세상 속에서도 그렇게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며 동의하고
그 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부릅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잠시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이 땅에서 억지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소망은 이곳이 아닌 하늘에 있기에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가슴 깊은 진심으로 기도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는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십자가의 원리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의 저주의 나무 막대기에서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과 나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비우고 나를 죽여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원리는 힘의 원리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언제든지 남을 밟을 수 있고 하나님마저도 어르고 달래서 나를
돕는 힘으로 동원해 버리는 그런 원리이지요.

이 둘은 언제나 충돌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땅에서 순조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의 나그네와 이방인은 사회법 밖의 외인들이었습니다.
누가 괴롭혀도, 심지어 목숨을 위협해도 그들을 지켜 줄 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땅에서 바로 그러한 나그네요 이방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세전에 택함을 받습니다. 이 우주가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그 생명책을 근거로 우주와 역사를 창조하신 것이며, 여전히 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의 지킴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식을 자식답게 만드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깊이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반성문도 쓰게 하시고 때로는 회초리를 대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번쩍 들어 올려주시며 ‘잘 했다’ 칭찬해 주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다정히 보듬어 안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 인생이 이만큼 온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삶이 우리를 속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을 모독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삶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로
정확하게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지금 칠흑 같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계신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우리의 삶은 정직하고 정확하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혹 자신이 저질러 놓은 엄청난 죄 때문에 하늘나라 백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자신이 삶에게 속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더럽고 추악한 존재가 맞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본 모습을 망각해  버리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떠난 자들의 추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에게 직접 경험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지만, 그 지저분한
놀라움을 추스르고 더 이상 그러한 어두움과 더러움이 없는 새 몸과 새 나라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시 우리를 향한 정직한 삶의 기여입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우리 인생을 겪으면서 영원한 집인 하늘나라로 한발 한발 전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하늘의 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성도다움을 훈련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이 땅의 무대
세트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더러운 죄를 반복하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왜 나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한 가를 배우는 것이고, 허무(虛無)를 향해 돌진하는
역사를 바라보며 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쌓아놓은 물질과 공간은 불 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배우는 것이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결국 어떻게 그들의 최후를 맞는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만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개혁주의 신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들의 더러움이 폭로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뜻에 동의
하는 자들의 행복이 드러나는 한시적인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열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와 물질과 공간의
한시적 역할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하늘의 소망을 공고히 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가
병이나 고치고 사업의 흥왕이나 빌어주고 자녀들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는 무당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 저녁 여섯시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오는 애국가에 발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마음에도 없는 경의를 표하던 기억이 납니다.
예배당에 앉아 혹시 그런 습관적이며 형식적인 예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지요?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이며, 어디를 목적지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정말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저 어떤 힘 있는 존재의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이나 이루고
문제해결이나 하는 무속신앙의 모습과 섞여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의 말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비빔밥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기복교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정설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처럼 구복(求福)자가 어떤 큰 힘을 가진 존재에게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샤먼이라는 무당을 중재자로 세우고 그를 통해
치성을 드리는 것은 샤머니즘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목사라는 샤먼을 중재자로 세우고 하나님이라는 그저 힘만 센
비인격적인 어떤 존재를 달래고 닦달해서 복이나 받아내려고 하는 그런 무당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게 되면 첫 번째로 찾아오는 것이 ‘고난’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수많은 샤먼들은 자신의 세(勢)를 늘리고 과시하기 위해
그 ‘고난’ 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어줍지 않은 ‘복(福)’으로 포장을 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청중이 듣기 싫은 소리는 안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교회의 강대상에서 ‘죄’와 ‘회개’와 ‘고난’과 ‘심판’ 그리고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 같은 주제들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들이 ‘만사형통’ ‘질병치유’ ‘신비한 체험’ 같은
것들입니다.
과학적 논리로 무장한 현대인들은 과학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신기한 현상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넘어갑니다.
물질주의, 실용주의, 역사 낙관주의, 성공주의, 소유 지향성, 맘모니즘에 젖은 현대인
들은 만사형통의 당근 앞에서 허리를 조아리고 연신 ‘주옵소서’를 외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담의 자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掌中)으로 회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 보겠다는 타락한
인간들의 수많은 시도들과 열매들이 참으로 부질없음을 이 역사 속에서 올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자신의 추악함을 직시할
수 있도록 실수와 실패와 더러운 범죄도 때로 허락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절대 영원한 왕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 질병도 허락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참 행복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
하게 만드시기 위해 이 옛 하늘과 옛 땅이라는 물질과 공간에 정나미가 떨어지게도
만드십니다.
그러한 사건과 상황과 정황들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만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자기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락한 ‘자기’가 부인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자기를 왕처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다른 이들을 밟아왔던 옛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다른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다 가신 그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의 삶을 기꺼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성경은
‘천국’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렇게 자신의 손해로 남의 유익을 챙기는 삶이 과연 만사형통이요
일사천리로 나타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치성(致誠)을 드려 강청(强請)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기독교라면, 그 탐욕스런 기도 속에서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자가의 삶을 달게 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날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이 책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적지가 올바로 제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8년 3월 캘리포니아에서 김성수 목사
 
 
[목차]
 
제1장 인간과 죄 (1)
제2장 인간과 죄 (2)
제3장 신령과 진리의 예배
제4장 세례
제5장 성경
제6장 헌금
제7장 선교
제8장 안식일과 주일
제9장 삼위일체
제10장 성령 (1) 성령세례
제11장 성령 (2) 성령충만
제12장 성령 (3) 성령훼방
제14장 기적
제15장 신비주의와 기복주의
제16장 구약과 신약
제17장 은혜
제18장 믿음
제19장 캘빈주의 오대 강령으로 본 하나님의 사랑
제20장 성찬이란 무엇인가?
제21장 오식이란 무엇인가?
제22장 기도
제23장 주기도문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제24장 주기도문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제25장 주기도문 (3) 나라의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제26장 주기도문 (4)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인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제27장 주기도문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제28장 그리스도인들의 결혼관
제29장 그리스도인의 고난 (1) 고통 없는 지옥
제30장 그리스도인의 고난 (2) 피할 길은 있는가?
제31장 그리스도인의 고난 (3) 상처와 가계에 흐르는 저주?
제32장 죽음으로 나타나는 성도의 삶
제33장 교회 (1) 교회란 무엇인가?
제34장 교회 (2) 교회의 치리
제35장 교회 (3)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제36장 교회 (4) 교회의 본무-1 교회, 거룩을 향하여 가는 자들
제37장 교회 (5) 교회의 본무-2 교회,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들
제38장 교회 (6) 교회의 본무-3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사람들
제39장 교회 (7) 교회와 목사
제40장 교회 (8) 교회, 오직 예수로만 위로를 삼는 자들
제41장 교회 (9) 교회와 복음
제42장 교회 (10) 사랑의 공동체
제43장 교회 (11) 온전함을 향하여 온전케 되어지는 교회
제44장 교회 (12) 교회와 직분
제45장 교회 (13) 교회!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