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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4일 월요일

집으로 가자 (50) 첨밀밀 - 김성수 목사님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그 때 우리 세대는 TV 보다는 라디오와 더 친한 세대였습니다.
밤을 패가며 황인용씨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를 들었고,
차인태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 에서 친구의 사연을 설렘 속에 기다려 주던
그런 정감이 있는 세대였습니다.

당시 대만과 한국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 대두 되었을 때
국영 방송인 KBS 에서는 열심히 국민들에게 대만 홍보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즈음 황인용씨가 대만의 어떤 여가수의 노래를 틀어 주었습니다.
저는 생전 처음 중국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감 있게 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이러 저러한 경로를 통해 중국 노래를 카세트 테잎에 담아
아버님이 사 주신 커다란 "녹음기" 를 이용해서 테잎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듣곤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대만의 가수가 "등려군" 이라는 여가수였습니다.
뛰어난 가창력이 있다기보다는 애절함과 한이 어우러진 그런 소리였는데
저에게는 그 때까지 들었던 어떤 가수의 소리보다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 등려군의 첫 번째 히트곡이 바로 "첨밀밀" 이라는 노래였습니다.
후에 여명과 장만옥이 주연한 "첨밀밀" 이라는 영화는
바로 이 노래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중국의 전통악기를 적절히 사용한 중국 트로트라 분류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노래는 저의 마음을 아주 순박하게 뒤집어 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요즘도 저는 힘이 들고 어려울 때 찬양을 듣거나 부르는 것보다
그 첨밀밀이라는 노래를 틀어 놓고 여러 번 반복해서 듣습니다.

요즘 부쩍 그 노래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고와 사건들,
그리고 그들의 눈물과 한숨이 몽땅 제 어깨에 얹혀 질 때
저는 도저히 제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아무 것도 도울 수 없는 저의 무력함과 나약함이 참 견디기가 힘듭니다.

점점 더 악화되어져 가는 말기 암의 집사님과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서 집 렌트비를 이리저리 융통하러 다니다
결국 허탕을 치고는 우울해 하고 계신 내 사랑하는 천국 가족들,
가족의 사고를 통해 절망의 나락을 헤매던 어떤 청년 아이,
이들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저는 또 "고난은 유익입니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를 외쳐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너무 잔인한 형벌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무리 제 가슴이 아파도 그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홀로 첨밀밀을 들으며 하나님 앞에
"하나님,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신다고 해 놓고
어떻게 저렇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허락하십니까? 하고 넋두리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물 붓듯 부어주신 응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칼럼도 이렇게 결론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환난은 모든 것을 합력시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유익입니다.
잘 견디시고 이겨 내십시오."
그럴 때 이번 주에 우리 청년들이 노래한 것처럼
"주님 계신 그 곳이 못 견디게 가고 싶다" 는 소망의 기도를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집으로 가자 (49) 서로에게 응원이 되는 삶 - 김성수 목사님



우리 대한민국이 그마나 밥술을 제대로 뜬 것이 불과 30년 전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땅 덩어리에서 대대로 가난을 물려받으며
하루에 두 끼를 겨우 찾아 먹고 그야말로 생존의 투쟁 속에서 살아오셨습니다.
그나마 걸핏하면 남에게 빼앗기길 밥 먹듯 하던 
그러한 한정된 좁은 땅 쪼가리에 농사를 짓다보니
우리 조상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삶에 젖어 버린 것입니다.
오죽하면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 는 농담이 생겼을까요.

우리말에는 원래 "점심" 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 말은 언젠가 우리가 세 끼를 먹을 수 있었을 때 중국에서 빌려다가 쓴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내일" 이 없습니다.
그 말도 오늘을 살아내는 데서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에 
중국에서 차용해다 쓴 말이지요.
그렇게 피 튀기는 생존 경쟁 속에서 응원하는 삶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사치였을 겁니다.

그러다 언젠가 어떤 국어학자가 쓴 논설을 읽다가
제가 우리 민족을 너무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이 아니라 원해 "추임새 문화" 라는 것입니다.
추임새라는 것은, 창을 하는 사람의 옆에서 복과 북채를 잡고
"얼쑤", "올커니", "어이" 하며 흥을 돋우어 주는 사람이 던지는 응원의 말을 말합니다.
 
