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94)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요한복음 4:1-30)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게로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워 주소서

어렸을 적 많이 불렀던 노래 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밖으로 나와 갈릴리로 죽으러 가시는 여정 가운데
사마리아 땅에 있는 도시 ‘수가’, 히브리어로는 ‘세겜’ 에 이르러 야곱의 우물 위에 정착하여
유대인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 그들 가운데 가장 천한 한 여인을 만나
그 여인을 덮어 자기의 신부로 여겨 한 몸이 되는 세례,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지난 4 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수가성의 여인, 우물가의 그 여인의 이야기를 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곤 합니다.

"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구하는 사마리아 여인,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의 그 남자도 남편이 아닌, 사마리아인들조차 더럽게 여기고 멀리하는 그 여인,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만나러 불원천리 달려가셔서 우물가에 털썩 주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의 죄를 폭로시키시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그 여인에게 주니,
그 여인이 자기가 생명처럼 여기는 항아리를 버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그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울가의 그 여인처럼 구원받은 나 또한 자기를 다 버리고 그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나와 구원받은 자는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으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자기자신을 독려합니다.
그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요, 세상 끝 날까지 지켜야 할 지상 대 명령이요,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자기 스스로 허리띠를 동여매고 불원천리 뛰어갑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한글개역)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원문번역)
그리고, 그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오셔서 
감히 입 밖으로 나불거리지 못할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들과 땅 안에 있는 진리를 마음으로 간직하는 신분과 능력을 받은 모든 이에게
진리를 말하여 넘겨준다.
나는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거룩한 진리의 성령, 그 이름으로
나의 그 이방적인 세례가 모든 이들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따르는 제자로 되게 하는 
여행을 지금 떠난다.
나는 나의 일의 완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되는 통일,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든 이들이 마음에 간직하도록 가르친다.
보아라! 
그 영원 이라는 그 완성 까지 나는 '나' 로 함께 있는 모든 그 날(욤, 넘겨진 말씀, 진리)이다,
아멘."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 우물가의 그 여인의 이야기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가 지켜야 할 예수님의 지상 대 명령이 아닌 것입니다.

메시아, 그리스도, 그 구원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곡해하여 무거운 짐을 등에 쌓고 있는 그 여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부터 허락하신 언약의 우물 (브엘세바), 곧 '약속의 말씀'
지금 '야곱의 우물' 곧 거짓말쟁이, 강도의 우물로 '수가 (세겜)' 라는 도시에 놓여져 있습니다.
성경은, 그 우물이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에 있고, 
그 땅은 유업인데, '그 아들' 곧 '나'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로부터 나와 그 우물로 불원천리 횡단하여 걸어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2절은 예수님의 그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몰려 왔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사람들에게 세례를 행하였습니다.
성경은,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계셨다' 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그 유대로부터 나와 갈릴리로 가셨는데,
성경은 그 모습을 '그 유대적인 것 밖으로 나와 
갈릴리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 세상으로 죽으러 가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3절에서 '그 가운데 있는 사마리아를 반드시 횡단해서 가야만 하셨다' 라고 말씀합니다.
사마리아 땅에서 보여지는 어떤 모습이 그 세상 안으로 죽으러 가는 그 모습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 사마리아 땅에는 '야곱의 우물 (거짓말쟁이, 강도의 우물)' 이 있었습니다.
브엘세바, 언약의 우물, 약속의 말씀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 야곱의 우물,
아브라함이 헷 족속으로부터 은으로 값주고 산 땅 마므레(헤브론, 연합)에 판 우물이요,
그 후에 블레셋 사람이 흙으로 메꾼 그 우물을 이삭이 다시 판 그 우물이요,
야곱이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일백(헤카톤 hundred, fulfill, perfect) 양(lamb)
곧 순결하고 온전한 화목 제물을 주고 산 그 땅에 있었던 그 우물,
그러나, 새 이름인 이스라엘이 아닌 옛 이름인 야곱(거짓말쟁이, 강도)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우물가에 털썩 주저앉은 모습을, 요한복음 4장 6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예수는 그 여정으로부터 나와 애써 일하셨는데,
말씀 곧 진리가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 우물 위에 거하셨다.'

거기서 신랑이신 예수님은 자기의 신부인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모습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말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그 사랑을 연상케 합니다.

(에베소서 5:25-27 한글개역)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그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의 그 우물로 나와서 그 물을 자기 항아리에 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던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그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그 물로 무거운 짐을 등에 쌓고 있었습니다.
그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물을 나에게 넘겨라, 내가 그 물을 모두 흡수하여 빨아들이겠다.”

