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a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1-50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a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1-50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4월 29일 일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0) 왜 나인가요, 주님 (Why me, Lord)




내 마음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린다
"외롭니?"
 
나는 대답한다
"아뇨"
 
다시 작은 소리가 들린다
"너 아직 덜 외롭구나"
 
나는 작은 소리에게 대답한다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동무가 있는데, 외롭다니요"
 
나는 말을 이어 나간다
 
"당신이 내 곁에 안 계신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외롭습니다
나를 떠나지 마세요
항상 당신 곁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 작은 소리는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항상 네 곁을 떠나지 않는단다
네가 외로워 할 거라는 걸 아니까
그러니 내가 항상 네 옆에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해"
 
 
나는 당신을 기억할 수록
추하고 더러운 내 모습이 떠올라 정말 싫습니다
 
나는 당신을 떠올릴 수록
내가 죽인 수많은 이들이 생각나 정말 싫습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수록
나만 바라보는 당신이 정말 싫어요
이런 나를 알면서도 당신은 정말 나를 떠나지 않나요?
 
 
한 동안 그 작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아주 미세한 바람이 나를 스친다
 
"네가 나와 원수되었을 때에 내가 먼저 너를 사랑했단다"
 
 
When we were enemy of God,
He loved us first!
 
Why me, Lord?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9) 남자에게서 나온 여자의 부고 (Declaration of Death)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리로다!
 
 
시궁창보다 더 더럽고 추악한
내 입술
 
활활 타는 벌건 숯불로 지저 마땅한
내 혓바닥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 던져
세포 하나 하나가 녹아 들어가야 할
내 몸뚱아리
 
그런 내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다고
마냥 기뻐 웁니다
 
 
게달의 장막과도 같은 나를 보며 울고
그런 나에게 예수께서 찾아 오심으로 울고
왜 나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울고
 
 
당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자들을
당신에게로 부르시니 기뻐 울고
 
원수인 나를 어여쁜 신부로 불러 주시는
내 신랑이 사랑스러워 울고
 
왜 나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손사래를 쳐봐도
나와 같은 이들을 만나게 하시니 울고
 
 
당신을 떠나지 말라고
두 손 두 발을 못으로 꼭 잡아 주시고
 
당신만을 바라 보라고
머리에 가시로 띠를 씌우시고
 
당신만을 순종하라고
성령으로 인을 치셨네
 
 
죄의 노예로 이 세상에 태어나
의의 노예로 이 세상을 떠나기를 원하네
 
여전히 노예의 신분이지만
이제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가 되셨네
 
그 주인은 ... 뭐랄까
 
그 주인을 생각하면
시궁창 냄새가 나는 내 입술이 미소를 머금네
 
그 주인을 소개하면
살인만 일삼던 내 혀가 춤을 추네
 
그 주인이 나를 품으셨으니
사망의 몸뚱아리가 생명을 낳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2012년 4월 17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8)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 (Absolutely Not)


샬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함을 입었고,
이 땅에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나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저주의 물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높고 깊은지를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의 자리를 직시하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건져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 뿐일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의 본무임을 차츰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을 알아가는 내가
여전히 내 안에서 생산하고 내어놓는 것은 왜곡된 자기 사랑밖에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나,
일상 가운데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나에게 집중시키는 나,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나를 증명하려는 나,
나의 신앙을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려 나를 지킬려는 나,

나는 원래 죄인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나를 합리화시키는 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죄의 울타리에서 당신의 아들의 나라의 울타리로
이미 옮기셨는데,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하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죄의 울타리 안에서 나와 한 몸이었던 죄의 오염과 경향들이 깨끗하게 씻겨졌으니
이제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급급한 것이 우리네 슬픈 모습들입니다.

내가 처음 처해 있었던 그 자리가 어디였는지 알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이미 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기에게서 나오는 죄의 오염과 경향들로 인해 애통해 하기 보다는
아직까지 더러운 부분을 내가 깨끗이 닦아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지 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의 신앙을 나 말고 그 누가 책임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나의 신앙을 목사님이 책임져 줍니까? 나의 신앙마저도
다른 이들의 신앙에 투영하여 그 대상이 잘하면 내가 잘하는 것이고,
그 대상이 잘못하면 그 대상에게 칼을 들이대어 나의 존재를 지킬려고 하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자녀의 신앙을 주일학교 선생님이 책임져 줍니까? 자녀의 신앙마저도
다른 이들의 신앙에 투영하여 그 대상이 잘하면 내가 잘하는 것이고,
그 대상이 잘못하면 그 대상의 잘못을 지적하여 나의 존재를 지킬려고 하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모든 상황과 환경은,
죄의 울타리 안에서 죄인 줄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던 내가 죄를 자각하고

그 죄로 인해 몸서리치고 그 죄로부터 멀어질려고 해도 불가능한 자기 자신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울타리 안으로 값없이 옮겨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감사하고 찬송하며 그분을 즐거이 누리고
영원히 영화롭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정말 나의 신앙을 나 스스로 점검하고 확인해 본 적이 있었던가요?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요?
정말 나의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과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요?