명창의 뒤에 숨어서 그 명창이 진정한 명창으로의 평가를 받게 만들어 주는 진짜 일등 공신은
추임새를 던지는 "고수"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소리의 세계에서는 명창보다 고수를 더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일 고수 이 명창" 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그런데, 점점 사람들의 목표가 "나의 배를 불리는 것" 에 쏠리다 보니
그러한 추임새 문화는 없어지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가난한 문화가 조선을 삼킨 것이지요.
그 문화가 오늘날까지 더욱더 심화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물질주의, 향락주의, 공로주의, 성과주의 아래에서 그러한 이기적인 문화는
점점 더 짙게 우리의 삶을 물들일 것입니다.
 
그러다 저는
월드컵을 응원하는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추임새 문화의 잔재를 보았습니다.
분명 그들은 자신의 이익이 걸린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 대한민국의 이름을 목 터지게 부르고 있었고,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걱정해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그러한 "서로에 대한 응원" 이라는 것을
저는 그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왜 우리는 천국의 형제자매라고 하면서 서로에 대해 그렇게 인색할까요?
왜 우리는 영원한 삶을 함께 할 가족이라고 하면서
왜 상대방을 위해 응원을 하는 대신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뱉어내고 있습니까?

목표를 하나로 정한 붉은 악마들의 단결을 보셨나요?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한 가지 목표지점을 바라보며 가고 있다고 하면서 왜 이렇게 분열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기독교인들의 회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도 이 정도는 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 하고
우리를 질책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듯 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가십시요.
그리고, 그들의 삶에 "얼쑤", "올커니", "어이"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십시오.

여러분의 그 응원의 한 마디가 
한 생명을 수렁에서 건져 올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구요.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집으로 가자 (48) 꽃 섬 - 김성수 목사님



오래 전에 부산에서 국제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그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개막 작품으로 걸린 영화가 송일곤 감독의 "꽃 섬" 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송일곤 감독은 한국 단편 영화의 대표 격인 흥행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감독입니다.
극 사실적 기법과 판타지가 혼재되어 있는 그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혼란스럽게 반죽이 되어 버려,
사이다 같이 톡 쏘는 짧은 흥미를 추구하는 현대의 구미에는 잘 맞지 않는 영화라는 평이
금방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인생을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 본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저는 아무도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그의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영화 꽃 섬은 마추피추 정상에서 알지 못하는 어떤 신에게
"나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주신다면,
이제부터는 세상의 상처 받은 영혼들을 위해서만 노래를 하겠다." 는 기도를 했던
유진의 독백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유진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얻게 되자 이내 자신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명예와 자랑을 위해서만 노래를 하게 되지요.

그리고는 혀 밑에서부터 퍼지는 말기 암 환자가 됩니다.
유진은 후회합니다.
"난 벌 받은 거야, 내가 한 약속을 잊고 나만을 위해 살았던 지난 날에 대한 벌을 받은 거야."
그리고, 유진은 눈이 많이 내리는 어떤 깊은 산 속에서 자살을 기도 합니다.

장면은 바뀌고,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에 아직 어려보이는 여자 아이가 아기를 낳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버립니다. 그리고는 죄책감에 몸부림을 치며 울지요.
그 때 그 아이의 눈에 들어 온 것이 작은 개미였습니다.
살아서 꿈틀 거리는 개미, 
그리고 그 개미만도 못한 삶을 살다간 버려진 그 아이의 아기를 떠 올리며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생명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았습니다.
역시 버려진 아이였던 어린 혜나는 무작정 남해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찾아 떠납니다.

다시 장면은 바뀌고, 가난에 찌든 한 여인네가
자기 아이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어떤 노인에게 몸을 파는 처참한 여인숙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그 노인이 침대에서 죽게 되고 남편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옥남은 저기 남해 자락 너머에 있다는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다는 꽃 섬" 에 가기 위해
남해 행 버스에 올라탑니다.

거기서 옥남과 혜나가 만나게 되고, 둘은 고단한 몸을 의자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집니다.
시간이 흐르고 버스가 멈추어 섭니다.
그런데, 그들을 싣고 온 버스는 남해가 아닌 눈이 한 길은 쌓인 산 중턱에 멈추어 섰습니다.
버스 운전사는 여기가 종점이니 내리라고 그 두 여자를 협박합니다.
그리고, 남긴 여운이 긴 말 "때로는 예정되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재미있잖아?"

