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81) 건너지 못하는 구렁 (Abyss)


이곳 북가주에도 KBS 방송이 나오는데,
한 달 정도 늦은 프로그램을 LA 에서 공중파로 보내줍니다.

그 중에서 '승승장구' 라는 연말 특집 프로그램에서 '혜민' 이라는 승려가 나왔더군요.
모든 사람들이 마냥 무서워 그저 피할려고만 하는 그 죽음을 알고 싶어
불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그 분,
얼핏 보면, 우리네 신앙의 여정과 흡사해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자기의 처한 환경과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그 불안과 그 공허와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런 상태에 처해 있는 자기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그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불안과 그 공허와 그 고통은 '나' 와는 무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를 깨닫는 것을 '해탈' 이라고 부르고,
그 상태가 영원으로 지속되는 것을 '열반' 이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기부인(self-denial)' 과 '영화(glorification)' 를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본다고 할지라도,
그 사이에 가로 놓인 구렁은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습니다.

나를 허락하지 않는 나에게 그런 나를 허락하라고 말해본들
나를 허락하지 않는 내가 그런 나를 허락하라고 하는 나를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상태를 두고 고민하는 나를 또다시 허락하라고 나는 나에게 말하겠지요.
그게 곧 하나의 축이 뭔지도 모르면서 영원히 돌고 도는 수레바퀴 '윤회' 인 것입니다.

범신론에서 말하는, 내가 나를 허락하는 주체로 영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일신론에서 말하는,  나와 이미 연합되어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영원이므로
은혜로 거저 값없이 영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와 찬송이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로만 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토크쇼을 잠시 보며 드는 생각이,
힘든 짐을 지고 가는 게 보인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짐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앎과 됨과 누림은 참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데에 동의되어 집니다.
그렇게 동의되어지고 난 후로는 곧바로 TV를 꺼버렸습니다.

오늘은 왠지 주절 주절 이야기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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