나의 신앙의 승패가 좋은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고
나의 자녀들의 신앙의 승패가 좋은 주일학교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있으나마나 하신 분입니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책망하시며 바르게 가르치신다고 하셨는데,
나를 한 가정의 머리로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셨는데,
나를 교회의 멤버로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 같이 서로 섬기고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나에게서 나오는 것은, 나밖에 모르는 죄 곧 하나님의 말씀이 못마땅한 불순종

뿐입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자만이
나에게로만 향했던 왜곡된 사랑이 나와 원수였던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돌려질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한 사랑이 고갈될 수록 우리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밖으로 흘러 넘칠 것입니다.

세상이 그 어떤 미혹된 말로
나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밖으로 끌어낼려고 유혹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 속에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는 가운데
이 땅을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별일 없이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4월 5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7)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인 (The world has been crucified to me, and I to the world)


샬롬,
이 땅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나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무신론자조차도 자기 자신을 가장 가치있는 존재로 숭배하는 종교인이기 때문이지요.
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요즘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열심으로 일하시는 것은 뒤로 하고,
성령께서 떠나시면 쓰레기요 똥걸레에 불과한 우리네 인간들이 모두들 자기 열심을
내세우는 그런 생뚱맞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동안 모세가 안 보이니까
나를 위하여 나를 인도해 줄 지도자를 잃어버린 냥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그 어디서든지 마음껏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멀리 떨어져 있어 마음이 아리고 그리움이 더욱 가득차 함께 하고픈 소망이 있었건만,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며칠 밤을 새며 설교말씀을 모아 두던
그 때가 있었건만.

목회자를 떠나 보낸 교회의 슬픔,
목회자를 맞이 하는 교회의 기쁨,
교회의 슬픔을 회복하기 위해 후임 목사님을 구해 달라는 기도,
이제 더 이상 목사님 없는 신앙생활은 싫어 자기를 그 대상화 해 버리는 투사
(Projection),
나의 교회, 나를 위한 교회, 내가 만들어 가는 교회는 죄의 산물이요 멸망의 산물일
뿐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사랑은 난무하지만,
어느새 회개(메타노이아) 라는 말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입니다.
그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가 가는 길은 모두 다 옳은 길이라고 말하지요.
상한 심령, 자기 자신의 실체를 직시하며 애통해 하는 자는 사라져 버린지 오래입니다.

서머나 종교개혁, 서머나 신앙개혁, 이것이 왠말입니까?
종교개혁, 신앙개혁 다음에는 항상 더욱 더 피폐한 인간의 타락만이 드러날 뿐이었습
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으로부터 나오라고 했지,
언제 세상을 바꾸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시 돌아 오라고 했지,
교회의 이름은 곧 내 이름, 언제 교회의 이름을 이 세상에서 드높이라고 했습니까?

남의 가시를 손가락질 하는 자는 자기의 들보 곧 자기가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보지 못합니다. 여전히 세상과 부하뇌동하는 자요, 사지와 오체가 십자가에 못박혀
꼼짝달싹 못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땅을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별일 없이 살아내라고 우리를 보내셨는데,
내 목사님, 내 교회, 내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모습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지양해야 할 바로 여겨집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원수인 우리를 먼저 당신의 아들 예수의 피로 구속하시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이겠지요.
우리를 정복하시고 다스리시는 오직 한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리로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만을 붙잡고 오직 은혜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작정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한 기쁨을
함께 즐거워하고 영원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6)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하나님의 피조물, 똥덩어리(Shit)

어제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다섯 번째 날에 담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날에 창조하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그 가운데를 하늘이라고 칭하신

