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집으로 가자 (47) 일송정 푸른 솔은 - 김성수 목사님



만주에 가면 일송정의 푸른 솔이 아직도 독야청청하고 거만하게
그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만주 땅을 여기 저기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일 먼저 가 본 곳이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평소에 너무나 가보고 싶었던 그 곳에 한 줄기 실타래를 풀어 놓은 듯한 해란 강이
소나무 향내를 타고 넘실넘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곳에서 내려다 보면
여기 저기 하얀 공동묘지 봉분 군이 외롭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만주 땅을 종횡무진 달리던 우리 조선의 독립군들이 죽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름도 찾지 못한 그 무덤들은 그 날도 호탕하게 저를 향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내 조국 조선의 독립과 내 사랑하는 겨레 조선인이
자유를 위해
난 내 목숨조차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노라고 ...

작곡가 조두남 선생이 만주 목단강 변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건장한 청년이 말을 타고 조두남 선생을 찾아 왔었습니다.
그 분은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두루마리에는 조선 독립군가의 가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정중하게 조두남 선생에게 조선 독립군가의 작곡을 부탁하고
달포 있다가 찾으러 오겠노라는 말을 남긴 채 총총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났는데도, 그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사살이 되었거나 감옥에 끌려갔을 거라고
조두남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그 외로운 땅 만주 벌판에서 종횡무진 말을 달리던
그 조선의 독립군을 생각하며 만드신 노래가 바로 "선구자" 입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 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일찍이 조두남 선생으로부터 그 곡의 배경을 들어 두었던 터라
저는 그 일송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만주 벌판이 꼭 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일송정에 올랐을 때, 저는 또 다른 선구자를 꿈꾸었습니다.
조선의 독립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 조선 동포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말씀, 복음을 전하겠노라는 꿈이었습니다.

그 후 여섯 번이난 중국을 넘나들며 조선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지요.
지저분한 화장실, 입에 맞지 않는 먹거리, 불친절, 끈적거리는 더위, 미적지근한 물,
불편한 잠자리, 그런 것드로 힘이 들 때마다
저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말을 타고 만주 벌판을 달리다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 선구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내 그들에 비하면 저는 사치스러운 불평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중국 땅에 들어서면 그 습한 더위가 오히려 정겹습니다.
그 역한 냄새가 구수한 고향 냄새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의 불친절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저는 중국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혼자 중국의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그들의 삶을 진하게 맛봅니다.
그냥 그 속에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지저분한 돼지비계 한 덩어리로 식사를 준비하는 그들의 낡은 프라이팬 속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그들을 향한 강한 연민을 보기도 합니다.

저는 제 힘이 다 하는 날까지 중국을 향해 갈 겁니다.
관우와 장비와 유비와 진시황이 살던 그 나라,
13억의 인구가 부산스럽게 단지 그들의 오늘을 위해 하루를 살아내는 그 나라,
저는 내일 24명의 우리 전사들과 함께 또 그 땅으로 떠납니다.
우리는 가서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겠지요.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이번에는 어떤 녀석이 또 복음의 수지를 맞을까?"


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집으로 가자 (46) 준비 없는 이별 - 김성수 목사님



'지난 시간 내 곁에서 머물러
행복했던 시간 들이
고맙다고 다시 또 살게 되어도
당신을 만나겠다고
아 그댈 보낼 오늘이
수월할 수 있도록
미운 기억을 주지 그랬어.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게 줘
안 돼 지금은
이대로 떠나는 널
그냥 볼 수는 없어.'

우리 교회가 매년 떠나는 중국 조선족 중학교 영어 캠프에서
장기 자랑 때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저는 조선족 아이들이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왜 아이들이 장기 자랑 때 그 노래를 부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만 오늘 더 하루만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노래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중국 목단강시 조선족 중학교에서의 영어 캠프는
다른 해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첫 번째 날 서먹서먹했던 시간들을 두 번째 날부터 아이들이 먼저 깨 주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김밥을 싸 온 아이,
할머니에게 부턱해서 옥수수를 한 보따리 쪄 온 아이,
작은 선물들, 꽃다발, 그리고 정성이 담긴 편지들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었습니다.

