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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60) 하나님의 긍휼 (Mercy)


(히브리서 4:14-15 새번역)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에수스 호 우이호스 호 떼오스)> 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지킵시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우리 죄를 덮어 쓰신 것입니다.
죄를 전가 받으심으로 죄인의 신분이 되신 것이지,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당신의 신부인 교회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달려 죽는다(다나토스)는 율법의 완성이 되셔서,
<다나토스>, 말씀의 완성 곧 죽음으로 마감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신명기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왜 대제사장이 되셔야만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히브리서 2장 12-17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2:12-17)

내가 진리를 논리로 말한다. 나를 찬송하는 교회 가운데 안에서,
나의 그 이름을 나의 그 형제(brother) 에게 선포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내가 친구로 삼은 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진 나,

그 아이(파이디온)를 주의깊게 본다.

그 아이가 죽을 몸(사륵스) 곧 인간인 여자와 확실하게 교제한 후로,
그리스도의 피(아이마)도 동일하게 그 아이에게 속한다.
그것은, <다나토스>, 그 완성된 죽음에 의해서 그 죽을 몸(사륵스)을 쓸모없게 하고,
<다나토스>, 그 완성된 죽음을 소유한 그 힘, 다시 말해, 마귀(디아블로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일생 동안 종노릇 해야 하는 의무로 인해 <다나토스>, 그 완성된 죽음을
무서워하는(포보스)  여자들(호우토스) 곧 교회를 놓아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것은,
말씀을 전하는 사자(앙겔로스, messenger) 곧 진리가 된 자를 붙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한 자손(스페마) 곧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거기로부터 그가 <모든 형제들 (파스 호 아델포스)> 곧 교회에 대하여서는
의무(오페일로)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들 (호 라오스)> 곧 <그 죄 (호 하마르티아)>와 화해하는 것
곧 죄의 대속을 이루기까지, 긍휼이 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피스토스) 곧 대제사장(아르키에레우스)이 되는 것이다(기노마이).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9) 자유 자유 자유 (Freedom)




29살로 죽음을 맞이했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라는 책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자기가 오랜 기간동안 극한의 두려움으로 고통받고 있었을 때였다고 말합니다.

어느 날 
그 두려움이 찾아 오게 된 것은,
지금까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음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던 그 일 모두가
자기가 판단하고 결정해서 했던 나의 일이므로 당연히 심판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자기가 죽을 것을 염려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는 가운데 나오는 경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 두려움에 휩싸였던 같은 장소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아!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었었지!
그리스도의 영이 지금 나를 이끌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이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겠구나.
그럼, 이제부터는 두려워 할 이유가 없네."

그 다음부터는,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그의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송으로 넘쳤습니다.
그 후로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 곧 사랑을 전하는 일을 경주하다가
폐렴으로 이 땅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기뻐하신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 안 하고, 그런 유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가운데 주어지는 삶의 이정표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중심인가? 아니면, 나 중심인가?>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8) 너희 죄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그 제물을 죽이지 말라 (Mercy)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 멀게만 느껴졌던 그 천국이
내 옆에, 내 안에, 내가 천국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림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 진리를 알게 되기 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라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의 어느 말씀을 통해 나누어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 진리와 연합되어진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제의 주일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던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마태복음 5 장 23-26 절을 통해 십계명 중 여섯 번째 계명
"살해하지 말라(You shall not murder)" 에서 금지하는 것에 대해 나누었는데,
먼저, 아이들과 함께 헬라어 구절들을 영어와 한글로 번역한 의미를 나누었습니다.

(마태복음 5:23 NIV)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Therefore, if you are offering your gift at the altar
and there remember that your brother has something against you,

23절의 원어를 번역하면,
나의 반대편에 있는 그 어느 누구든지
나의 그 형제에게 거짓말로 해를 가하기 때문에,
그 번제단 위의 나의 그 제물을 하나님에게 제공하는 그 어느 누구일지라도,
저쪽 곧 그 번제단 위의 그 제물을 죽이는 거기가 기억이 나거든,

(마태복음 5:24 NIV)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leave your gift there in front of the altar.
First go and be reconciled to your brother; then come and offer your gift.

