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a 집으로 가자 71-75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a 집으로 가자 71-75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집으로 가자 (75)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 김성수 목사님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열흘 동안 금식을 하는 말미에 집어 읽기 시작한 200 페이지 정도 분량의 책 이름입니다.
현각 스님이란 분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잘 설명해 놓은 책이라는
서울대 김윤식 교수님의 서평을 읽고 사다가 던져 둔 책을 뽑아 읽었습니다.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몸과 마음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터라 이틀 동안 이리 저리 몸을 편하도록 뒤집으며 읽었습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사찰에는 벽안의 스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파란 눈에 하얀 피부 그리고 미소가 매력적인 서구의 스님들이 동방 한국의 불교에,
그것도 선방에 관심을 갖고 동안거 하안거를 엄격히 지켜가며 정진 수도를 합니다.
저도 전에 합천 해인사에 들렀다가 그 계곡의 아름다움과 사찰의 적막함에
대웅전 뜰에서 그 풍경을 우두망찰하다가 벽안의 한 스님이 빨래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현각! 그는 저와 동갑입니다. 1964년생,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터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예일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그 천재가
한국에서 온 땅딸막한 한 스님의 설법을 듣고 한 번에 불교에 빠져들어
수많은 부료 경전을 영어로 번역하고 화계사로 출가를 해서
그 다복한 가정이 유일하게 한 자리에 모이는 크리스마스에도
동안거를 치르느라 전화로 안부만 전한다는 그런 지독한 불교인이 되었을까?

그는 원래 아주 부유한 집안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들과 누나들 동생들은
모두 미국 최고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엘리트들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풍족한 집안의 아들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카톨릭 집안의 전통을 따라
‘Paul' 이란 영세 명을 본명으로 쓰고 있었을 만큼 성실한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진리가 무엇일까를 너무나 골몰히 고민하면서
기독교로 개종을 해 교회도 몇 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말이 본인에게는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하버드 도서관에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를 독파하던 중 한국에서 온 생불이라 불리는
숭산 스님의 설법을 하버드 대학 강당에서 듣게 되고 거기서 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코 후회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하버드의 천재를 매혹시킨 그 설법의 요약을 저도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고, 성경에서 대답을 들었을 그러한 질문과 답,
이 시대의 교회가 그런 역할조차도 못해주고 있는가 의아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너는 왜 이 땅을 살고 있는가?
마음은 무엇인가?
생각은 무엇인가?
'나' 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성경을 통하여 너무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 저는 오히려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예일의 철학과에서, 하버드의 철학과에서, 독일의 철학자들이 
그 정도도 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가?
저는 그 생불이란 스님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 나가며 책을 읽어갔습니다.

하버드와 예일은 이미 오래전에 불교에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고승의 설법 한 번에 교수, 학생 할 것 없이 3000 명이 모여 열광한다고 합니다.
청교도가 세운 그 학교들이 왜 진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당대의 천재들에게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어떻게 지금 나에게는 이해가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믿어지며 그 진리 안에서 나는 이토록 자유한가?
나는 오늘 지구의 종말이 와도 행복하고,
나의 삶이 이 지겨운 광야에서 50 년이 더 지속된다 해도 괜찮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곳이 나에겐 천국이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천국 같은 화려함은 나에게 지옥이다.
어떻게 내가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 이토록 자유하게 되었는가?’

그리고는 은혜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습니다.
저의 마음속에 말 할 수 없는 환희가 끓어오릅니다.
어디론가 발산해 버리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기쁨.
저는 지금 열흘째 굶고 있고 여전히 어려운 생활의 목사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이 환희가 어떻게 저에게 가당한가요?
미치도록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금식이 끝난 새벽 무릅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가 뭔지를 압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 천국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제가 왜 이 땅을 살아야 하는지도 너무 잘 압니다.
저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이렇게 명확히 압니다.
내 주님과 함께라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느 곳이든 상관없는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주님 어떻게 제가 이렇게 된 겁니까?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저를 이렇게 만드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인이 받은 그 저주의 표를 저도 마땅히 받아야 함에도
저는 이렇게 가인을 불쌍히 여기는 자가 되어 있다니요.
저를 막아서고 그 저주의 표를 대신 받으신 그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나님,
이 땅을 살면서 인기 있는 사람 되게 하지 마시고, 유명한 사람 되지 말게 하옵소서.
단지 나의 삶을 보며 예수가 드러나는 작은 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혹시 저를 향해 박수를 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고, 나에게 맡겨주신 세 아이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사람보다는 바른 신앙인으로 키우게 해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찮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바른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성도의 죽음까지도 귀히 보시며 기다리시는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의 진심이었습니다.
이 벅차오르는 감격이 오래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

집으로 가자 (74) 달은 해가 품은 꿈 - 김성수 목사님


달은 해가 품은 꿈 ...
어느 유명하지 않은 삼류 시인의 시집에서 읽었던가?
아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어떤 영화의 제목이었을까?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이 내 기억에서 사라진 이후로 내 마음 한켠에 숨어 있다가
가을이면 어김없이 고개를 내미는 말입니다.