그 구조에다가, 다섯 번째 날에 온갖 새들을 하늘에 채우시고,
온갖 물고기들을 바다에 채우셨습니다.
그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복을 부으셨습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날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연이어 여섯 번째 날에는,
세 번째 날에 물을 모으시고 드러난 땅에다가 온갖 종류의 생물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날에 하신 일에 대해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말씀하신 문맥과 동일한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섯 번째 날에 하나님께서 부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복이
여섯 번째 날에 창조된 땅 위의 생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들을 만드신 후에 여섯 번째 날에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똑같은 복을 부으십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모든 생물들을 정복(subdue)하고 다스리라(rule over)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정복(subdue, 카바쉬)' 이라는 단어의 뜻은
"노예의 자리로 데리고 들어오다, 구속 아래로 복종시키다" 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일심동체 곧 한 몸이어야만 사람으로 불릴 수 있었던 그들이
만물의 머리로, 만물을 다스리는 대표로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드셨던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그 사람에게로 데려
왔는데, 그가 그들에게 어떤 이름을 짓는지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이름으로든지, 그가 짓는 이름이 각각 살아있는 피조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름에는 그 대상의 개성, 본성, 성격 등등의 고유한 성질이 설명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만물의 대표로,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인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리를 스스로 떠나버렸습니다.
어떻게요? "나를 사랑하니, 아니면 너를 사랑하니?" 라는 하나님의 그 시험에
마침내 아담과 하와, 한 몸이었던 그들이 타락의 자리로 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고 설마 너희를 죽이시겠어?
너희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게 되면 너희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사탄의 그 말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죄성이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옷을 스스로 입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핏줄로 이어지는 모든 인류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자로 폭로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모든 생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 하나님께 화를 내게 되고,
남자와 여자는 자기 잘난 맛으로 서로에게 대들고 기어오를려고 하고,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다시 혼돈과 무질서로 되돌아
간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혼돈과 무질서는 새 창조와 새 질서로 새롭게 내딛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아뭏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모든 인간들에게 동일한 시험을 주고
계십니다. "나를 사랑하니, 아니면 너를 사랑하니?"
모든 인간들은 그 시험에 넘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 당시, 이 땅에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인간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두번 째 날에 만드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의 경계로 두신 하늘을 찟으시고,
세번 째 날에 만드신 땅과 바다의 경계를 흔들어 버리셔서 150일 동안 물로 이 땅을
가득 메워 이 땅 위에 코로 숨쉬는 모든 생물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동일한 복을 부으
셨습니다. 또한, 아담에게 주셨던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동일하게 노아에게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창세기 1장에서 씨 맷는 식물들만을 모든 생물들에게 먹거리로 주셨던
것을, 노아 때부터는 고기(바사르)도 먹거리로 주시면서 생명되는 피가 있는 채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되는 피(네페쉬 바움, lifeblood)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께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 영원한 생명을 입었습니다.

그러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복, 그 영원한 생명이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 곧 구속 아래로 복종시킴과 어떤 관계가 있길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반복하여 말씀하시고 계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땅,
곧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그 땅을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까지 이길려고 했던 야곱, 그래서 새 이름을 이스라엘(승리)로 받았던 야곱,
그 이름은 우리의 죄된 본성을 그대로 폭로시키는 왜곡된 자기 사랑으로 가득찬
우리네 모습입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서, 그 자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을 말씀하실 때에, 마치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후손들에게'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 한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너의 후손에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 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분리되었던 사람에게
하나님의 언약 곧 여인의 씨, 자손에 의해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될 것을 알리시고,
생명되는 피를 흘리는 이스라엘의 한 자손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이고, 그분이 첫번째 사람이 실패했던 모든 생물들을
구속 아래로 복종시킬 자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만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 나라의 충만을 완성하신 분이며,
그분 안에서 하나된 당신의 백성들을 정복하고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이 그림이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둠 가운데서 이끌어내어
창세 전에 택정된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시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그들 또한 노아의 시대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물에 빠져 죽어야 할 하나님과 원수였던 나 입니다.
그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여김을 받았나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네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그 어떤 의로움이나 선함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러운 똥걸레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나에게 인식되어지는 것은
"나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아니구나, 나는 더러운 똥이구나!" 입니다.

우리네 인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똥이라는 것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똥이라구요? 내가 왜 더러운 똥이에요?"
"내 뱃속에 똥이 있으니까 내가 똥이 되는 건가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내가 똥이면 하나님도 똥이에요?"

어제처럼 아이들에게서 많은 질문이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그 모든 질문들은 "나를 왜 가치없는 존재라고 말해요?" 였습니다.
왜 나를 무시하느냐는 분풀이로 "내가 똥이면 하나님도 똥이지" 라고
발끈했습니다.


참으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죠.
어른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 속에서 칼을 갈면서도 겉으로는 태연자약 하는데,
아이들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죄된 본성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에게 아무 일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막상 자기를 무시하는 사건이 벌어지면 곧바로 자기를 방어하는 나,
나를 높이기 위해 하나님까지도 서슴없이 똥으로 전락시키는 나,
예수님의 죽음은 나의 살아있음의 수단과 도구 정도로 여기는 왜곡된 자기 사랑뿐인 나.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한 내가 자랑스럽지, 남이 그렇게 되면 배 아픈 나,
내가 정복하고 다스리는 주체가 되어야지, 남이 나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은
죽어도 싫은 나, 그런 내가 아이들의 질문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짐승이라고, 쓰레기라고, 똥이라고, 먼지라고, 헛됨이라고 외치고 있었건만,
정작 누군가에게서 "너는 정말 그런 놈이야"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내가 허허 웃으며 그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의 질문 속에서 나의 마음 깊숙히 가라앉아 있는 죄된 본성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확 저어 버리신 것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똥이야 ...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그 의와 거룩으로 우리를 덮으셨어.
그래서, 더럽고 냄새나는 그 똥을 지금도 예수님께서 꼭 껴안고 계시단다.
우리는 죽어도 하기 싫은 그 일을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하셨단다. 생명되는 그 피가
불타남은 나무토막 같이 쓸모없는 더럽고 냄새나는 그 똥을 덮으셨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실 때 그 생명되는 피를 흘리신 예수로만 여겨
주신단다. 그게 복된 소식, 복음이야.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똥이구나' 라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죄인됨을 가르치고 계시기
때문이야. 그것을 아는 하나님의 성도만이 다른 이들을 똥이라고 판단하며 정죄하지
않을 수 있어.



