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6)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교제 (Fellowship)



지난 주일에는 "아버지와 두 아들" 의 비유인 누가복음 15장 11-32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하시는 회개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 비유의 출발점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러
나아왔는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며 수근거리는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백 마리 양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열 드라크마 동전 중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동전, 두 아들 중에서 잃어버린 한 아들, 한 아들 마저 초청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의 비유라고,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모든 성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허락된 자에게만 알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익히 아는 터라, 온갖 기도로 간구하며 한 절씩 읽어 나갔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나가 세상에서 허비하고 돌아 온 둘째 아들이나
아버지 말만 잘 들으면서 자기에게 돌아 올 그 무엇을 기대했던 첫째 아들에게는
초점이 멀어지게 되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만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만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 예배, 찬송 등의 이야기들로 이어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쉬운 마음을 다음 만남의 기대로 대신하며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네 모두는 하나님을 알고 싶고,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첫째 아들일까, 둘째 아들일까 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됨을 깨달아 자기를 부인 당하여 아버지께로 돌아 온 아들을 보며
대견해 하고, 여전히 내 것 밖에 모르는 자기 영역에 집착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용서해 주실거라며,
자기를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모두에게 투영하여 어떻게든 나는 구원받은 자임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 비유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죄인들이 동시에 들었을 터인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둘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받아 주시는 아버지만을 찬송하는 자와 앞으로 변화될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둘째 아들이 그 후로 또 다시 세상으로 나갔는지,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초청에 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 그 아들에게 반응하는 자에게만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알고싶어 하는 마음, 그 아들과 함께 돌아 온 상한 심령,
그 아들에게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찬송과 예배가 모두
아버지의 은혜로 격발된 것임을 아는 자만이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만을 당신의 자녀로 창세 전에 택정하셨습니다.

그런 사실이 정말 나에게 주어진 현실임을 알아가게 되는 자들이,
둘째 아들처럼 해피 엔딩이기를 바라거나 첫째 아들처럼 슬픈 비극이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자기 판단과 자기 확신들을 어떻게 내 놓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회개는 원래 처음의 자리로의 회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네 인간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갈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한 순간이라도 부어지지 않으면 곧바로 하나님의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갈 나 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의 육체가 죽는 그 순간까지
회개는 멈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신 하나님의 은혜, 모든 역사를 아우르는 십자가의 은혜가
나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를 자각하게 하십니다.
육신이 죽어 내가 멈추는 그 때가 진정으로 회개가 이루어지는 두 다리 쭉 뻗고 쉬는
안식일진대, 그 자리로 가기까지 참으로 험악한 인생의 여정을 거쳐야 하니,
죽을 만큼 힘듭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에게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풍성히 누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아버지만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아들의 자리에서 감격으로 부르는 노래,
가장 더러운 발에 가장 귀한 머리카락를 대고 입맞춤하며 기쁨으로 부르는 노래,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워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아버지,

창세 전에 택정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새 이름, 성도(Saint)
오직 아버지만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힘써 모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교회,
약속있는 첫 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원으로

여기시는 은혜,

세상과 나는 간 데 없고, 구속한 주만 영원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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