그 두 여인은 눈 덮인 산 속을 걸어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다는 꽃 섬으로 향합니다.
그 여정에 차 안에서 자살을 기도한 유진을 구하게 되고,
이 기구한 세 여자는 함께 꽃 섬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희망의 자리라 여기며 찾아간 제가 본 꽃 섬은
여전히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눈물과 고통의 섬이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겪는 고통과 눈물이 없어질 날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닙니다.
그래서, 마지막 숨을 놓는 죽음 앞에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어떤 때는 분명 따뜻한 손을 잡고 있었는데,
기도하는 도중에 싸늘한 석고처럼 굳어 버리는 생과 사의 분리를 손으로 만져 본 적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정말 고통과 슬픔을 다 놓은 삶을 살았다는 고백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삶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단한 삶 속에서 희망이 아닌 "소망" 을 간직한 자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고통이, 슬픔이, 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꿋꿋이 눈물 속에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복된 약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통의 삶이 끝나면 정말 눈물도 고통도 쓰라린 기억도 사라져 버릴
진짜 "꽃 섬" 에 갈 거랍니다.
저는 그 생각만 하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생각만 하면 저를 조롱하는 사람, 저를 비웃는 사람,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그 소망 뒤로 물러가 버립니다. 오히려 그들이 안타깝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아직 제가 소망하고 있는 그 "진짜 꽃 섬" 을 알지 못하는 분들께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 꽃 섬으로 갑시다.
거기에는 진짜 눈물도 슬픔도 고통도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만 하며 살 거에요.
우리 꽃 섬으로 갑시다."


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집으로 가자 (47) 일송정 푸른 솔은 - 김성수 목사님



만주에 가면 일송정의 푸른 솔이 아직도 독야청청하고 거만하게
그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만주 땅을 여기 저기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일 먼저 가 본 곳이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평소에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그 곳에 한 줄기 실타래를 풀어 놓은 듯한 해란 강이
소나무 향내를 타고 넘실넘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곳에서 내려다 보면
여기 저기 하얀 공동묘지 봉분 군이 외롭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만주 땅을 종횡무진 달리던 우리 조선의 독립군들이 죽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름도 찾지 못한 그 무덤들은 그 날도 호탕하게 저를 향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내 조국 조선의 독립과 내 사랑하는 겨레 조선인이
자유를 위해
난 내 목숨조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노라고 ...

작곡가 조두남 선생이 만주 목단강 변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건장한 청년이 말을 타고 조두남 선생을 찾아 왔었습니다.
그 분은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두루마리에는 조선 독립군가의 가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정중하게 조두남 선생에게 조선 독립군가의 작곡을 부탁하고
달포 있다가 찾으러 오겠노라는 말을 남긴 채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났는데도, 그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사살이 되었거나 감옥에 끌려갔을 거라고
조두남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그 외로운 땅 만주 벌판에서 종횡무진 말을 달리던
그 조선의 독립군을 생각하며 만드신 노래가 바로 "선구자" 입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 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일찍이 조두남 선생으로부터 그 곡의 배경을 들어 두었던 터라
저는 그 일송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만주 벌판이 꼭 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일송정에 올랐을 때, 저는 또 다른 선구자를 꿈꾸었습니다.
조선의 독립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 조선 동포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말씀, 복음을 전하겠노라는 꿈이었습니다.

그 후 여섯 번이난 중국을 넘나들며 조선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지요.
지저분한 화장실, 입에 맞지 않는 먹거리, 불친절, 끈적거리는 더위, 미적지근한 물,
불편한 잠자리, 그런 것드로 힘이 들 때마다
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말을 타고 만주 벌판을 달리다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 선구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내 그들에 비하면 저는 사치스러운 불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중국 땅에 들어서면 그 습한 더위가 오히려 정겹습니다.
그 역한 냄새가 구수한 고향 냄새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의 불친절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저는 중국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혼자 중국의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그들의 삶을 진하게 맛봅니다.
그냥 그 속에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지저분한 돼지비계 한 덩어리로 식사를 준비하는 그들의 낡은 프라이팬 속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그들을 향한 강한 연민을 보기도 합니다.