24절의 원어를 번역하면,
저쪽 곧 그 반대편에 있는 나의 그 제물을 용서(remit)한다,
다른 말로, 더 이상 너희 빚을 갚기 위해 그 제물을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그 형제와 화목하는(reconciled)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나의 그 제물을 살해하는 것이
드러날 때에는,

(마태복음 5:25 NIV)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who is taking you to court.
Do it while you are still with him on the way, or he may hand you over to the judge,
and the judge may hand you over to the officer, and you may be thrown into prison.

25절의 원어를 번역하면,
나를 나의 반대편에 있는 자(the opponent)에게 내어주는(파라디도미) 것은,
나의 반대편에 있는 원수와 동행하는 길 안에서 신속한 화해(reconcile)를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원수가 나를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로 내어주고,
사형수에게 기도해 주는 감옥 사제(parson) 에게로 던진다.

(마태복음 5:26 NIV)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not get out until you have paid the last penny.

26절의 원어를 번역하면,
Amen. I logically tell the truth. I will not get out from there
until reward of the(호) last(에스카토스) one quarter(코드란테스).


아멘. 내가 진리를 논리로 말한다. 그 마지막 사 분의 일의 보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나는 거기, 곧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그 번제단 위의 그 제물을 제공하는
그 자리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23절에서 26절까지를 종합하면,

"그 어느 누구나 그 번제단 위의 나의 그 제물을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에게 드린다.
그러나, 저쪽 곧 그 번제단 위의 그 제물을 죽이는 거기가 깨달아지면,
나의 그 제물을 용서한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자기의 빚을 하나님에게 갚기 위해 그 제물을 살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그 형제와 화목하는 자리로 내려간다.
왜냐하면, 나의 반대편에 있는 자는 나의 그 형제를 거짓말로 죄에 넘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그 제물을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살해하고 있다는 것이
깨달아질 때에는, 나를 나의 반대편에 있는 자에게 내어주는 것인데,
나는 나의 반대편에 있는 원수와 동행하는 길 안에서 신속한 화해를 한 것이다.
그 원수는 나를 죽을 수밖에 없는 노예로 내어주고, 사형수에게 기도해 주는
감옥 목사에게로 던진다.

내가 말한 전부는 확실하다. 내가 진리를 논리로 말한다.
그 마지막 사 분의 일의 보상,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영원으로 완성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나는 거기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즉,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그 번제단 위의 그 제물을 죽이는 그 자리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위의 구절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요한복음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but the darkness has not understood it.


(로마서 5:8-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Since we have now been justified by his blood,
how much more shall we be saved from God's wrath through him!
For if, when we were God's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him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how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through his life!



하나님의 창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리스도의 신부인 하나님의 교회의 완성은 예정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그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
여호와 엘로힘,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통해 말씀으로 알리심으로 인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연합 안으로 함몰되어지는 교회와의 연합을 완성하시는
그 기쁨을 내다보고서, 그 원수인 나에게 내어주심을 당해 죽임 당하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26절에서와 같이, 원수에게 죽임 당하는 그 자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라고 확언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

이제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죄 때문에 죽을까 봐 그 제물을 대신 죽여 스스로 나를 살리고자 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의 여정 가운데 폭로되는 죄의 자리에서 여전히 펄펄 살아 더 이상 나무 뒤로
숨지 않고,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와 그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죽은 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부활의 자리임을 찬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인생 가운데 나와 한 몸인 옛 자아와 새 자아가 여러 모습들로
드러나게 될 때에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나를 선한 자리로 이끄신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자리로 낮아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찬송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며,



2012년 7월 3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7)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자그마하신 한 친구 이야기 (Friend)



샬롬,

지난 주 토요일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에 사시는 73세된 분이십니다.

