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5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19)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여정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사도행전을 펼쳐서 읽어 봐야 합니다. 특히, 기독교 교회의 인정과 뒷받침을 받아 최초의 본격적인 설교로 기록된 사도행전 7장이야말로 신약의 복음(Good News) 입니다. 신약성경은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다른 모든 연설과 설교뿐 아니라 종교개혁과 부흥이라는 위대한 시대에 행해진 설교의 전형입니다.
결코 감상주의가 아닙니다. 우리의 지적 기능과 정서와 의지를 총체적으로 동원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기독교와 기독교의 전도를 비이성적이고 정서에나 호소하는 감상주의라고 부인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은 정작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그들은 아마도 집에서 느긋이 앉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볼 것입니다.
거기서 주로 무엇을 봅니까?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드라마나 '눈물을 짜는' 멜로드라마, 몇 시간을 해도 지루하지 않는 게임 같은 것 아닙니까?
그것이 이성입니까? 그것이 논리성입니까? 텔레비전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읽거나 소설을 읽는 것이 지적 활동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스데반 집사의 이 위대한 설교가 회중의 감정에 대고 호소한 것입니까? 감각적인 이야기로 회중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까?
안락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앉아서는 이 설교를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 일어서야 합니다. 이것이 논리적인 설교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와 기능을 요구합니다. 아니, 우리의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의 몸체요, 교회의 몸체요, 위대한 진리 진술의 몸체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정신에 전달됩니다. 성경은, 인간이 받은 가장 훌륭한 은사가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 이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에게는 짐승에게 없는 정신이 있습니다. 인간은 논지를 따라가며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관찰하고, 스스로 검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정신입니다!

그 진리이신 '복음' 은, 오늘날 이 세상의 정치, 예술, 학문, 과학 등 '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새로운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것이 과거에는 한번도 진지하게 직면하지 못했던 것이며, 모든 관심을 집중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모두 부수고 씻어 냅니다. 싫든 좋든 복음 앞에 설 때는 그렇게 되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내딛는 첫 걸음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깨닫게 해 줄 어떤 것, 우리 내면에 다가와 "너는 하나님의 아들을 못박아 죽인 죄인이다" 라고 선언할 어떤 것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할 때 놀라지 마십시오.
그들로서는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이 사실은, 세상의 유능하고 유력한 사람들을 향해 "당신은 무익하고 소망이 없다" 고 말하고 있고, 도덕적인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도덕성이란 '더러운 옷' 과 같아서 똥떵어리, 분뇨, 배설물,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들, 모태신앙 즉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을 예배해 왔다" 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한 적이 없습니다. 상상으로 그려낸 관념적 대상을 숭배한 것이고, 기독교 전통을 숭배한 것입니다.
당신이 '신앙인' 이라고 하는 말은, 유대인이나 이슬람교 신자, 혹은 불교나 유교 신자가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 앞에 직면했는데도, 예전처럼 여전히 행복할 뿐만 아니라, 나는 선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일이란 없습니다.

'복음' 은, 우리가 딛고 살아 온 근간을 무너뜨리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알고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알려주는 복된 소식이며,
그 소식을 들은 자들이 반응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주인이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셔서 왜 구원을 허락하시는지, 또한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힘써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신앙의 여정이 기록된 사도행전 6, 7장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걸어가신 그 길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걸어가신 그 좁은 길을 우리로 하여금 걸을 수 있도록 도우시고 힘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은혜를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그 길을 힘써 가야 합니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한없이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사도행전 6:1-15)
"이 시기에 제자들이 점점 불어났다.
그런데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그것은, 매일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네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제쳐놓고서, 음식 베푸는 일에 힘쓰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여러분 가운데서 뽑으십시오. 그러면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좋게 받아들여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이방 사람으로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인 니골라를 뽑아서, 사도들 앞에 세웠다.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퍼져 나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가고,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해서,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였다.