죄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 가다 거저 값없이 하나님의 울타리 안으로 옮겨진 후에도
어디선가 나는 똥냄새를 처음에는 다른 이들의 것으로만 알고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지만, 거기가 하나님의 품 안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면,
내가 바로 똥냄새를 풍기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



하지만, 똥냄새를 풍기는 죄인 역시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나 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지옥에 던져져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그래서, 그런 나를 품에 안으신 예수님을 우리는 더욱 의지하고 꼭 붙잡을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된 소식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야.

우리 함께 서로 돕고 나누며 예수님 만을 알아 가자.
세상의 그 어떤 달콤한 유혹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밖으로 나를 불러낼지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 가만히 서 있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를 정복하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성도 라는 증거란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나를 지혜롭게 할 만한 세상의 유혹들로 인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죽을만큼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아골 골짜기의 영원한 죽음의 문을 지나 성도에게만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소망 안에서 하나된 동무들과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천국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5)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은 (As Usual)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은



물끄러미 먼 산만 바라 보다
눈 웃음 한 번 지어 주는 것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 보다
기지개 한 번 펴는 것


입 벌리고 하늘만 쳐다 보다
목이 아파 드러 눕는 것


그 어느 누가 뭐라 해도
씨익 한 번 웃어 버릴 수 있는
그런 자유가 내 안에 있을까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유한 내가
세상 안에 갇혀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볼 수 있는 것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유한 내가
세상 안에 갇혀 있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 볼 수 있는 것


별 일 없이 산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유한 내가
세상 안에 갇혀 있는 나를
포근히 안아 줄 수 있는 것


그 어느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주님의 긍휼은 따스하다


별 일 없이 나를 대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고마웁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참 사랑스러웁다



 Les parapluies de Cherbourg (쉘부르의 우산)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4) 하나님의 선하신 일 (Good work) The Fourth Day



지난 주일부터는 히브리서 12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네 번째 날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 곧 하나님께 항복하는 자리까지
죽어도 가기 싫어하는 나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맞서 싸운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로서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편의대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 곧 사랑의 매를 때리십니다.
여기서, 징계(Discipline)는 '파이데이아' 곧 '자식 만들기'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속한 당신의 자녀로 여기시고 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만 향하는 우리를 가만히 놓아 두실 수는 없습니다.

그 징계는 우리가 받고 안 받고 하는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다 겪는 고난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선 검으로 인간의 죄된 본성으로 연합된 골수와 관절을 쪼개어
'이것만은 아니겠지' 하고 있던 우리의 숨은 내면까지도 폭로시키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조차도 보기 싫어하는 나의 추한 모습을 깨닫고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힘든 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에는 아픔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 아픔과 고통이 세상의 신이 되어 버린 내가 부인당하는 오직 한 길입니다.
지금 당하는 그 아픔과 고통이 사생자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나를 폭로당하기 싫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질려고 해도,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열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우리를 새롭게 빚어가십니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죽어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파하지만,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우리 주님의 지체들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 굳건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2월 14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3) 죽어야 사는 그리스도인 (Carcass 주검)


샬롬,

어제는 지난 주일에 연이어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천지창조 네 번째 날에 하신
일에 대해 나누는 가운데, 첫 번째 날에 오신 빛과 네 번째 날에 창조된 해, 달, 
별들의 빛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해, 달, 별들의 빛들이 어떻게 설명되어
지며, 언제까지 존재하며, 언제 소멸하게 되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요엘서 2장을 통해서,
역사의 마지막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 먹구름과 어둠에 뒤덮이는 날 곧 주님의 날에는
세상 사람들이 에덴 동산처럼 여기던 이 땅이 황폐해지고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질 것이며,
땅이 진동하고 온 하늘이 흔들리며,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잃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먼저 일어날 것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엘 2:27-31)
"이스라엘아, 이제 너희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과,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백성이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그 날에 내가 하늘과 땅에 징조를 나타내겠다.
피와 불과 연기 구름이 나타나고,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붉어질 것이다.
끔찍스럽고 크나큰 주의 날이 오기 전에, 그런 일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저주의 나무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던 그 날,
낮 열 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사도 마태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50-53)
"예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런데 보아라,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에,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 

사도 마태는 예수께서 죽으시던 그 때,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이 살아났는데,
굳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삼 일 뒤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도성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 곧 천상의 교회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어떻게 무덤에서 나온 그들이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그 분의 부활에 동참한 자들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순절 날에 하나님의 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창세 전에 택정받은 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사람으로부터 큰 사람에 이르기까지 서로 '너는 주님을 알아라'