그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는 자기가 살아가야 하는 식량을 돈으로 지불하고 사기 위해
그 도시 곧 율법의 핵, 예루살렘과 같은 ‘수가’ 라는 도시 안으로 멀리 사라졌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그 여인과의 말 사이에 절대로 그 제자들이 함께 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과 그 여인과의 말을 끝마친 후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성경이 예수님과 그 여인을 ‘나’ 라는 말로 함께 묶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 곧 그 예수’, ‘나 곧 그 여인 (아내)’, 
으로 그 대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여인: 어떻게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그 물을 달라고 합니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향해 절대로 하나가 되자고 하지 않습니다.
그 예수 : 그 물을 흡수하여 전부 빨아들이겠다고 말한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살아있는 물을 달라고 나에게 요구했을 텐데.
그 여인 : 그 우물은 너무 깊어 내가 차곡차곡 쌓을 것도 없는데, 
               진정으로 어떤 물을 간직해야 살아 있을 수 있습니까?
               그 우물은 나의 아버지 야곱이 주었고, 거기서 나오는 물을 
나와 그 아들과 그 소까지
               모두 다 마시고 있으니, 그 물이 더 위대한 거 아닙니까?
그 예수 : 그 물을 마셔서 흡수한 모든 자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목마를 것이다.
               그 물 밖으로 나와 마시고자 하는 자는 내가 나를 넘겨줄 것인데,
               그 영원 안으로 들어가 두 번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
               나에 의해 넘겨진 그 물은
               나 안에서 영원 이라는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위로 솟아나는 물의 근원이다.
그 여인 : 주(LORD)여, 차곡차곡 쌓는 갈증으로부터 나와 다시는 목마르지 않도록
               나에게 그런 물을 넘겨 주세요.

그러자, 예수님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남편을 부르기 위해 아래로 끌려 내려가서, 다시 여기 안으로 오라.’

그러자, 그 여인은 ‘나는 남편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다 ‘ 라고 반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마음으로 간직하고 있지 않는 남편 때문에 선하다.
‘다섯 남편은 나이고, 지금의 나도 참으로 진리를 말하는 그 남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여인도 뜬금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님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성전 그 율법 안에서 그 아버지를 예배했고, 예루살렘 안에서 그 분을 설명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가 내가 예배해야만 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여인(아내) 이여, 내 안에 있는 믿음을 가져라.
왜냐하면, 그 성전 그 율법 안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 안에서도 아닌, 

그 아버지를 예배하는 그 때가 온다.
나는 내가 실체를 담은 표적을 보는 자를 섬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섬긴다.
왜냐하면, 구원은 그 유대적인 것 곧 선악의 두 마음으로 둘로 가르는 것 밖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오고 있는데,
지금이 진리를 알게 된 예배자가 영과 진리 안에서 그 아버지를 예배하는 그 때이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가 자기를 예배하는 자에게 빚진 것 갚으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그 하나님’, 그리고,  예배자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되어야 한다.’

그 여인 : 나는 이해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메시아 (그리스도) 가 언제 오시는 지를 말한 그리스도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그 분의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예수 : 나는, 감히 입 밖으로 나불거리지 못하는 말, 나 
이다. (내가 그 그리스도 하나님 이다)

그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아와서는 이상히 여겼는데,
예수께서 그 여인 곧 아내와 함께 연합하여 감히 입 밖으로 나불거리지 못할 말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 중에 그 분과 함께 연합하여 진리를 말하기를 요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라고,
예수님과 그 여인 사이의 대화에 모든 제자들이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을 살기 위해 율법 안에서 돈을 지불하고 산 음식을 잡수시라고 
예수님에게 권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나의 양식이 있는데,
그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그 뜻이 되어 나의 그 일이 온전히 완성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피조물인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쌓고 있는 무거운 짐인 옛 언약,
지키면 살고 안 지키면 죽는다는 그 옛 언약을
선악의 두 마음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항상 온전히 지켜 행하여야만 하는 그 무거운 짐,
그 곡해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육신(사륵스)을 모두 흡수하여 빨아들여 멀리 던져 버리는 것이
예수님의 그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30 한글개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것은, 남편이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심 같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25-27).
이것이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신부인 교회에게 몸소 보이신 ‘세례’ 입니다.

그 ‘세례’ 곧 예수의 죽음 안에서 그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그 분과 연합되어 그 분의 신부로 여겨짐을 받은 교회도
그 분의 ‘세례’ 에 동참하게 되어짐으로 여겨짐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8-30절에서, 사마리아의 그 여인을 통해 그 모습을 이렇게 보이십니다.