달은 해가 꾸는 꿈 ...
휘황한 궁에서 멋진 왕자와 과분한 춤을 추다
열두 시면 어김없이 계단 아래로 뛰어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해가 뜨면 저물어야 하는 조각달의 실존을 꿈이라 말합니다.
그 꿈은 절대 해와 만날 수 없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한동안 저는 장충동의 국립극장에 자주 갔었습니다.
딱히 볼거리가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국립극장 뒤로 나 있는 남산의 오솔길이 좋았고,
오솔길을 돌아 내려와 다시 국립극장 계단에 앉아
언젠가 TV 주말의 명화에서 본 적이 있는 '로마의 휴일' 을 떠 올리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프랑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홀로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낙엽이 지는 국립극장 마당을 지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천천히 걸어서 장충단 공원으로 향하노라면 그 알싸한 바람이 얼마나 좋던지 ...
초록을 잃은 나뭇가지의 설움은 눈물처럼 하나씩 낙엽을 떨구고,
돌아서 가는 나의 등을 떠미는 스산한 가을바람은 벌써 겨울을 흉내 내던 때 ...
그렇게 천천히 나의 가을의 냄새를 맡으며 장충단 공원쯤 가면
저만치 벤치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갈 곳이 없는 아비들의 모습이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유화처럼 내 눈에 서러웠던 때.

저는 그런 시간을 즐겼습니다.
한국의 가을의 냄새는 여지없이 지금도 저의 후각에서 재생이 될 만큼 향기롭습니다.
아, 가고 싶습니다.
이 가을에 내 조국 대한민국의 향기를 원 없이 맡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할 수 있는 향기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무렵 그런 도심 속에서의 한가로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저에겐 좋은 선배가 있었습니다.
당시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란 밴드의 키보드를 치던 박성식 형이었씁니다.
그 선배는 신학교 출신이었으며, 언제나 전화해서 신앙인으로서의 갈등을 서슴없이 나누고,
명절에 혼자 남은 그 선배의 자그마한 부천의 아파트로
전이며 지지미를 싸가지고 가, 몰래 술잔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었습니다.

성식 형의 작품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던 노래는 "비처럼 음악처럼" 이란 노래입니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이렇게 시작되는 김현식 선배의 노래,
아마 저는 그 노래를 만든 사연을 열 번도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보낸 한 남자의 여운은 그리도 길더군요.

어느 날 그 형이 던진 한 마디가 저에겐 지금까지도 이렇게 웅숭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이 있다.
아무리 작은 꿈이라도, 그 당사자에겐 저 태양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소중한 것이지.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정말 화려하고 매력 있는 그런 꿈.
난 거의 그 꿈을 잡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나에게 알게 하셨다.
너를 향한 나의 꿈은 그것이 아니라고 ..."

그 후 그 선배는 신앙인으로서의 올곧은 길을 가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고,
지금은 가스펠 가수들의 음반 작업이나 콘서트의 연주만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그 선배를 보았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지금 그의 모습은 아주 초라하고 형편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만족하고 본인이 기뻐하는 것을 ...

제가 미국에 와서 유일하게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던 곳이 
바로 헐리웃에 있는 기타센터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제가 그토록 흠모했던 Jeff Beck 이나 Jimmy Page, Steve Vai, Ray Vaughan 이
직접 쓰던 기타와 악세사리들이 진열되어 있고,
꿈에서나 그리던 마틴이며 깁슨 기타들이 수십 개씩 진열되어 있는 그 곳에,
저는 볼일없이 자주 들르곤 합니다.
그들이 찍어놓은 손도장에 슬쩍 손을 가져다 대 보기도 하면서 
저의 어릴적 꿈을 되새기곤 했습니다.