하지 않아도 되며,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새 언약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예레미야서와 요엘서에서의 하나님의 계시가 성취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33)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이 일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알리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마지막 날에 있을 징조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마태복음 24:3)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메시아) 이다" 라고 속일 것이며,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나며, 지진과 기근이 있으며,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홀릴 것이며,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자칭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이 땅에서 외친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다시 오겠다" 하시고서

하늘로 승천하신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나는 그리스도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거짓 교사들이 예수 이외의 다른 길로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을

홀렸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든 일들은 고통(birth pain 출산의 고통)의 시작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너희는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바,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 급히 도망가라고,
다니엘서를 인용하시며 읽는 사람은 깨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면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사람들까지도 홀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 9:24-27)
"하나님께서 너의 백성과 거룩한 도성에 일흔 이레의 기한을 정하셨다.
이 기간이 지나가야, 반역이 그치고, 죄가 끝나고, 속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영원한 의를 세우시고,
환상에서 보이신 것과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고, 가장 거룩한 곳에 기름을 부으며,

거룩하게 구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재건되어서, 거리와 성곽이 완성될 것이나,
이 기간은 괴로운 기간일 것이다.
예순두 이레가 지난 다음에,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부당하게 살해되고,
아무도 그의 임무를 이어받지 못할 것이다.

한 통치자의 군대가 침략해 들어와서, 성읍과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홍수에 침몰되듯 성읍이 종말을 맞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끝까지 계속되어, 성읍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침략하여 들어온 그 통치자는 뭇 백성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굳은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이레의 반이 지날 때에, 그 통치자는 희생제사와 예물드리는 일을 금할 것이다.
그 대신에 성전의 가장 높은 곳에 흉측한 우상을 세울 것인데,
그것을 거기에 세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끝 날을 맞이할 때까지,

그것이 거기에 서 있을 것이다."

천사에게 환상의 뜻을 전해들은 다니엘은
21년 동안 심한 고생 끝에 겨우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 때에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던 그 모습대로 다니엘 선지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죽은 듯이 널브러진 그를 일으키시고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 11:30-35)
"서쪽 해안의 배들이 그를 치러 올 것이고, 그 때문에 그는 낙심할 것이다.
그는 퇴각하는 길에, 거룩한 언약을 맺은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할 것이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저버린 사람을 뽑아서 높이 앉힐 것이다.

그의 군대가 성전의 요새지역을 더럽힐 것이며,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없애고, 흉측한 파괴자의 우상을 그 곳에 세울 것이다.
그는 속임수를 써서, 언약을 거역하여 악한 짓을 하는 자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기 있게 버티어 나갈 것이다.

백성 가운데서 지혜 있는 지도자들이 많은 사람을 깨우칠 것인데,
얼마 동안은, 그 지혜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얼마가 칼에 쓰러지고,
화형을 당하고, 사로잡히고, 약탈을 당할 것이다.
학살이 계속되는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조금은 도움을 받을 것이나,
많은 사람은 술책을 쓰며 적군과 한패가 될 것이다.

또한 지혜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얼마가 학살을 당할 것인데,
이 일로 백성은 단련을 받고, 순결하게 되며, 끝까지 깨끗하게 남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끝 날이 올 때까지,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사도 요한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며,
죽은 듯이 널브러진 그를 일으키시고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다니엘서 9장 27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마지막 한 이레의 중간부터 시작되는 기간동안
거룩한 곳에 흉측한 우상이 서 있는 모습을,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6,13-17)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는데, 한 여자가 해를 둘러 걸치고, 달을 그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서 나타났습니다.
머리 일곱 개와 뿔 열 개가 달린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머리에는 왕관을 일곱 개 쓰고 있었습니다.
그 용은 그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서,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막 해산하려고 하는 그 여자 앞에 서서,
그 여자가 아기를 낳기만 하면 삼켜 버리려고 노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기는 장차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실 분이었습니다.

별안간 그 아기는 하나님께로, 곧 그분의 보좌로 이끌려 올라갔고, 
그 여자는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거기에는 천이백육십 일 동안 사람들이 그 여자를 먹여 살리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곳이 있었습니다.
그 용은 자기가 땅으로 내쫓겼음을 알고, 남자 아이를 낳은 그 여자를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가지고 광야에 있는 자기 은신처로 날아가서,
거기에서 뱀을 피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부양을 받았습니다.

그 뱀은 그 여자의 등 뒤에다가 입에서 물을 강물과 같이 토해 내서,
강물로 그 여자를 휩쓸어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땅이 그 여자를 도와주니,

땅이 입을 벌려서, 용이 입에서 토해 낸 강물을 삼켰습니다.
그래서 그 용은 그 여자에게 노해서, 그 여자의 남아 있는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과 싸우려고 떠나갔습니다."


