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집으로 가자 (42) 책상 위의 단상 - 김성수 목사님



학창 시절 저의 꿈은 작은 시골 마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고사리 같은 손들이 왁스로 광을 내놓은 마룻바닥 위에 
올망졸망한 책상과 걸상들이 놓여 있고,
오른 켠엔 열심히 발을 굴려야 하는 오래된 풍금이 있는 그런 초등학교 교실이
저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삼학 년 때인가요,
어느 봄 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
혼자 조용한 교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시던 우리 담임선생님 모습을
복도에서 유심히 본 적이 있었습니다.

늘 청바지에 짧은 머리, 그리고 썩음썩음 한 오래된 클래식 기타를 교실 캐비넷에 넣어 두시고
아이들이 돌아간 뒤,
양희은의 노래며, 트윈 폴리오의 노래, 박인희의 노래를 나지막하게 즐겨 부르시던 
그 선생님 덕택에
저는 비로소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류의 노래를 벗어나 어른들의 노래를 알게 되었지요.

저는 그 선생님 책상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안 계실 때면 살짝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 책상에 앉아 보곤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 책상에는 늘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가져다 놓은
칠성사이다 병을 깨끗이 닦아 만든, 들꽃이 듬성듬성 담긴 꽃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 책상에서 내다 보이는 운동장 가에는 개나리가 만발했지요.
창가에는 커다란 버들가지가 풋풋한 향기로 새 봄의 소리를 속삭여 주고 있었고,
거기에 봄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이러한 평안과 안식을 어디서 또 맛 볼 수 있을까' 하는 조숙한 만족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언젠가 부터 저와 함께 노래하는 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선생님은 저에게 '들길 따라서', '모닥불', '한 사람' 같은 노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한두 번 들은 뒤 이내 선생님과 듀엣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빨리 노래를 배웠고요.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선생님은 늘 손수 흐트러진 아이들의 책상을 바로 맞추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사랑이 지극했던 그런 선생님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또 다른 감사함입니다.

지금 제가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 이 사무실 밖에도 야자수 나무와 이를 모를 꽃나무가 있습니다.
바람의 냄새도 그 때의 그 바람과 흡사합니다.
제 책상에는 '목사님, 힘내세요.' 라는 작은 카드와 분홍색 포장지로 예쁜 선물이 놓여 있습니다.
저도 가끔 기타를 잡고 찬송가가 아닌
그 때 우리 선생님과 불렀던 그리운 노래들을 나지막하게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 교인들이 매주 앉아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당에 들어가 그 의자들을 이리 저리 만져 봅니다.

그 때 우리 선생님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선생님은 우리가 앉아 있던 그 책상과 걸상을 하나하나 맞추시며
'건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씩씩하게 자라다오.' 라고 기도를 하셨을 거에요.

저도 우리 교회 식구들이 앉았던 의자며 여기 저기 두고 가신 주보와 성경책들을 정리하며
그 자리에 앉았던 부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꼭 우리 함께 천국 가게 해 주세요."

"거기 가서는 제가 이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 때는 정말 저도 책임감에 질끈 동여매었던 머리끈과 허리띠를 풀고
사심과 꽁수가 없는 허심하고 맛있는 이야기를 가슴 터지는 자유와 함께 나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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