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집으로 가자 (39) 이별에 대하여 - 김성수 목사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정오의 그 따뜻한 시간을 지나면 중심을 거쳐 쓸쓸하게 변경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 시내를 거닐다, 이렇게 밤이 되고 캄캄해지면
그 지나갔던 오후의 시간들이 꿈결 같다는 인상을 가끔 받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꾸는 꿈과 그 오후의 변경 모두는
두 번 다시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동류인지도 모르지요.
삶은 그렇게 꿈꾸듯 서둘러 변경으로 치달아 갑니다.

주변에서 많은 죽음들을 봅니다.
오랜 시간 감기인 줄 알고 방치해 두었다가 하반신 마비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친구도 있고,
어제 통화를 한 목사님이 책상에서 과로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떤 병사의 아버지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고,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것만 같았던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망연한 자녀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생명이 끊어지고 이별을 하는 것은,
그 시기가 빠르건 느리건, 우리가 맞닥뜨리는 또 하나의 자명한 시간들입니다.
그것들은 참 아픈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별이 너무 아프기에, 만남을 원망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이생의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 무지합니다. 무관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에 설탕을 몇 스푼 넣을까를 고민하는 게 삶이기도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게 자신의 반쪽과도 같은 이와도 생이별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자명한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
여전히 돌아서면 이생의 너머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궁극적으로 죽음과 소멸을 대면하지 않으려는 삶의 소소함은
매우 가볍거나, 알고 보면 대단히 이기적인 삶인 것입니다.

인생은 이생에 한 번 알뜰하게 주어진 축제이기도 하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한낮의 무대와의 이별이
다른 곳에서의 더 큰 만남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이별은 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더 큰 만남, 아니 이 오후의 신기루 같은 만남들이 아닌 진짜 만남을
이 땅에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들을 이별로 끝장내지 않기 위해
나의 삶을 그들의 구도의 다리로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작은 예수로 성숙해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별을 아파하기 전에 먼저 그 이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사색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크고 작은 이별 속에서 슬픔에 머물지 않고

가슴 설레는 기대와 소망 속에서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우리 성도들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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