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9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44) 하나님의 선하신 일 (Good work) The Fourth Day



지난 주일부터는 히브리서 12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네 번째 날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 곧 하나님께 항복하는 자리까지
죽어도 가기 싫어하는 나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맞서 싸운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로서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편의대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핑계를 대며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 곧 사랑의 매를 때리십니다.
여기서, 징계(Discipline)는 '파이데이아' 곧 '자식 만들기'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속한 당신의 자녀로 여기시고 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만 향하는 우리를 가만히 놓아 두실 수는 없습니다.

그 징계는 우리가 받고 안 받고 하는 그런 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다 겪는 고난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양날선 검으로 인간의 죄된 본성으로 연합된 골수와 관절을 쪼개어
'이것만은 아니겠지' 하고 있던 우리의 숨은 내면까지도 폭로시키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조차도 보기 싫어하는 나의 추한 모습을 깨닫고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힘든 순간일 것입니다.

그래서, 징계에는 아픔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 아픔과 고통이 세상의 신이 되어 버린 내가 부인당하는 오직 한 길입니다.
지금 당하는 그 아픔과 고통이 사생자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나를 폭로당하기 싫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질려고 해도,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열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우리를 새롭게 빚어가십니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죽어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파하지만,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우리 주님의 지체들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안에 굳건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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