종합해 보면, 교회 시대 동안 그 용, 사탄 곧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대적자가
하나님의 정하신 끝 날까지 하는 일은
거짓 복음을 강물같이 토해내어, 할 수만 있으면, 거룩한 언약을 맺은 자들을 속일 것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서 가만히 서 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참된 복음을 가르치며 많은 사람들을 깨우칠 것인데,
참된 복음을 전하는 몇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던져져 환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은 단련을 받고, 순결하게 되며,끝까지 깨끗하게 남을 것이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부활' 과 '둘째 사망' 이라는 말은 요한계시록 20장 5절과 6절에서만 나옵니다.
그 원어의 의미를 살펴 보면,
'첫째 부활'은 '부활, 그 어떤 것의 이전인 가장 좋은 것' 이라는 말이고,
'둘째 사망' 은 '사망, 그 어떤 것의 이후인 그 짝'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과 '사망' 은 서로 짝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서로에 대해서 설명하는 말인
것입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르고 죽어있는 상태 곧 죽은 자를 첫째 사망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반대편에서 영원히 죽어있는 상태 곧 죽은 자를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부활, 파루지아(옆에 있다)' 의 의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 사망은 어느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면, 첫째 부활은 어떻게 주어지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이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단 한 번 영원히 (once forver) 죽으신 분이십니다.

곧 부활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그 짝인 부활 이후의 사망과는 관계가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요? 단 한 번 영원히 (once forver)
어느 한 시점으로부터 그 상태로 시작하여

그 상태가 계속해서 한결같이 변함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 자는

부활이 또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로 굳어질대로 굳어진 사탄의 회당인 멸망당할 가증스러운 것,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어떻게 거룩한 곳에 서 있을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서 있는 것을 보는 동안에는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해도 믿지 말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세상 것으로부터 눈을 돌려
죽을지라도 끝까지 원래 서 있던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내 마음에 폭력적으로 들어 오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이 거하시는 집, 거룩한 곳, 성전으로 나를 삼아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한 번도 죽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
정말로 예수님과 함께 저주의 나무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믿은 적이 있었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언제 내가 종된 적이 있었나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내가 나를 주장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데, 언제 내가 죽었었나요?
그럼에도, 하나님과 그 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면 된다고 안심하는 '나' 입니다.

참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알아간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 안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내가 열심히 찾아서 내가 소유한 복음과 같지 않는 그 어떤 것도 모두 거짓 복음으로

정죄할 뿐입니다.
그것이, 죽기 싫어하는 내가 못박혀 매달려야 할 저주의 나무 들보인 것을 알지 못하는

나의 정체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그 들보를 직시하는 자는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가시를 볼 겨를이 없습니다.
내 안에 침노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그 들보에 달아매여 꼭꼭 숨겨져 있는 죄를 폭로해 가시며
당신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코뚜레를 꿰어 끌고 가시는 것을 진정으로 안다면,
형제나 자매가 처한 자기와 똑같은 모습을 어떻게 정죄하고 비판하며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로 굳어질대로 굳어진 사탄의 회당인 멸망당할 가증스러운 것은
바로 '나' 입니다.
그런데, 아골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멸망의 지옥 자식인 내가
어떻게 반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서 굳건히 서 있는 것인지 난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밖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골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죽어 마땅한 자임을 시인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죽은 자에게만 독수리가 모여들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유대 땅에서
그들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내가 부인 당하는 삶이, 내가 지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이기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자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실 것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에 그들만을 모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9-31)
"그 환난의 날들이 지난 뒤에, 곧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 때에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날 터인데,
그 때에는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천사들을 큰 나팔 소리와 함께 보낼 터인데,
그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그가 선택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자매들이 바라는 소망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모든 성도들이 다 죽어야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때에는 죽기 싫어하는 창세 전에 내버려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9-17)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성자 그리스도 예수도 모르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말합니다. 왜나하면,  
영원의 묵시는 '알았다' 또는 '알게 될 것이다' 라는 과거와 미래의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연합되어 영원을 사는 묵시의 그 때가 역사 속 그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으며,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누가 택함받은 자인지 유기된 자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을 그 날처럼 하나님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별일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13:4)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You shall acknowledge no God but me, no Savior except me."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
죽을만큼 힘들지라도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오늘도 내일도 끝 날까지 그렇게 살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모인 수많은 천사들과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집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그가 뿌리신 피 앞에 어떻게 내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히브리서 12:18-24)
그러나, 산을 향하여 절대 오지 않았고, 산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산은, 태워없애시는 불이요, 폭풍 속 칠흑같은 어둠이요,  나팔소리요, 진리의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이 추가로 더하여지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깨우쳐 알라고 구별해 둔 것 앞으로 절대 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 산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는 짐승이 있다면,

돌로 치거나 화살로 쏘아 넘어뜨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드러남은 너무나 어마어마해서 모세만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게 뭔지 몰라 마냥 벌벌 떠는 무서움으로부터 나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시온산 곧 하나님의 살아있는 도시인 하늘들 안에 있는 예루살렘,

열로 하나가 완성된 말씀을 가진 자
곧 율법의 조항들이 더 이상 갚아야 할 빚으로 인식되지 않는 하늘들 안에서 교제하는 자,
모든 것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의로 완성하는 영 곧 그리스도의 영,
새 언약의 중재자요 중보자이신 예수,
그 아벨 곧 없음을 감히 입으로 나불거리지 못하는 말로 말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세례