저는 제 힘이 다 하는 날까지 중국을 향해 갈 겁니다.
관우와 장비와 유비와 진시황이 살던 그 나라,
13억의 인구가 부산스럽게 단지 그들의 오늘을 위해 하루를 살아내는 그 나라,
저는 내일 24명의 우리 전사들과 함께 또 그 땅으로 떠납니다.
우리는 가서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겠지요.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또 복음의 수지를 맞을까?"


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집으로 가자 (46) 준비 없는 이별 - 김성수 목사님



'지난 시간 내 곁에서 머물러
행복했던 시간 들이
고맙다고 다시 또 살게 되어도
당신을 만나겠다고
아 그댈 보낼 오늘이
수월할 수 있도록
미운 기억을 주지 그랬어.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게 줘
안 돼 지금은
이대로 떠나는 널
그냥 볼 수는 없어.'

우리 교회가 매년 떠나는 중국 조선족 중학교 영어 캠프에서
장기 자랑 때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저는 조선족 아이들이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왜 아이들이 장기 자랑 때 그 노래를 부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중국 목단강시 조선족 중학교에서의 영어 캠프는
다른 해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첫 번째 날 서먹서먹했던 시간들을 두 번째 날부터 아이들이 먼저 깨 주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밥을 싸 온 아이,
할머니에게 부턱해서 옥수수를 한 보따리 쪄 온 아이,
작은 선물들, 꽃다발, 그리고 정성이 담긴 편지들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었습니다.

우리 선교 팀들은 오히려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교를 끝내고 이렇게 아이들이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새벽 6시가 못되어 기차역까지 좇아 나온 아이들이 꽃다발을 한아름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선생님들 손에는 어느새 아이들이 밤을 새워 싸 온 도시락이 여러 개씩 들려 있었습니다.

선생님들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런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애써 눈물을 참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차가 떠날 때까지
우리가 탄 칸 앞에 도열하고 서서 며칠 동안 함께 배웠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 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Deep deep oh~ deep down down, deep down in my heart ..."
"Making melody in my heart ..."

기차 안의 선생님들을 바라보면서 펑펑 우는 아이들,
그리고 그 선생님들에게 자기들이 배운 것을 애써 보여주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고 참았던 눈믈이 터져 버렸습니다.

너무나 눈물이 나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 천정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떠날 때쯤 아이들이 "첨밀밀" 을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누가 그 노래 좀 불러 줄 수 있겠느냐는 그 말을 새겨들은 아이들이
기차가 떠날 무렵 그 노래를 합창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 모두가 우리가 믿는 그 예수를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정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차가 떠나자 아이들은 기차를 좇아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연신 손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우리는 한 동안 기차 안에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싸 준 도시락을 열면서 또 한 번 통곡을 했습니다.
"선생님, 밤새워서 싼 거니깐 맛있게 드세요"
도시락 마다 뚜껑에 작은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락을 밤새워 싸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또 그리움의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미국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 학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거라며
한국에서 오랜 만에 오신 엄마가 손수 담근 김치를 한 통 들고 와서
하얀 쌀밥과 함께 내어 놓던 고삼짜리 미나.
전교 3등짜리 얌전이 라림이,
그 동안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자기 이름을 선생님이 많이 불러 주어서 너무 좋았다는 국화,
한 쪽 눈 시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사원이,
언제나 씩씩하게 나를 도와주었던 우리 반장 대식이,
기도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던 추영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가장 성싱하게 모든 프로그램에 임해 주었던 성덕이,
눈썹이 짙은 학림이,
머리가 특이한 김림이,
멋쟁이 려나,
통통한 려화 춤을 아주 잘 추었던, 그리고 떠날 때 제일 많이 울었던 미월이, ...

잘들 지내고 있거라.
선생님이 너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지 모를 거야.
명년에 만날 때는 우리 미월이처럼 너희들 모두가 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을 선생님께 불러줄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단다.
그리고, 그 동토의 땅에서도
이미 그렇게 예수를 전해 듣고 퇴학을 불사하고 예수를 믿고 있는 너희 친구들처럼
너희들 모두에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모두들 건강하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