그분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도 두 달 전 어느 날 저희 집으로 전화가 왔었던 날이었습니다.
이곳 모임의 멤버이신 양 권사님의 환자 분이셨는데,
소개로 알게 되어 이곳 식구들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 대화했고,
그분이 필요하신 김성수 목사님 설교 CD들을 보내드리기로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한 동안 제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한 달이 넘은 후에 김성수 목사님 설교 CD를 보냈는지 확인차 연락을 주셨습니다.
부랴부랴 로마서 강해와 산상수훈 강해 설교 DVD들을 30장 정도 만들어서
소포로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중에 연락을 주셔서,
가능하다면 토요일에 저희 가족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아내의 뜻에 동의하고 약속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초행길이고 주말의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교통체증을 감안해서
약간 일찍 출발했지만, 그럼에도 길이 많이 막히고 일방통행이라 힘들고
주차 공간을 찾느라 어려움을 겪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약속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고 곧바로 주차 공간이 하나가 비어
일단 한 숨을 쉬었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자그마한 체구의 백발 할머니 한 분이 신호등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로 오라고 손짓하시며 환하게 웃고 계셨고,
만나자 마자 한껏 포옹을 하시며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먼저, 그분이 사시는 아파트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일본 타운에 있는 철장으로 보호된 조그마한 노인 아파트에 홀로 지내고 계셨는데,
거기에는 서머나 교회에 주문해서 받은 예수님의 비유 강해 설교 CD들,
김성수 목사님 설교 강해집 책들, 설교 가운데 언급하셨던 신앙의 선배들의 책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받으신 로마서 강해와 산상수훈 강해 설교 DVD들도 벌써 다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제 아내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자그마한 CD 플레이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집은 왜 뒤지냐고 뭐 하냐고 웃으시면서,
설교 CD 는 몇 장 되지 않아서 매일 밤마다 반복해서 계속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파트에서 떠나 중국 식당으로 저희 가족을 데리고 맛난 점심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깐풍기 등등
한국에서 먹었었던 그 맛 그대로였습니다. 드디어 발견!
이곳에서 십 수년을 사는 동안 처음 맛 보는 고향의 맛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맛있다고 좋아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가운데 나누었던 이야기들,
이곳 저곳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커피 한 잔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길거리에 잠시 앉아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렇게 세 시간 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그분은 미국에 오신 지 사 십년이 되셨는데,
슬하에 남매를 두셨고 가족 모두 그 근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계셨을 때는 장로교, 통일교, 몰몬교에 몸 담으셨고,
미국에 오셔서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침례교, 거의 모든 종교단체 간판이 붙은 곳을
섭렵하시다시피 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칠 십 평생이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점철되었건만,
남은 것은 공허감뿐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삼 년 전 어느 날 자살을 결심하고,
금문교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몇 시간을 그 다리 위에서 사투를 벌리셨답니다.

결국, 뛰어 내리지 못하고 지나가던 중국인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도착해서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봤을 때,
차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얼굴이 까맣게 되어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진리를 찾아 한 평생을 다 바쳤는데,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는 것을 알게 되셨답니다.

그 후로 의미없는 하루 하루를 지내는 가운데,
2010년 어느 여름 날 아침에 진리를 만나게 되셨답니다.
2010년 4월 7일부터 매주 수, 목요일 아침 7시부터 30분간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 영상 방송이 이곳 베이 지역의 공중파를 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강해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부터 시작된 설교 방송을
그분이 어느 날 보고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거야!"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부터의 그분의 하루 일과는
그분이 사시는 아파트에 수북히 쌓인 설교 CD들과 책들이 증언해 주고 있었습니다.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만난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그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님 이야기로 세 시간이 삼 분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도 모를 정도로
서로의 말에 담긴 예수님을 나누는 데에만 집중했었습니다.

그분께서 바라는 한 가지는,
당신이 임종하실 때 예수 믿는 자들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안에 하나된 이곳의 형제자매들이 당신과 함께 있으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모르게 울컥 하는 것을 얼마나 참았는지 모릅니다.