그 기타센터 바로 건너편에는 메사부기 라는 기타를 파는 곳이 있고,
그 위층에 Neely 라는 기타 수리공의 작은 작업장이 있습니다.
별로 좋은 기타는 아니지만, 저는 기타에 문제가 있으면 항상 그 곳에 그를 만나러 갑니다.
그는 기타를 고치는 실력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 솜씨 또한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에 최고입니다.
그런데, 항상 그는 때가 꼬질꼬질한 앞치마를 두르고
작은 나무망치로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연주인들의 기타를 고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의 옛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그는 정말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였으며,
그는 에릭 크립튼이나 마크 노플러를 능가하는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이러저러한 사건과 사고로 그런 꿈이 점점 사라지고,
이제 남의 기타를 고치는 수리공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칭찬이 자자하던 기타리스트 시절에
그의 어머니의 하나님은 그의 마음 속에 들어오실 자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의 꿈이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
그 허황한 꿈 뒤에 계신 하나님이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그 삶이 더 없이 행복하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식 형이 생각났습니다.

꿈이 사라지자 태양이 보이더라는 동일한 둘의 고백!
마치 달이 스러지면서 태양이 떠오르듯, 
인간적인 목표에 의해 저 멀리 물러나 가려져 있던 하나님,
그것이 사라지면서 하늘의 좋은 것을 발견한 사람들,
일도양단의 그들의 결단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인도 되어진 그들의 삶이
그렇게 복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라들이, 열 왕들이 그를 좇아 나리라는 언약을 하십니다.
참 놀랍습니다.
당시 수많은 나라와 왕들과 족장들이 있었고 부자와 지식인들이 있었지만,
그 역사의 주인공은 아브라함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의 자녀가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 열 왕들은 그 드라마의 엑스타라 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아브라함만이 보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 탈 때에,
하나님은 그 나라의 왕이 누구인지를 물으시지 않으신 것을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의 자녀 열 명을 찾으신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금 세상의 주인공은 단연 '조지 부시' 라든가 '빌 게이츠' 같은 거물들인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들을 위해 쓰여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우주는 경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엑스트라들이 누리고 있는 그런 화려한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 꿈이 혹시 하나님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말입니다.

이제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은 하나님의 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꿈과 하나님의 꿈이 일치되는 그 순간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를 위해 꾸던 꿈을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을 우리의 삶에 이루어 갑시다.
예수가 그렇게 가셨고, 나의 신앙의 선배들이 저렇게 그 길을 가고 있으므로,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2013년 12월 6일 금요일

집으로 가자 (73) 아름답기 위하여 깨어진다는 것은 - 김성수 목사님



실패를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좌절을 가져오고 상실을 가져오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할 뿐입니다.
그게 인지상정 (人之常情) 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다 보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실패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었음을 
왕왕 (往往) 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보며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며 망해 갔고,
사도 바울 또한 자신의 약함으로 예수의 강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다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관점으로 그 분이 과연 성공한 메시아 인가요?
그 분은 배반당하고 모함을 받고 모욕을 받으며,
심지어 아무 저항도 못하고 나약하게 십자가에서 죽어버리셨습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 실패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후서에서의 바울의 고백처럼, 그리스도는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강함이 되었고,
심지어 그것은 영광스러운 실패였다고 역설을 내어놓습니다.
예수께서 과부와 창녀, 세리와 이방인, 병자들과 같은 실패한 인생들만 찾아다니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란의 테헤란 궁에 가보면 그 입구가 가히 장관입니다.
제각기 아름다움을 경쟁하는 수많은 다이아몬드들의 합창처럼 
태양을 몸으로 받아내어 만들어 내는
그 보석 무지개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그 아름다움 앞에 숙연케 합니다.
 
그 입구는 원래 그렇게 지어지도록 설계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건축가는 그 입구를 온통 거울로 장식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거울을 주문하고 배달된 거울을 뜯어보니 모두 깨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반품하고 새 거울을 달자고 했으나 그 건축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축가는 깨지지 않은 거울들을 마저 깨버리고 그 깨진 거울들을 석회에 개서 입구에 발랐습니다.
태양이 떠오르자 그 깨진 거울들은 놀라운 장관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 건축가는 “이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거울은 스스로 깨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 그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시지요?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LA 지역의 문화 예술인들을 모아 Forum 2030 이라는 문화 선교단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모임에서 늘
“우리는 실패할 거라고, 여러분은 우리의 의도가 실패해 가는 것을 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거절당한 그 거절을 느끼게 될 것이고,
우리의 노력이 외면 당하는 것을 느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느껴 보는 게 우리에게 축복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비전이나 야망을 하나님의 힘을 빌려 이루어 내고 성취하여
하나님의 관심을 사려 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좀 도우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자신에게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지어져 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불가능함과 추악함을 올바로 인지하고
그러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가 죽으실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서 나약함과 실패와 실수와 여전한 죄 속에서 
우리의 죄악 된 실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와 실수와 깨어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늘의 것으로 아름답게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내달라고 구걸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우리 (I)’ 라니까요.
우리는 찬란한 하늘의 것으로 완성이 되기 위해 이 땅에서 많이 부서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그걸 성경은 '고난 (suffering)' 이라고도 하고 '환란 (tribulation)' 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성도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도와 이 땅을 지상 낙원으로 만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잘 다듬어져 온전한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왜 그렇게 실수투성이 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나만 그런 줄 알고 그동안 그 실패의 삶을 숨기느라 얼마나 노심초사 하셨어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약한 존재이고 많이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 때 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꼭 붙들고 계신 우리 아버지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붙드십시다.

