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집으로 가자 (59) 미로 - 김성수 목사님



앞으로도 뒤로도 좌우로도 발을 내디딜 수가 없습니다.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눈 앞은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일 만큼 끝없이 틔어 있습니다.
그렇게 뻗은 어느 사거리 한복판 ...

영화 "캐스트 어웨이" 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던 바로 그런 길 위에 내가 서 있습니다.
어디쯤인가?
길이라 여겨지는 곳으로 발을 내딛어야 하는데,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미는 사람도, 잡아끄는 사람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강제성도 없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의 기운이 살갗으로 전해져 오는 걸 보면, 난 어디에 갇힌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건 마치 형체도 없고 감각도 없는 어떤 관이 내 몸에 끼워져 그 자리에 세워진 기분입니다.
그러니 정작 형체의 개입은 아닌 것입니다.
영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포위입니다.
겹겹이로 에워 싸 나를 묶어 두고 있는 이 머릿속 기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길 위의 나를 자각하는 시점은 지금이지만, 분명 나는 어디서부터인지 와 있었습니다.
과정이 있고 행적이 쌓여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나아갈 곳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나 온 곳도 희미합니다.
도대체 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왜 거기서 멈추어 있습니까?
숨을 쉬고 있는 나는 분명 살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뇌의 작동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손발을 움직여 방향을 정하는 신경계의 명령 전달 체계가 고장났습니다.

나의 전인에 대한 부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입니다.
살았는데, 과정을 가졌는데, 어느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살아 있었음의 과정이 전부 부인되는 것인가요?
여전히 동일한 몸을 입고, 삶이라 불리우는 상황에 나는 있었고 있을 터인데 ...
갑자기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가야하는 건지, 정지되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득해지는 어느 지점.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소란 속에서도 이 사막의 미로 같은 지점에 저는 수시로 떨어집니다.
길을 잃고, 의지는 차압당하고, 아니 끊임없이 그 지점으로 나를 몰고 가는 어떤 힘을 느끼면서도
보이는 모습에서 나는 웃고 말하고 먹습니다.
완전히 별개의 지배 체계가 내 안에 공존합니다.

이건 또 무엇입니까?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붕괴는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견고한 성을 구축합니다.
무너지고 쌓이는 역설이 반복됩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보이는 내 모습의 멀쩡함에 대한 기대가 스스로에 대한 힘듦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난 절대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겁니다.

죽고 싶다는 신음은 그만큼 사록 싶다는 아우성입니다.
죽음을 떠올리며 내세우는 이유는 그만큼 충족되지 못한 내 바램의 총합입니다.
그러니 저는 너무나 살고 싶은 겁니다. 이런 나의 이중성에 매번 진저리를 칩니다.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낯익은 고백.
'아버지. 참 지독하죠? 인간의 자기 사랑의 욕심이 정말 지독하네요.
끊임없이 꿈궈요. 끊임없이 욕심 내고, 그러면서 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입니까?
이 마음 죽여주세요, 여야 하는데 ...
어쩜 이렇게 지치지도 않고 내 욕심을 끌어내고, 튀어나오고 참 지독하네요,
인간이라는 거 ...'

네, 이젠 정말이지 죽고 사는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한 쪽이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나의 숨통이 트이고 조여 옵니다.
꼼짝을 할 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느끼는 숨 막힘은,
그럼에도 웃고 말하고 먹는 지점에서 느끼는 공허감의 부피와 동일합니다.
거기가 기점입니다.

사실, 웃고 있지만 살았다 할 수 없는 그 자리가 숨을 쉬지 못하는 자리이고,
죽을 것 같은 미로 한 가운데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는 숨길이 내 목숨 줄입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관의 조임은 풀어지고 끌고 가는 힘이 저를 장악합니다.
전 이미 모든 전의와 의지 상실의 상태입니다.
오체가 절단되는 내 죽음의 자리, 매일 그 과정을 되풀이해야 하는 성도의 실존,
그대로는 죽을 것 같은 지점에서 끌고 가는 힘이 불어넣은 기운으로 전 다시 숨을 쉽니다.

죽음의 자리에 삶이 선포됩니다. 오늘을 이렇게 또 버팁니다.
서서히 손끝으로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발끝이 꼬물거려지고 눈동자도 편안하게 돌아갑니다.
함께 멍에를 진 내 옆의 존재가 자각됩니다.

혼자가 아니었구나.
이제껏 나를 짓누르던 그 조임은 기실 부패한 내 마음의 결과였구나.
그냥 내버려 두셨구나.
전심으로 내 육을 좇는 마음이 두 발을 땅에서 떼지 못하게 짓누르기도 했지만,
그런 나를 대면시키려 잠시 붙잡으신 분의 힘이기도 했구나 ...

은혜와 죽음의 매일의 반복,
끝날 것 같지 않은 선명한 자각의 날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죽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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