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72) 서로 알아 간다는 건 ... 고난 가운데 열매로 맺어지는 믿음, 성도의 교제 (Communion of Saints)


샬롬,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그 것' 을 아셨다고 하신 요한복음 2장 24-25절에서,
무엇을 아셨을까 궁금해서 한 번 찾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2:24-25)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유월절기 동안에 성전 안에서 제물(offering)로 쓰이는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성전세로 내기 위해 돈(동전)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그 성전 밖으로 내어 쫒으시며 (요2:15),
나의 그 아버지의 그 가족(호 오이코스 호 파테르, 제물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성전세인
하나님의 백성)을 사고 파는 매매로 결속(연대) 곧 하나로 묶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2:16).

이 때, 옆에 있던 제자들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시편69:9)" 라고 한 성경말씀을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요2:17).
이것은 그 다음에 일어날 유대인들의 반응을 미리 암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을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보고 반응한 유대인들이 그 예수에게,
"네가 이렇게 했으니 어떤 표적 곧 '메시아' 로 입증할만한 표를 보여라(데이쿠노)"
라고 말하니까(요2:18)
그 예수께서 "나는 그 성전을 부순다 그리고 삼 일 안에서 나는 (죽음으로부터)
일으키리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2:19).
그러나, 그 예수께 반응하기를,
"그 성전은 사십 육 년을 지었는데 삼 일 안에 일으킨다고 하느냐?" 라고 대답했습니다
(요2:20).

그러나, 그것은 그 성전인 자기 몸(소마)에 대해서 진리로 말한 것이고 (요2:21),
예수님이 그 죽음(네크로스) 밖으로 나와 똑바로 세워진 후 곧 예수님의 부활 후에야
그 제자들이 그 예수께서 말하신 그 말씀을 기억했는데,
왜냐하면 그 예수께서 말하신 그 말씀(로고스)과 그 성경(그라페)을 믿었기(피스테우오)
때문이다 (요2:22) 라고, 사도 요한이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유월절 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 표적(세메이온)을 보고(떼오레오, 경험하다),
그 '예수(자기 백성을 구원하다)' 라는 그 이름(호 오노마)을 믿었다(피스테우오)
(요:2:23) 라고, '믿는다(피스테우오)' 라는 것을 '교회' 와 '세상' 이라는 두 모습으로
대조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요한복음 2장 24-25절에서,
예수님께서 아셨다고 말씀하신,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그 것은 '믿음' 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교회에게 있는 믿음을 그 말씀(로고스)과 그 성경(그라페)을 믿어 그 진리로 기억하여
하나님의 그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이라고 하고,
세상에게 있는 믿음을 그 표적을 보고 그 '예수(자기 백성을 구원하다)' 라는 그 이름
(호 오노마)을 믿어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자리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믿음, 믿는다(피스테우오)' 라는 단어가 어느 문맥에 들어 있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단어가 가진 의미를 먼저 알고,
그 단어를 품고 있는 문맥의 의미를 이해한 후에야,
그 단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치, 히브리어 '무트(죽음)' 가 문맥의 의미에 따라
헬라어 '네크로스(영원의 형벌을 향한 죽음)' 또는 '다나토스(영원의 생명을 향한 죽음)'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말(로고스)에 담긴 그 진리(레마)를 마음으로 알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친히 책망하시며 우리에게 그 진리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말로 표현되는 껍데기를 보고 그 말을 이어가게 되면,
말꼬리를 물어 그 말에 담긴 내용과는 무관하게 엉뚱한 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가지고 그 말에 담긴 내용을 생각하다 보면,
입을 열어 말의 형식을 빌어 그 단어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그 마음을 알게 되고
함께 나눌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그 말, 하나님의 그 마음을 힘써 나누며
그 영광을 즐거이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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