아름답기 위해 깨어져야 하는 신앙의 비밀을, 그 역설을

여러분이 꼭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3년 12월 5일 목요일

집으로 가자 (72) 술 이야기 - 김성수 목사님



저는 대학시절 유난히 술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글 쓰는 선배들을 좋아했기에 그들을 자주 만나서 밤을 패가며
김수영, 신동엽, 기형도, 천상병 같은 외로운 천재들을 이야기했고,
신현림, 최영미, 공지영 같은 당찬 신세대들을 찬미하기도 했습니다.

또 저에게는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우리는
딮 퍼플과 레드 제플린, 그리고 마크 노플러와 에릭 크립튼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음악을 하는 친구들, 선후배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당시 우리 영웅들의 음악을 밤새 듣곤 했습니다.

또 저에게는 정치하는 선배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민중을 위하느라 투쟁을 하노라 하면서
정작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면 지극히 이기적인 세상을 향한 투정을 해대던
나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라 저는 쉽게 거기에 익숙해졌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건 핑계였습니다.
정말 이유는 20년이 넘게 교회를 다니면서 그 많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이렇게 마음 속에 끊임없이 죄에 대한 욕구가 솟구쳐 오르고,
하늘에 눈을 두고 살겠노라고 그렇게 수많은 기도를 드렸음에도
여전히 세상을 향한 욕심이 내 속에 여전히 꽉 차있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현실을 잊기 위해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곤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소외된 자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어찌 있을법한 일인가?' 하며
빈민운동을 하던 저에게 '네가 정말 이들을 사랑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거기에조차 저의 공명심이 더덕더덕 붙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더더욱 저라는 존재에 대해 실망을 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술은 저의 밤 친구가 되었지요.
술이 깨면 이내 드는 생각이 '혹시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였습니다.
당시 나는 서울 강남의 큰 교회의 청년부 회장으로 있었고,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신앙이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전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쫓겼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그 불안감을 해소해야 했고,
그 때 나와 함께 해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선배들이었고, 노래하는 진구들이었고,
정치를 하는 선배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내 안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확인하게 된 날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고,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보내고 있었습니다.
전도사가 되어 처음 부임한 동부의 한 교회에서 수요 예배 설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전도사에게 설교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지요.
그래서, 일찌감치 설교 준비를 마쳐놓고 수요일을 기다렸습니다.

헌데 당시 저는 참 생활이 힘들었습니다.
세 아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모두 어렸고 막내는 갓난아기였습니다.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에게 어떤 날은 먹을 것을 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자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모든 것 포기하고 분연히 일어난 제게
이 정도 문제도 해결 안 해 주시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이 미국 땅에 와서 거지처럼 food stamp 나 받아서 살아가는 절 보면
제가 아는 친구나 선배들이 저더러 하나님 위해 일한다더니 꼴 좋다고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무슨 망신입니까? 저는 굶어도 괜찮지만, 가족들은 좀 생각해 주세요."

수요 예배 설교를 하기 바로 전 날인 화요일이었습니다.
저는 동네 마켓에 들어가 캔 맥주 하나를 샀습니다.
그걸 잠바 안에 얼른 집어넣었습니다. 가슴이 쿵쾅 뛰었습니다.
그리곤 차를 몰고 얼른 교회 뒤편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 입에 그걸 다 털어 넣었습니다.
오랜 시간 마시지 않았던 술이라 그런지 금방 몸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한 번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이래도 여전히 제 힘든 상황은 달라진 게 없네요."