‘확실하게 그 여인 곧 아내는 자기의 그 물항아리를 멀리 던져 버렸고,
그 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등에 쌓고 있는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곧 그 예수를 말했습니다.
“여기로 오세요!
나의 마음에 간직한 모든 것을 나에게 대답한 그 사람을 보고 아십시오.
그 분이 그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그 분은 확실히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모습은, 진정으로 그 도시 밖으로 나와 떠나서 그 분을 항해 온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세례’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완성되는 그 죽음으로부터 나와 살아나게 되는 부활은
하나님의 홀로 일하심으로 온전히 이루신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 죽음 이전에 주어진 부활에 참여한 남은 자는 천 년 곧 이 땅의 역사인 칠 십 이레가 다 차기까지
도끼로 목 베여 죽어 있는 자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있어, 절대로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자기 것을 도로 찾아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이 역사 가운데 그렇게 죽어 있음을 알게 되어지는 하나님의 아들들만이
여전히 스스로 살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죽어 있는 자 옆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그 죽어 있는 자가
그렇게 죽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바라보며 자기도 죽어 있음을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길은, 
자기 스스로 도무지 이 땅을 벗어날 수 없는 죽어 있는 자가 이 땅과 작별하고
이 땅으로부터 떠날 수 있게 되는 유일한 길인 것이며,
그 죽음 밖으로 나와 살아나게 되는 부활에 참여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이웃을 이처럼 사랑하라’  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이웃이 창세 전에 택정받은 자든지 유기된 자든지 상관없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창세 전에 택정받은 성도의 표지이며, 이 땅에서 동참해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남은 고난' 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받을 고난을 덜 받아서 그 나머지를 성도가 대신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서 받은 고난과 똑같은 고난을 성도도 함께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 이전의 부활에 참여한 남은 자는
이 땅에서의 죄가 충만하여 심판할 그 때가 차기까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듯, 죽어서 다시 사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점진적으로, 점층적으로, 점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그 하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비밀을 알게 되는 성도는
원래 처음 자리인 죽은 흙의 자리에서
그 경계밖으로 이리저리 누워 있지 않고 그 안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의 그 그리스도의 비밀 곧 하나님의 작정으로
이 땅에 차서대로 펼쳐 놓은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그 경계 바깥에 있는 자의 코뚜레를 뚫어 질질 끌어 마침내 하나님만을 향해 가운데 세우시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경륜해 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의 미말에 놓여 질질 끌려가는 전리품인 ‘나’ 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향기로운 향으로 그 분을 찬송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칠 십 이레, 그 한 때 두 때 반 때가 ‘나’ 안에서 완성되어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경계 밖, 그 마므레 옆 막벨라 굴 밖으로 절대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골 골짜기 그 돌 무더기 아래에서 도끼로 목 베인 채로 죽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는 그 육신 밖으로 나와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는 영광 중에 그리스도의 새 몸을 덧입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을 열어 말할 수 있으니,
이 시대에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그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신다.’

내가 그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 찾으러 다닌 것도 아니요,
내가 그 복음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 찾아가 붙잡은 것도 아니요,
내가 그 복음이 어떻게 드러나는 지를 알아 내 옆에 두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이 나를 찾아와 내 안으로 들어와서는 내 마음으로 간직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반대편에 서 있던 원래 처음 자리인 선악의 두 마음이
그 주어진 목적이 다해 쓸모없어 멀리 던져 버려져
하나님만을 향해 가운데 똑바로 서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마음, 그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나를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던 말을 하던 그 사람이 안 보여도
나 스스로 나를 위해 나를 이끌어 줄 또 다른 금소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이제는 나를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던 그 말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말이 되어
나 스스로 나를 위해 나를 이끌어 줄 거짓말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이제는 이 땅으로부터 발이 들려 이 땅과 작별하여 위로 거듭난 하늘을 알게 되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안식을 즐거이 누리는 자유, 그 영원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죽음과 생명, 죽어 있다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 그 옳은 편과 그 반대 편은
원래 하나를 둘로 갈라 놓아 차서대로 짝으로 두어진 한 때 두 때 반 때인 것입니다.
그 둘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헛된 욕심으로 자기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그 어떤 말을 

찾아 돌아 다니지 않고,
그 둘을 이미 하나로 연합하여 선물로 허락하신 그리스도 안에 가만히 서 있는 우리 모두 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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