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일요일

집으로 가자 (76) 복음은 '프로파겐다' 가 아닙니다 - 김성수 목사님



복음은 우리가 가진 언변이나 상식이나 열심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혹자들은 전도를 '프로파겐다 (사상을 강요하거나 주입하기 위한 목적의 선전)' 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커다란 효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를 고민합니다.
일견 옳지요. 그러나, 우리 조금만 더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복음은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에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보지도 못한 인류의 조상의 죄가
우리에게 그대로 유전이 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해가 안 되지요?
그리고,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 설화 같은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의 자궁 속에서 열 달을 지내셨고,
그 속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조상도 아닌 팔레스타인의 목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고
우리의 죄가 그 사람의 죽음에 의해 사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목수의 아들이 무덤 속에서 살아났고,
육신을 입고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우리도 죄로 인한 죽음에서 살아나
하늘의 집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사실이 정말 이해가 가능한 내용인가요?

복음은 이처럼 심플 (simple) 합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우리 스스로는 그 죄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했고,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죄의 삯인 사망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이 땅에서 자기를 비우고 원수의 유익을 구하는 십자가의 삶을 살다가
결국 저주받은 자들이 매달리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 죽음은 창세 전에 택해진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들을 죄 속에서 구해내는 대속제물로서의 죽음이었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그 대속제사가 완전하고 온전한 제사였음을 입증한 후에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우리 성도들도 바로 그러한 영광의 삶을 답습하게 될 것임을 보이신 것,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거기에 어떤 방법론이 필요합니까? 거기에 어떤 미사여구가 보태져야 하나요?
복음은 '프로파겐다 (선전)' 가 아니라 '선포'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이라는 '케리그마 (설교)' 를 선포하면서
'프락시스 (비판적 성찰을 포함하는 바른 실천)' 를 함께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는 구걸이 아닙니다.
복된 소식의 전파요, 하나님 선물의 통로이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를 믿으시려거든 세상에서 손해 볼 각오하시고, 고난을 당할 준비를 하세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신 것은,
'너 혹시 나를 따르면 어떤 경제적, 정치적 유익이 있을 줄 알고 그러는 것 아니냐?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이다. 너, 그러한 가난과 고난도 감수하고라도 나를 따를 테냐?'
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목숨 바쳐 따르겠다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고 말씀 하신 후에
'누가 망대를 지으면서 얼마의 예산이 소요될 지 계산도 안하고 짓느냐?
그리고 어떤 왕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내 나라의 일 만의 군사로 상대 나라의 이 만의 군사를 어떨게 이길 것인가를
비교도 안 해보고 전쟁을 하겠느냐?' 라고 가르치시지요?

예수를 좇는 삶은 사전에 그러한 철저한 각오와 계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예수를 계산적으로 믿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좇는 길은 그만큼 좁고 협착하고 힘이 든 십자가의 길이요,
자기 부인의 길이기에 확실한 각오와 계산 아래 좇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식의
때마다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공약 같은 신기루만을 좇아 예수를 믿게 되면,
정말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선포입니다. 그래서, '프로파겐다 (선전)' 도 아니고
견강부회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를 합리화시킴) 여서도 안됩니다.
당당하게 외치십시오.
복음 선포는 반드시 '케리그마 (설교)' 와 '프락시스 (실천)' 의
변증법적 균형 속에서
전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언이설로 예배당을 채우려 하지 마세요.
엉터리 가라지들로 예배당을 채워 목사의 눈에 들려 하지 마세요.
해마다 전도왕을 뽑아 다이아몬드 반지나 LED TV 를 선물로 준다는 어떤 이들의
빗나간 열심들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담임 목사의 총애와 다이아몬드 반지의 유혹과 함께 신앙 생활하는 이들의 부러움을
한 번에 거머쥐겠다는 욕망 속에서 전해지는 복음에
정말 십자가와 '자기부인 (self-denial)' 의 삶이 가감 없이 전달될까요?
정말 복음이 세상에서 그렇게 환영받는 메시지였습니까?

복음은 세상으로부터 뭇매를 맞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세상의 왕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인이다' 라고 외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밉지 않겠습니까?
자기는 지금 자신의 주먹을 믿고 열심히 세상 풍파를 헤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렇게 살다가 지옥으로 가고 말 것이다'
라고 말하는 그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고 고마울까요?

지긋지긋한 가난, 이제 좀 면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어 목숨까지도 걸었는데,
'예수를 믿으면 자기의 욕심과 세상적 자랑과 모든 정욕을 다 버리고
자기를 비워 원수들의 유익을 구하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고 말하는 그 사람을
정말 신이 나서 좇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런데, 어느 날 예배당을 채우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있게 된 것입니까?
두 부류겠지요.
목사의 총애와 다이아몬드 반지의 유혹에 못 이겨
사람들을 끌어 모으느라 만사형통, 소원 성취의 무당 잡교를 전한 어떤 이에게 속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도 모르고 복음이 도대체 뭔지도 모르는,
오늘도 정한 수 떠 놓고 자신의 유익만을 비는 불쌍한 이들 아니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셔서 당신의 백성 삼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도에 의해 십자가의 삶을 각오하고 하루하루를 종말론적 신앙으로 영위해 가는 진짜들,
둘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둘 중 어떤 부류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통해 우리를 도구로 삼아 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축복의 통로에서 겸허하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며 놀라는 것이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로 받으셔야 합니까?
여러분이 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LED TV 를 탐내는 것입니까?
우리는 돌 맞을 각오하고 하나님이 전하라 하신 그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하고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프로파겐다 (선전)' 가 아닙니다. '견강부회 (자기 합리화)' 여서도 안 됩니다.
명심하세요.
복음은 '케리그마 (설교)' 와 '프락시스 (실천)' 의 변증법적 균형을 담고 전파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당당하게 외치세요. '당신들 그렇게 믿다간 지옥 간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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