다음 날 수요 예배 설교를 하러 단에 올라갔습니다.
설교 원고를 가지고 올라가서 섰는데 마음에 자꾸 그 전 날의 일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망의 말씀이요, 감사와 감격이 전해져야 하는데
이렇게 패배자의 모습으로 힘겨워하며 거짓으로 전할 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전 날의 일을 거기에 모여 있던 성도들에게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어제 너무 힘이 들어서
예전처럼 술을 마시면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맥주를 하나 사서 산에 올라가 마셨습니다.
제가 맥주를 하나 사서 마신 것이 하나님과 저의 관계에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을 때 저는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에게 오는 기쁨과 감격, 행복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할 것이고, 
고통과 좌절 실패가 오더라도 하나님의 응답과 해결을 기다리겠노라고
절대 나의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해소하려 노력하지 않겠노라고 ...

하지만, 전 어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죄책감만 이렇게 듭니다.
여러분, 이 시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난 도대체 하나님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저를 덮쳐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받아야 한다는 그 환난을
절대로 내 힘으로 견뎌낼 수 없는 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것임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을 했습니다.

"하나님, 전 하나님께 제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까지 끌어가시는 데에
단 1% 도 보탤 수 없는 인간입니다. 부디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절 도와주십시오."
설교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나님을 어디까지 신뢰하고 있으십니까?
아직도 세상에서 자신을 위로해 주던 것으로 여러분의 고민을,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는 않으십니까?
우리 인생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 분만이 답이고 해결책입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자유하게 할 수 없고, 평안하게 할 수 없으며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혹시 지금 지긋지긋한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술 한 잔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문제 때문에 가슴이 답답할 때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싶은 사람이 있으십니까?
일시적인 진통제는 상처를 더 곪아터지게 만들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십시오.
영생을 알고, 천국을 알고, 지옥을 알고, 자신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게 부어진 은혜가 명확하게 마음 속에 확인되어 질 때에야
그 모든 문제가 녹아내릴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집으로 가자 (71)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께 - 김성수 목사님



어린 시절 누가 나에게 '넌 커서 뭐가 될래?' 하고 물으면
으레 저는 '우리 아버지처럼 될래요.' 하고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저에게 있어 커다란 존재이셨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내가 외출해서 돌아 오면
피곤해서 누워 계시다가도 얼른 일어나 앉으셔서 항상 저를 맞아 주셨습니다.
자식에게도 예의를 갖춰서 대해 주신거지요.
그리고, 언제나 '우리 큰아들 용돈이 부족하지 않니?' 하시며
어머니 몰래 용돈을 더 주시기도 하신 그런 다정하고 따뜻한 분입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논산까지 찾아오셨습니다. 거기는 면회가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오이소박이와
여러가지 음식을 싸가지고 당시 보안사령부의 높은 분과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 하셨는지
매일 아침 어머니께 밥상에 저의 밥을 펴 놓으라고 하셨다지요.
그리고, 제가 군대에 있는 3년간 아버님은 식구들에게 과일을 먹지 말자고 말씀하셨답니다.
군대에는 고기는 있어도 과일은 잘 없으니, 큰 형이 못 먹는 것 우리도 조금 참자고 ...
그만큼 아버지는 절 사랑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 오던 날 아버지는 많이 우셨습니다.
간간이 한국에 나가서 뵙고 올 때도 아버지는 차마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시고
'조심해 가' 하시며 회사로 출근을 하셨습니다. 아마 골목을 나서시며 많이 우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손자들을 더 보고 싶어 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깊이 새겨왔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 전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분인데,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우린 서로 다른 곳으로 갈 텐데,
그게 저의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부모님 모두 열심히 교회에 나가십니다.
어머니는 새벽마다 새벽기도 맨 앞자리 단골이 되셨다고 합니다.
목사가 된 아들 때문에 예수를 안 믿을 수가 없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포기하고 주의 종의 길을 가는 것이 어쩐지 안쓰럽다고들 합니다.
헌데 무엇을 잃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려야 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요?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영생을 얻은 것을 무엇에 비교할 것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정말 그들을 사랑하시나요?
헌데 아직 그들이 예수를 알지 못하는데,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가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예수를 모르는 가짜 기독교인이든지, 그가 한다는 사랑이 가짜이든지, 둘 중 하나이지요.

영원한 나라를 알고, 그들이 죽으면 영원한 지옥에 간다는 것도 알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죄인들은 멸하시고야 만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어찌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그 지경에 내 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랑합시다. 진짜 사랑을 합시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사랑이 진짜인지 확인해 봅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십시다. 그리고 말씀해 주세요.

난 당신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