책을 하나 잡으면 끝까지 보시는 바람에 며칠을 몸살로 몸져 누우시는데도,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어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그렇게 이 년 가까이 보내셨답니다. 인터넷과는 거리가 머시고,
오로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김성수 목사님 책들과 설교 미디어를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가능하다면 먼저 사사기 강해 설교부터 CD로 받으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생면부지인 사람을 멀리서 불러놓고 당신께서 필요하신 것들을 조심스레
요청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기에,
그분의 절실함과 긴박함과 갈급함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바라 보면서,
 제게는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게으름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고,
다시 한번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서게 하는 활력소를 얻는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씀 안에서 진리를 만났으니 그 외에 자질구레한 것은 지나치게 되고
용서가 되요." 라고 하시며,
"한 가지 힘든 것이 있는데, 김성수 목사님 설교 강해집 책들을 계속해서 보니까
성경을 점점 안 보게 되요. 책 안에서 성경을 바르게 풀이해 놓아서 그것만을
자꾸 보게 되는데, 어떡하면 좋지요?" 라고 물으셨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렸습니다.

"김성수 목사님이 알게 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설교 라는 도구를 통해 전해질 때,
받는 입장에서 알게 되는 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보는 눈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성경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기록한 책인 것을 몰랐었습니다.
그 후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관점으로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게 이런 거였어?'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설교를 더욱 경청하게 되었고, 더욱더 성경을 통해 확인하며 동의해 가는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목사님이 알게 된 진리가 곧 내가 알게 된 진리로 부합되는
그런 연합됨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혹자는, 목사님에게
언제 히브리서 강해를 하실 건가요? 언제 이사야 강해를 하실 건가요? 라고 묻지만,
말씀 안에서 진리를 보게 된 사람은,
예수님을 좀더 알고 싶으면 성경을 펴서 히브리서를 읽고,
예수님을 더욱 알고 싶으면 성경을 펴서 이사야서를 읽습니다. 이해가 되시는 가요?

목사님은 성경 지식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는 눈을 가진 자인지 아닌지 일깨워 주시는 겁니다.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은 사람의 말을 기다리지만,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가가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앞으로 가는 길은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조바심 내지 않고 하루를 지낼 수 있습니다."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그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차 세워진 곳까지 배웅해 주시면서,
김성수 목사님을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제게 "목사님을 만나 봤나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라고 물으셨습니다.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길 모퉁이에 같이 앉아서
대답을 드렸습니다. "몇 번 만났는데 별 다른 이야기 안 했습니다.
아무 말 없어도 왠지 기분 좋은 거 있잖아요."
그분은 제 말에 동의하시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시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헤어지는 시간이 되어 긴 포옹과 함께 아쉬움과 그리움을 뒤로 한 채
저희 가족은 토요일 늦은 오후의 샌프란시스코 교통체증 속으로 힘차게 가속 페달을
밟았습니다.

또 내일이 되면 내일의 주인께서 또 다른 지체들을 만나게 해 주시겠지요?
그렇게 그렇게 위로받고 격려받고 하루 하루 살아내다 보면 좋은 날은 곧 오겠지요.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6)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교제 (Fellowship)



지난 주일에는 "아버지와 두 아들" 의 비유인 누가복음 15장 11-32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하시는 회개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 비유의 출발점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러
나아왔는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며 수근거리는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백 마리 양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열 드라크마 동전 중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동전, 두 아들 중에서 잃어버린 한 아들, 한 아들 마저 초청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의 비유라고,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모든 성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허락된 자에게만 알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익히 아는 터라, 온갖 기도로 간구하며 한 절씩 읽어 나갔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나가 세상에서 허비하고 돌아 온 둘째 아들이나
아버지 말만 잘 들으면서 자기에게 돌아 올 그 무엇을 기대했던 첫째 아들에게는
초점이 멀어지게 되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만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만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 예배, 찬송 등의 이야기들로 이어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쉬운 마음을 다음 만남의 기대로 대신하며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네 모두는 하나님을 알고 싶고,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첫째 아들일까, 둘째 아들일까 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됨을 깨달아 자기를 부인 당하여 아버지께로 돌아 온 아들을 보며
대견해 하고, 여전히 내 것 밖에 모르는 자기 영역에 집착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용서해 주실거라며,
자기를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모두에게 투영하여 어떻게든 나는 구원받은 자임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 비유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죄인들이 동시에 들었을 터인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둘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받아 주시는 아버지만을 찬송하는 자와 앞으로 변화될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둘째 아들이 그 후로 또 다시 세상으로 나갔는지,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초청에 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 그 아들에게 반응하는 자에게만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알고싶어 하는 마음, 그 아들과 함께 돌아 온 상한 심령,
그 아들에게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찬송과 예배가 모두
아버지의 은혜로 격발된 것임을 아는 자만이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만을 당신의 자녀로 창세 전에 택정하셨습니다.