그 때에 구레네 사람과 알렉산드리아 사람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으로 구성된, 이른바 리버디노 회당에 소속된 사람들 가운데 몇이 들고일어나서, 스데반과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그들은 스데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그리고 백성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을 부추겨 스데반에게로 몰려가서, 그를 붙잡아 의회로 끌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이렇게 말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쉴 새 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이 사람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뜯어 고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사도행전 7:1-60)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이것이 사실이오?" 하고 물었다.

스데반이 말하였다.
"부형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거주하기 전에, 아직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서, 어디든지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거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대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그를 하란으로부터 지금 여러분이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유산으로 물려줄 손바닥만한 땅도 그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자손들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은 외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 동안 남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그들을 종으로 부리는 그 민족을 내가 심판하겠고, 그 뒤에 그들은 빠져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예배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여드레째 되는 날에 그에게 할례를 행하고, 이삭은 야곱에게, 또 야곱은 열두 족장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족장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이집트에다 팔아 넘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셔서,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져내시고, 그에게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이집트 왕 바로의 총애를 받게 하셨습니다. 바로는 그를 총리로 세워서, 이집트와 자기 온 집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이집트와 가나안 온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재난이 극심하였는데, 우리 조상들은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우리 조상들을 처음으로 거기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두 번째 갔을 때에, 요셉이 그의 형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이 일로 해서 요셉의 가족 관계가 바로에게 알려졌습니다.

요셉이 사람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야곱과 모든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여 오게 하였습니다.
야곱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그도 거기에서 살다가 죽고, 우리 조상들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유해는 나중에 세겜으로 옮겨서, 전에 아브라함이 세겜의 하몰 자손에게서 은을 주고 산 무덤에 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이 왔을 때에, 우리 백성은 이집트에서 늘어나고 불어났습니다.
마침내,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임금이 이집트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임금이 우리 겨레에게 교활한 정책을 써서, 우리 조상들을 학대하되, 갓난아기들을 내다 버리게 하여서, 살아 남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 때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용모가 아주 잘생긴 아기였습니다.
그 부모는 그를 석 달 동안 몰래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 뒤에 어쩔 수 없어서 내다 버렸는데, 바로의 딸이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삼아서 길렀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의 사정을 살펴볼 생각이 났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족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의 편을 들어, 이집트 사람을 때려 죽여서, 압박받는 사람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 동족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빌어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줄로 생각하였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튿날 모세는 동족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이 사람들아, 그대들은 한 형제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서로 해하는가?'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료에게 해를 입히던 사람이 모세를 떠밀고서 말하기를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어제는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또 나를 그렇게 죽이려는 거냐?'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모세는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사십 년이 지난 뒤에,
천사가 시내 산 광야에서 가시나무 떨기 불길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자세하게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주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무서워서, 감히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학대받는 것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다. 이제 내가 너를 이집트로 보내니, 너는 가거라.'

이 모세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하고 배척했던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모세를, 가시나무 떨기 속에서 나타난 천사를 통하여 통치자와 해방자로 세워서, 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이 사람이 그들을 이끌어 냈는데,
그는 이집트 땅과 홍해에서, 또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놀라운 일과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것과 같이,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이 모세입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회중으로 모여 있을 때에, 시내 산에서 그에게 말하는 천사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어서,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를 제쳐놓고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론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어 주십시오.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온 그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송아지를 만들어서 그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섬기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그들을 내버려 두셔서, 하늘의 별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책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가문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있을 때에, 희생물과 제물을 내게 바친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몰록 신의 장막과 레판 신의 별을 받들었다. 그것들은 너희가 경배하려고 만든 형상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바빌론 저쪽으로 옮겨 버리겠다'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살 때에, 그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 모세가 본 모형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우리 조상은 이 장막을 물려받아서,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땅을 차지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그것을 그 땅에 가지고 들어왔고, 다윗 시대까지 물려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므로, 야곱의 자손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높으신 분께서는 예언자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속에 살지 않으십니다. '나 주가 말한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나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해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다.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소리를 지르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어 돌로 쳤다. 증인들이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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