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4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99) 그리스도 안에 가만히 서서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즐거워 하는 성도여, 이기십시오.



샬롬,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올립니다.

하나님의 그 긍휼로 말미암아 교회를 그리스도 옆으로 불러 초청하여 위로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된 그 몸인 교회는
하나님이 받아들이시고 기뻐하시는 거룩한 처소인 영단번에 드려진 살아있는 제사 옆에 세워집니다.
그것이 하나님 그 말씀에 걸맞게 어울리는 교회의 예배 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차서대로 정해놓은 위에 있는 신분인 말씀을 간직하는 권세를 마음으로 간직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권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래에 있는 권세는 차서대로 정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정해 놓으심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의 거스림은 죄인으로 선고되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통치자는 그 선의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아니라 그 악의 행함에 대하여 두려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선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말씀으로 섬기는 자이시기 때문에
그 선의 그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 보다는
그 선 밖으로 나오는 찬송을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악이 두려움을 간직하지 않는 경우에는,
양날선 검인 전쟁하는 그 말씀은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옷입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섬기는 자는
그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 진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복수하는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 
그 악 만을 이 땅 위에 차서대로 정렬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알아가게 되는 진리도 차서대로 정렬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등에 지고 있는 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악의 두 마음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연합된 교회가 한 일로 전부 갚았기 때문인데,
하나님 그 자신이 변함없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그런 이유에 의해서,
갚아야 할 빚이 있는 모든 자는 확실히 아래의 것으로 넘겨주게 되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고 있는 짐 곧 선악의 두 마음으로 나누어 행하는 자는
태어날 때부터 지고 있는 짐인 선악의 두 마음으로 나누는 행함으로 갚게 되어 있고,
그 행함의 결론인 마지막 끝에 있는 자는 그 행함의 결과로 갚게 되어 있고,
그 행함의 결론인 마지막 끝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자는 그 두려움으로 갚게 되어 있고,
그 행함의 마지막 끝인 두려움을 갚을려고 하는 자는
자기의 가장 소중한 '자기의 (self-righteousness)' 로 갚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서로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그 하나이신 그리스도를 갚아야 할 빚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 진실인지 입증하는 것이고,
그 법을 이루어  완성하는 것이요, 그 법의 충만이고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간음하지 말라 곧 신랑이신 그리스도 외에 다른 신랑을 의지하지 말라,
살해하지 말라 곧 영단번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계속하여 반복해서 도륙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곧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기 마음대로 거짓말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곧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옆에 두고 싶은 강한 욕망(탐심, 우상숭배)
을 갖지 말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어떤 다른 법일지라도,
우리의 이웃인 그리스도를 사랑하라는 그 하나의 말 안에 한데 모여 연합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그 이웃인 그리스도 그 분에게 악으로 애써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그 사랑은 법의 충만이요 완성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리스도 그 분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를 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때는 죽어 있는 밖으로 나와 살아 일어나는 지금인데,
이제 우리의 구원은 믿음을 가지는 때보다 더 가까왔습니다.

그 밤 이전에는 애통하게 되지만, 날은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그 어둠의 그 일은 주어진 목적이 다해 멀리 던져 버려지고,
비추는 그 빛의 그 겉옷을 입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담대하게 사방으로부터 짓밟혀지게 되면,
절대로 폭동이 일어난 듯이 방탕하거나 술과 마약에 취한 듯이 극도로 흥분되어 중독되지 않고,
절대로 아주 더러운 오물과 같이 다른 신랑과 간음하여 동거하지 않고,
절대로 언쟁에 열중하여 말다툼 같은 실랑이를 하지 않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겉옷으로 덧입고,
탐심 곧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옆에 두고 싶은 강한 욕망인 우상 숭배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육신 곧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는 전인격을 마음으로 간직하지 않으려고 미리 배려하게 됩니다.

그것이 곧 말씀으로 구제하고, 말씀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서로 나누어 서로 섬기는,
하나님의 그 말씀에 걸맞게 어울리는 교회의 예배 입니다.
우리네 인생의 여정 가운데
말씀을 귀담아 듣는 별일 없이 살아내는 그 모든 순간이 예배요,
말씀의 완성인 죽음으로 질질 끌려 가는 그 모든 순간이 기도입니다.

오늘의 영원인 내일은 곧 옵니다.
'7' 과 '8' 은 하나이고, 안식과 연합은 하나이고, 오늘과 내일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여,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진 처음 자리인 티끌로 가만히 서서,
세상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그 죽음 너머 그 생명을 소망으로 바라보고,
오늘을 넉넉히 이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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