그런 사실이 정말 나에게 주어진 현실임을 알아가게 되는 자들이,
둘째 아들처럼 해피 엔딩이기를 바라거나 첫째 아들처럼 슬픈 비극이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자기 판단과 자기 확신들을 어떻게 내 놓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회개는 원래 처음의 자리로의 회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네 인간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갈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한 순간이라도 부어지지 않으면 곧바로 하나님의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갈 나 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의 육체가 죽는 그 순간까지
회개는 멈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신 하나님의 은혜, 모든 역사를 아우르는 십자가의 은혜가
나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를 자각하게 하십니다.
육신이 죽어 내가 멈추는 그 때가 진정으로 회개가 이루어지는 두 다리 쭉 뻗고 쉬는
안식일진대, 그 자리로 가기까지 참으로 험악한 인생의 여정을 거쳐야 하니,
죽을 만큼 힘듭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에게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풍성히 누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아버지만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아들의 자리에서 감격으로 부르는 노래,
가장 더러운 발에 가장 귀한 머리카락를 대고 입맞춤하며 기쁨으로 부르는 노래,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워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아버지,

창세 전에 택정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새 이름, 성도(Saint)
오직 아버지만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힘써 모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교회,
약속있는 첫 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원으로

여기시는 은혜,

세상과 나는 간 데 없고, 구속한 주만 영원하도다!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5)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영원 (Everlastingness)


샬롬,

지난 주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출애굽기 20:12)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so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여기서 이 말씀이 정말,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오래토록 살게 해 준다는
말인가요? 정말 그렇다면,
성경 안에는 우리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독려하는 그런 내용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닐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성경은 그런 내용을 일 점 일 획도 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도 진리가 담겨져 있으니, 표피만 보지 말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진리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단 말입니까?


한 자씩 어근과 어미를 파자해 나가니까,
어렴풋이 다섯 번째 계명이 말씀하는 진의를 알듯 합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 에서 "길다" 의 long 은, everlasting 곧 변함 없는, 변하지 않는,
영원하다는 의미이고,
"너에게 준 땅" 에서 "주다" 라는 giving 은, 값을 치른, 쏟아 부은, 제공한, 이라는
의미
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 land 는, 시간 너머 있는 나라 혹은 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후반 절을 풀어 쓰면,
"주 너의 하나님이 값을 치르시고 너에게 쏟아 부어 주시고 있는 시간 너머의 나라에서
영원으로 변함 없이 살게 된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근거는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여기서, "공경하라" 로 번역된 honor 는, 자랑하다, 영화롭게 하다 라는 의미이고,
"부모" 라고 번역된 단어는 "아버지와 어머니" 인데,
접속사 and 는 "카히" 로서 또한(also), 마찬가지로(likewise) 라는 의미입니다.
파자해 보면 "아빠 곧 엄마, 그 엄마는 가족의 종(as bond of the family)" 입니다.

