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일 일요일

집으로 가자 (68)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 김성수 목사님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산전수전 다 겪어 본 후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 분을 비롯해서,
아직 대단한 가치를 가져 보지 못하고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까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어떻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까 벌써 27년 전 인가 봅니다.
저는 그 때 키가 제법 큰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뒤에 앉았습니다.
그 때 제 짝이 '동일' 이라는 아이였습니다.
조금 모자란 듯 그 나이에도 늘 코를 훌쩍거리는 키만 삐죽이 큰 아주 가난한 아이였습니다.
 
도시락 반찬으로 늘 깍두기만 싸왔습니다.
작은 병에 한가득 깍두기를 담아서 혹시 국물이 흐를까봐
라면 봉지를 뚜껑에 꼭꼭 닫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점심 시간이면 예외없이 그
 신 깍두기 냄새가 늘 코를 찔렀습니다.
어떤 때는 거의 말라비틀어진 깍두기를 싸올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집에서 먹다 남은 것을 지가 혼자 꾸역꾸역 담아 온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참 좋았습니다.
누가 어떻게 놀려도 늘 헤헤 하고 웃기만 합니다.
곁에서 지켜보다 정 못 보겠으면 제가 나서서 그 놀리던 아이들을 혼내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그렇게 늘 헤헤 거리기만 하던 동일이가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더니, 책상 안에 넣어둔 돈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책상 안에 넣었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반장이었던 저는 모두를 책상 위에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동일이 책상에서 돈 훔쳐간 사람은 조용히 자수해라."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웅성웅성 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울고 있는 동일이에게 "동일아, 너 돈 얼마 잃어버렸니?" 하고 물었더니, "20원" 그럽니다.
"20원?"
아무리 27년 전이라지만, 그 당시에도 20원은 동네 아이들 눈깔사탕 값도 안 되는 돈이었습니다.
"정말 20원 잃어버렸어?" "응."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20원을 잃어버리고 중학생이라는 녀석이 그렇게 엉엉 울다니 ...
머쓱해진 저는 반 아이들을 원위치 시키고 그 동일이와 함께 앉았습니다.
"동일아, 너 그 20원으로 뭐 하려고 그랬어?"
"아무 것도 할 건 없어, 그치만 처음으로 울 엄마가 준 돈이야."
"엄마가 처음으로 20원을 줬단 말야?"

그 아이는 생전 처음 엄마에게 용돈이라는 것을 받았던 것입니다. 단돈 20원을 ...
그런데, 그걸 잘 간수한다고 책상 안에다가 넣어 두었는데, 그만 잃어 버린 것입니다.
제 주머니에는 천 원짜리가 한 장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서 동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책상 깊숙이에다 20원을 넣어 두었습니다.
청소 시간이 되었을 때, 동일이가 펄쩍 펄쩍 뛰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동일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째 결석을 하자 담임선생님께서 절더러 그 아이 집엘 다녀와보라 하셨습니다.
주소를 들고 그 친구 집엘 찾아갔습니다. 흑석동 산동네였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 없었고, 버스를 타기 위해 중악대학교 앞을 지나오는데
저만치 동일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습니다.

"김동일" 하고 크게 불렀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한 번도 제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늘 "반장" 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전히 코를 질질 흘리면서 "반장" 하면서 달려왔습니다.
"너 왜 학교 안와?"
동일이는 연실 싱글벙글 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죽었다."
그 말을 하면서 조금 시무룩해 하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싱글벙글 하면서 "반장 만나서 좋다." 고 했습니다.
동일이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고, 다시 학교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린하우스 라는 빵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빵을 한 개씩 사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빵을 먹으면서도 동일이는 한 쪽 손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헤어지면서, 그 손에 뭐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동일이는 슬며시 손을 펴서 제게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20원, 그 아이 손에는 때만 꼬질꼬질한 20원이 그렇게 오랫동안 쥐어져 있었습니다.
아마 책상 안에서 20원을 찾은 후 한 번도 놓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는 그 20원으로 정말 만족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100원짜리 동전을 주고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냥 그 20원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 얼굴이 또렷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20원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서럽게 울던 모습도 생생이 떠오릅니다.
20원을 손에 꼭 쥐고 단팥빵을 게걸스럽게 먹던 그 아이 얼굴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세상에 찌들지 않은 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그 아이가 보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와 이모들에게 세배 돈을 받았습니다.
봉투를 보니 1불짜리 몇 장과 5불짜리 몇 장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둘째 아이는 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주머니에 넣어 보았습니다.
잠을 자면서도 주머니를 꼭 쥐고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제 귀에 대고 뭔가 속삭입니다.
"아버님, 내가 아버님 사고 싶은 거 다 사주께."
"나 돈 있어, 이거 봐, 이만큼 ~"

살짝 봉투를 열어서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 연신 뭘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그냥 저렇게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냘 저렇게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작은 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언젠가는 변하겠지만,
지금의 그 순결하고 순수함이 좋아서 그 아이를 으스러지도록 끌어 안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조그맣게 말했습니다.
"아빠, 쪼코렛 사줘."
그런데 그 순간 괜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난, 언제 이렇게 변해 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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