곧 살해당해 흘린 피,
여러분은 거기를 향해 나왔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 홀로 일하심으로 하나님이 이기셔서
그 승리의 개선 행진의 미말에 나를 두어 당신의 전리품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거저 들어간다니, 어찌 아니 기쁘겠습니까!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아바 아버지 그 분을 영원히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네 인간들은 광야 40일의 시험에 실패하여 광야 40년 동안 모두 죽었지만,
예수님은 광야 40일 동안 시험을 이기시고 광야 교회를 완성하셨습니다.
그 광야 교회의 완성을 예수님의 삶으로 우리네 인간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품에 안으시고 삼 년 반 공생애 동안 고난 받으셔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천 이백 육십 일, 삼 년 반 동안
성령님으로부터 받는 그 양육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하나님을 도구 삼아 인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나그네인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받아 '인간은 신이 아니고 짐승이다' 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어
자기를 신 삼는 세상으로부터 맞아 죽어 큰 길가에 버려져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환난의 삶을 반드시 통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우리 주님 예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허락하신 고난의 길이며,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 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는 죽을 힘을 다 해도 갈 수 없는 길이지만,
부활이신 우리 주님께서 함께 동행하시고,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된 동무들도 같이 가니,
그리 외롭지만은 않습니다.

눈물이 나오면 흘리지요, 우리 주님께서 닦아주실 텐데요.
한숨이 나오면 내쉬지요, 우리 주님께서 알아주실 텐데요.

형제가 보이면 기쁘지요, 자매가 보이면 기쁘지요,
우리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고 계신다는 증거니까요.
이겨라, 이겨라, 우리 교회 이겨라!


(마태복음 24:3)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4-5절부터 예수님께서 결론지어 말씀하십니다.
카이 아포크리노마이 호 에수스 에포
에고 블레포 메 티스 에고 플라나오
폴루스 가르 에르코마이 에피 호 오노마
에고 레고 에고 에이미 호 크리스토스 카이 폴루스 플라나오


원어를 번역하면,
그리고, 결론지어 그 예수 (호 에수스) 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속아 헤매지 않도록 주의깊게 바라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 이름 (호 오노마) 을 향해 온다.

내가 진리로 말한다. 나는 그 그리스도 (호 크리스토스) 이다.
그리고, 그 이름 (호 에수스) 을 향해 오는 많은 사람들이 속아 헤맨다.'


마태복음 24장은 8절까지 재난의 시작이 이러이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재난'은 '출산의 고통 (birth pain)' 곧 새 생명을 낳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15절의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에서
율법주의와 인본주의로 굳어질대로 굳어진 사탄의 회당인 멸망당할 가증스러운 것은

바로 '나' 입니다.
그 '나'가 거룩한 처소 즉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골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죽어 마땅한 자임을 시인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죽은 자에게만 독수리가 모여들 것입니다.

이렇게, 28절에서 그 출산의 고통 (birth pain) 의 마지막을 말씀하십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아골 골짜기에 묻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멸망의 지옥 자식인 내가
어떻게 반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서 굳건히 서 있는 것인지

난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밖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신 유대 땅에서
그리스도인만이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5-28절 중간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어,
그 어떤 거짓말로 속일지라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특히, 24절에서 언급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false' 가 아니라 'pseudo'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진짜와 똑같은 모조품 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 12장 4절의 에피소드와 똑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워서,

하나님께서 감추어 두신 비밀(secret)을 다 안다는 듯이
거들먹 거리는 행함이 정점에 달하는 날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이미 와 있지요.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내가 부인 당하는 삶이, 내가 지는 삶이요 하나님께서 이기시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죽임을 당하는 자만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실 것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마지막 날에 그들만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들만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비밀(mystery) 이신 그리스도 만으로 기뻐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9절을 원어로 보면, '아이 밴 자들' 은 '그 자궁 안에서 헛소리 하는 자' 이고,
'젖먹이는 자들' 은 '그와 같은 것 (교회) 안에서 여전히 젖만 빨게 하는 진리가 아닌 자' 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당연히 화가 있지요.
그 마지막 날(헤메라) 에 펄펄 살아 주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모양으로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boast, respect, honor, glorify)하면 좋겠습니다.


이곳 북가주 베이 지역에서는,
2011년 4월부터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선포되어지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주 수, 목요일 오전 7시부터 30분간 공중파 36.2 채널로 방송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


그 마지막 날 너머 그 새 날을 소망합니다.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2) 하나님의 선하신 일 (Good work) The Third Day


샬롬,

지난 두 주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천지창조 세 번째 날에 하신
선하신 일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창세기 1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마른 땅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뭍을 "땅(land)" 이라고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sea)" 라고 칭하시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이 모습을 창세기 8장에서 배웠습니다.