여기서 쓰인 "아빠와 엄마" 라는 단어가, 창세기 2장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가운데 당신을 계시하신 모습이
창세기 1장 26-27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 곧 남자(자카르)와 여자(네카이바)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26-27)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그 모습을 창세기 2장 21-24절에서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자(man, 이쉬)가 부모(his father and mother)를 떠나 그의 아내(woman, 이솨)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4)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여기서, "한 몸" 에서 "한(one)" 은 연합한(united), 온전한(altogether) 이라는 의미이고,
"몸(flesh, 바사르)" 은 사람(person), 몸(body), 인류(mankind), 외음부(pudenda) 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본래 처음의 본질(휘포스타시스)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연합한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것은 한 몸인 남자가
먹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가
한 몸인 그들을 둘로 분리시켜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전적인 타락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드러내는 구속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쓰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구원에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어떤 죄인에게
죄의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죄 선고가 내려져 버린 것입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리둥절한 죄인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의인으로 여겨짐을 받은 것이 못마땅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아들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원수인 자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찬송하는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 안에 죽은 흙을 연합시킴으로
하나님의 연합(페리코레시스)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자각한 자는
그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승리하신 하나님의 개선 행렬 마지막에 질질 끌려가는 전리품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오래 산다는 헛된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인과율에 따른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그 자체가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 곧 하나님과 연합한 것이며, 영원한 신적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나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습이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나의 지금 모습이기에,
탄식과 애통이 동시에 터져 나옵니다.
 
당신의 아들의 피 값을 치르시고 구속하신 자가, 왜 하필 나 입니까? ...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날 사랑하냐고 묻는 나에게, 하나님은 나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너는 왜 날 사랑한다고 말하니? 네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네 봐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너는 항상 나를 잊어버리는 구나, 날 기억해! 그리고 나에게 어서 말을 해요."
 
주님,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나요, 나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 ㅠ.ㅠ
그 첫 마디가 참으로 죽을 만큼 어렵습니다.
 
 
 

2012년 5월 18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4) 죽은 흙으로부터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Glory)


사람 안에서 잊혀져 있는 갈비뼈 하나가
사람의 반 쪽인 그분의 신부가 되어 한 몸이 되었네

온전한 한 몸과 쓸모없는 갈비뼈 하나

나는 예수님에게 쓸모없는 갈비뼈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분이 나를 당신의 피요 살과 뼈라 하시네

나는 예수님에게 있으나마나 한 반 쪽인 줄 알았는데
내가 없으면 그분도 없는 거라고 하시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몸을 천사들과 우리들에게 보이셨네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다!

두 손과 두 발에 못 자국이 나 있고
옆구리엔 뚫린 창 자국이 나 있네



죽임 당한 예수와 다시 사신 그리스도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걸 ...



이 세상 모든 것이 진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예수만이 진리요 그리스도만이 실체이신 걸 ...



이스트 없는 딱딱한 빵이나
갖은 향신료로 만든 부드러운 티라미슈 케잌이나
그 맛에 가치를 둔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혀를 지나고 나면 다 똑같은 것을 ...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건만
하나님의 땅은 변함이 없도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3) 세상이 조롱하는 그 이름, 예수쟁이 (Christian)


(요한복음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그 진리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보여줍니다.

(요한3서 1-8)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나는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신도들 몇이 와서, 그대가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그대의 진실성을 증언해 주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신도들을,
더욱이 낯선 신도들을 섬기는 일은 무엇이나 충성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회중 앞에서 그대의 사랑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인데,
이방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와는 가까이 하실 수 없는 진리이신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7:16-17)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자리로 옮겨진 자들은 선과 악의 두 마음으로부터
자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어디서나 진리를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적용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은 진리 안에서 하나이므로, 그 어디에서나 나는 진리를 만날 수 있으니,
내가 그 어떤 것을 보든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
이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 그분만이 선과 악과는 무관하신 진리 그 자체이신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리 안에 거하는 거룩한 자들에게 모든 악에서 떠나라고 했지,
언제 악에도 진리가 담겨져 있으니 거기서 진리를 찾고 거기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습니까?

선이 뭔지도 모르는 우리네 죄된 인간들이, 선에서 진리를 보는 것은 따분하고
하기 싫으니까,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죄와 악에서 진리를 보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 안에서 진리를 만나기 보다는, 세상 안에서 진리를 만나겠다고
난리들 아닙니까?

그것은 자기네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며 너스레를 떨고 있는
거짓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네 인간 모두를 율법 아래 가두어 죄인임을 확증하셔서
하나님의 긍휼만을 찬송하도록 하셨는데,
우리는 모두, 나는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고,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졌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니,
이제 하산해도 된다고, 이제 세상에 나가 진리를 나누겠다고 자신한단 말입니까?

사도 요한이 그의 서신서에서 기뻐한 것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 그냥 별 일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가난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정된 당신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열심으로 그 진실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도, 정말 저렇게 살아내는 이들이 있구나!"

우리는 옛 장막에 갇혀 새 장막이 내려오기를 탄식하며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옛 장막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 장막에 의해 삼켜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앎으로 소유할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믿을 수는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이신 진리를 안다고, 그래서 소유하겠다는 시도 그 자체가
죄일진대, 진리가 보인다고 하산할려는 생각은 버리고, 진리 안에 거하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진리 안에 거하기를 즐거워 하는 자들을,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보여줍니다.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로 인해 각처로 흩어진 후에,
바나바와 바울은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모임을 가지며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가운데
많은 이방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부르며,
마치 조센징 처럼 비아냥 거렸습니다. "예수쟁이" 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별 일 없이 살았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세상이 이해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길과는,
다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조롱하는 그 이름,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5월 3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2) 죄의 울타리 (Fold of Sin) 하나님의 울타리 (Fold of God)


샬롬,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자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로 이 세상에 태어나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상 풍속을 좇아 자기만을 높이고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습은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분의 은혜로 죄의 울타리에서 하나님의 울타리 안으로,
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져 버린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처음 주어진 원래의 신분으로 복귀되어 버린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때의 나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쁨으로 인해
이 땅 위의 그 어떤 곳도 내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땅으로 여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울타리와 하나님의 울타리의 경계를 아직 모른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하루 하루 지내는 가운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이 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보면,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죄들이 하나씩 스물스물 기어나오게 됩니다.

"아니, 이런 것도 죄란 말인가!"

그 때마다 죄의 울타리와 하나님의 울타리의 경계가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이것만은 죄가 아니라고 자신하던 나는 그 죄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 후로는 이리저리 마냥 뛰어 다니던 나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기 사작합니다.

차츰 죄로부터 자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는 건지 알게 됩니다.
죄의 노예로 죄의 울타리 안에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울타리 밖에서 의로부터
자유로웠지만,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죄로부터 자유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선한 삶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아가는 순간 순간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의 의의 노예, 곧 온전한 자발적인 순종을 하는 자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 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입니다.

은혜스럽게도, 그 평화는 이미 묵시 속에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묵시 속에 완성된 평화를 소망할 수록 나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이제는 그 어디를 둘러봐도 죄만 내어놓는 이 땅을 한 발짝도 디딜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을 벗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압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즐기고 그 달콤함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어떻합니까?

그 어디를 둘러봐도 비상구는 보이지 않고, 점점 사방이 낭떠러지가 되어 버립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는데, 죄가 드러날 수록 사망이 나에게
입을 크게 벌립니다.
언제쯤 낭떠러지가 내 앞까지 다가오게 될까요?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안했는데 ...

이 모습이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네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죽음 앞에 직면하는 그 순간,
죄의 울타리와 하나님의 울타리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진리의 말씀이요 실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울타리의 경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울타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가 죽어 함몰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햇살을 맞으며 눈을 뜨는 나는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봐도 하나님의 울타리 밖에서 나만을 높이고 나만을 자랑하는 역사 속 내가
이미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거하고 있는 묵시 속 나를 기대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나님께서 내일도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허락하시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만을 힘써 알아 가기를 원합니다.

(잠언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The path of the righteous is like the first gleam of dawn,
shining ever brighter till the full light of day."