둘째 날 창조하신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이 하늘이 찢어짐으로 인해 합쳐져서
마른 땅 위에 콧구멍(nostril) 으로 숨쉬는 모든 생명체는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것들만을 품에 안은 방주(ark) 만이 백 오 십일 동안 물 위를
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하셔서 물이 물러가 마침내 마른 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아 번제물을 드렸고, 여호와께서 향기를
맡으셨습니다.

이 모습을 출애굽기 14장에서도 배웠습니다.

사면초과에 몰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애굽의 최정예 군대들이 그들을 죽일려고 서 있고
뒤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애굽을 빠져 나온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마른 땅 위의 코로 숨쉬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죽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천사가 애굽 군대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로 뒤로 옮겨가자
구름기둥도 뒤로 옮겨가서 애굽 군대 쪽은 어둠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 쪽은 빛으로
비추셨습니다. 주님께서 밤새 동풍으로 홍해의 물을 밀어내시니 바다가 물러가
마른 땅이 드러났습니다.

애굽 군대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을 불순종한 죽어야할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으로 나누시고 빛에 속한 자들만 마른 땅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어둠인 자들은 마른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른 땅 좌우에 서 있던 물들이 서로 합쳐
져 모두 죽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에서 나와 주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세례(침수례, baptism)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For I do not want you to be ignorant of the fact, brothers,
that our forefathers were all under the cloud and that they all passed through the sea.
They were all baptized into Moses in the cloud and in the sea."

할례(circumcision), 세례(baptism)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죽으심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힌바 되었고,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린바 되었습니다.

육적인 할례나 형식적인 세례의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성령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고 주리게 하시면서 사 십년 광야 교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들은 같은 영적 음식을 먹었고,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는데,
그것들이 반석이신 그리스도였다고 고린도전서 10장 3-4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They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 십년 광야의 삶을 살게 된 이유를
신명기 8장 2-3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그럼에도, 광야 교회가 사 십년동안 내놓은 결과물을
시편 78편과 95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편 95:10-11)
"사십 년을 지나면서, 나는 그 세대를 보고 싫증이 나서
'그들은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구나' 하였고,
내가 화가 나서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맹세까지 하였다."

사 십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폭로하는 정죄의 직분으로 서 있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압 땅에서 죽었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120 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
습니다. 그가 병들거나 기력이 쇠하거나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하나님과 동행한 모세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어 안으신 것임을 배웠습니다.

The Anointed One, 메시아, 그리스도, 구원자의 모형인 기름부음 받은 여호수아를 세워
하나님의 말씀인 언약괘(ark)가 앞장 서서 물이 철철 넘치는 요단 강을 마른 땅으로
드러나게 하시어
아무 자격 없이, 아무 공로 없이, 그저 면목 없이 은혜의 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1km 멀리 앞서 가는 언약괘가 안 보일지라도, 믿음으로 그 길을 따라가는 성도로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불순종하던 역사 속 그들이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안식으로 이끌려 가는 사건을
이미 완성된 묵시 속 교회로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창세 전에 완성된 묵시 속 하나님의 교회는
역사 속 하나님의 교회로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아득하게 멀리 앞서 가서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겸손하게 순종하는 믿음과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 십년 광야 인생의 고난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하나님 당신을 알리시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 20:2)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값없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목적을
항상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1) 사랑 (Love)



찬송하리로다!

창세 전에 말씀이 계셨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네

하나님의 말씀은 참 빛이요 진리요 의(디카이오수네) 라네
그 말씀이 이르시기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네
그 계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임을 알았네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면
자기 안에 진리와 의를 소유하는 줄 알았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대언한 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소유한 진리와 의가 죄임을 알리셨네

그들은 메시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기들이 어둠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담아 보내신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네


오! 하나님의 긍휼의 때라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보내셨네
그들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을만큼 낮아지셔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으로 그들 가운데 오셨네

그들은 너무나 사랑한 그리스도 라고 그 분을 기뻐했으나
자기를 경배하고 섬기기 위해 만든 구원자와는 다름을 알고는
그들의 열심으로 소유한 말씀이 거짓으로 폭로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네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 분 예수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죽였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했네


오! 하나님의 영광이라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신인(God-Man) 예수는
당신 스스로를 부인하심으로
당신의 말씀 아래 저주의 십자가에 죽으셨네

이제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자랑하지 못하네

모든 사람은 전부 죽어서 영원히 무덤에 묻히지만
예수 그 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기 때문이네


오! 하나님의 은혜라

그 어떤 육체도 지킬 수 없는 옛 계명,
사망의 법으로 육체를 가두어 두었던 옛 법이 파괴되고
그 어떤 육체도 저항할 수 없는 새 계명,
생명의 법으로 육체 안에 내주하시는 새 법이 완성되었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명의 법이 심겨진 육체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시네

부활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으로 소망하게 하시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부터 죽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가는 자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네

내가 사랑했던 하나님이 내 안에서 파괴되어지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예수를 내 안에서 드러나게 하시네

하나님은 정말로 사랑이신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