(골로새서 1:10)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growing in the knowledge of God"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동틀무렵 희미하게 그 빛을 바라보면서부터 마침내 한낮의 광명한 그 빛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찬송합니다.
 
 
 

2012년 5월 1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1) 하나님의 열심, 회개 (Repentance)



샬롬,

회개(메타노이아)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로부터 멀어져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가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할 능력이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 회개를 이끌어내는 주체는 우리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양 같아서,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길로만 갈려고 하지만,
우리의 목자되신 한 분 그리스도는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울타리 안이 우리의 처음 자리임을 알게 하셔서 그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받는 유산을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미리 상속받아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버린 둘째 아들 탕자와도 같이,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집 나간 그 아들이 떠난 그 자리에서
반드시 그 아들이 돌아 올 것을 믿으시면서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에 눈을 돌려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난 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가장 좋은 것을 모두 잃어버린 후에야
자기의 처한 자리를 알게 됩니다.
마침내 아버지 집에서는 쓸모없는 것들을 위해 돼지들과 싸우고 있는
자기의 죄된 모습을 자각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가장 좋은 것, 내 안에 그런 내가 이미 주어졌지만,
나만을 높이고 자랑만을 일삼는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연한 순같은 나를 죽여 버리고 맙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직시하도록 오래 참으시면서 깊은 탄식으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자기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내가
아버지께서 주신 가장 좋은 나를 죽인 자임을 알게 되는 그 순간,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 더럽고 추한 쓰레기요 똥덩어리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불러 들이시기를 은혜로 허락하신
아버지의 열심의 산물입니다.

"아! 아버지가 보고 싶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 당신의 자녀는
세상으로 향했던 발 길을 돌려 두렵고 떨리지만 담대히 아버지의 집으로 향합니다.
비록, 아버지의 집에서 죽을지언정
자기 때문에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신 그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
아버지는 가물가물 보이지도 않는 그 아들을 알아 보시고
부리나케 달려와 그 아들을 덥썩 감싸 안으십니다.

아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께 고백합니다.
"저는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을 주인으로 부르게 허락하시고 
혹시라도 당신의 집 문지기 노예로
저를 써 주신다면, 그보다 더한 은혜가 없겠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일으키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아들아!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내 아들로 여기지 않은 적이 없단다.
네가 그 어디에 있든지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인 것은 절대 변하지 않아!
나는 네가 꼭 돌아 올 줄 알고 나의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
나와 함께 집에 가자꾸나!"


나는 아담의 후손, 인간으로 태어나 하나님처럼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동안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발꿈치를 물어 피를 빨아 내 배만을 채웠
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곡해하던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를 죽인 것 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는 자들에게만 찾아오셔서 철장으로 머리를 박살내
죽여 버리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의 열심으로 당신의 집을 떠난 탕자에게만 허락하시는
상한 심령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아골 골짜기에 묻어 천국의 소망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와서 편히 쉬라고,
당신의 아들 안에 충만히 부으신 안식을 즐거이 누리라고 하십니다.

세상 풍속을 좇아 살던 눈 먼 소경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뜨면서부터 문득문득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그 때는,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죄로부터의 돌이킴,
곧 회개가 단 한 순간도 나를 놓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날려고만 하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절규하는 죽음의 순간일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세상으로부터 죽어 영문 밖에 버려진 그런 시체들을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덮어 다시 살려 부활의 첫 열매 안으로 동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한 당신의 열심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설명하시고
계시하십니다.
창세 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아담의 자손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 계시하신
당신을 기억하게 하시고
세상으로부터 발 길을 돌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오게 하시는 회개를 반드시 이루고
마십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Union Christ)
반드시 당신의 아들에게 접붙여 당신의 아들의 거룩한 신부로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다다른 아들이 촉촉한 눈망울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곁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이제는 아버지가 사랑스러워졌으니까요. 
영원히 당신과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입을 열어 다시 말을 건네십니다.
"나는 빛이요 생명이라! 아들아, 나와 함께 영원히 내 집에 거하리라!"

하나님 나라 안에서 누리는 평화,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