우리 선교 팀들은 오히려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교를 끝내고 이렇게 아이들이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새벽 6시가 못되어 기차역까지 좇아 나온 아이들이 꽃다발을 한아름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선생님들 손에는 어느새 아이들이 밤을 새워 싸 온 도시락이 여러 개씩 들려 있었습니다.

선생님들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런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애써 눈물을 참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차가 떠날 때까지
우리가 탄 칸 앞에 도열하고 서서 며칠 동안 함께 배웠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 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울고 있었습니다.
"Deep deep oh~ deep down down, deep down in my heart ..."
"Making melody in my heart ..."

기차 안의 선생님들을 바라보면서 펑펑 우는 아이들,
그리고 그 선생님들에게 자기들이 배운 것을 애써 보여주려는 그 모습을 보면서
참고 참았던 눈믈이 터져 버렸습니다.

너무나 눈물이 나서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차 천정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차가 떠날 때쯤 아이들이 "첨밀밀" 을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누가 그 노래 좀 불러 줄 수 있겠느냐는 그 말을 새겨들은 아이들이
기차가 떠날 무렵 그 노래를 합창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 모두가 우리가 믿는 그 예수를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정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차가 떠나자 아이들은 기차를 좇아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연신 손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우리는 한 동안 기차 안에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싸 준 도시락을 열면서 또 한 번 통곡을 했습니다.
"선생님, 밤새워서 싼 거니깐 맛있게 드세요"
도시락 마다 뚜껑에 작은 메모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락을 밤새워 싸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또 그리움의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미국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 학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거라며
한국에서 오랜 만에 오신 엄마가 손수 담근 김치를 한 통 들고 와서
하얀 쌀밥과 함께 내어 놓던 고삼짜리 미나.
전교 3등짜리 얌전이 라림이,
그 동안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자기 이름을 선생님이 많이 불러 주어서 너무 좋았다는 국화,
한 쪽 눈 시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사원이,
언제나 씩씩하게 나를 도와주었던 우리 반장 대식이,
기도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던 추영이,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가장 성싱하게 모든 프로그램에 임해 주었던 성덕이,
눈썹이 짙은 학림이,
머리가 특이한 김림이,
멋쟁이 려나,
통통한 려화 춤을 아주 잘 추었던, 그리고 떠날 때 제일 많이 울었던 미월이, ...

잘들 지내고 있거라.
선생님이 너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지 모를 거야.
명년에 만날 때는 우리 미월이처럼 너희들 모두가 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을 선생님께 불러줄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단다.
그리고, 그 동토의 땅에서도
이미 그렇게 예수를 전해 듣고 퇴학을 불사하고 예수를 믿고 있는 너희 친구들처럼
너희들 모두에게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단다.

모두들 건강하렴 ...



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집으로 가자 (45) 새벽 단상 - 김성수 목사님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의 프리웨이에는 차들의 불빛만 넘쳐납니다.
반대편의 전조등과 앞으로 늘어져 있는 붉은 등만이 대역을 이루며 늘어섰습니다.
빛은 넘쳐나는데 밝지가 않습니다.
이 이른 새벽에도 차들이 그렇게 많은 것에 새삼 놀라지만,
그렇게 많은 차들이 내는 빛으로도 길은 여전히 어두컴컴합니다.

그런데, 그 깨어지기 전의 어둠이 왜 이리 편안한지요?
우린 모두 속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여기는 거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이 새벽의 어두움이 해의 부재를 말합니다.
그래서, 빛을 소유하지 못하면 어두움이 본성인 죄인들이라
가리워진 빛을 없음이라 말하며 죄에 머문 여기가 편안한 것입니까?

예전에 친구들과 동해로 일출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가을, 이맘 때쯤 이었습니다.
그 신 새벽에 오들오들 떨면서 해를 기다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바다 저 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잔뜩 긴장해서 수평선을 주시하지만,
해는 더디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미 해는 거기에 있었는데 전 기어이 그 실체를 봐야겠다 여긴 겁니다.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 정작 해는 순식간에 떠버리고,
내가 정말 무엇을 기다렸나 수습하기 바빴던 마음도 기억합니다.
여명의 그 아름다운 붉음이 실체의 속성인 걸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렇게 드러난 빛에 사물이 얼마나 예쁘게 보이는 지는 제대로 표현도 못합니다.

봐야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담자고 담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알게 될 때 비로소
내 안에 소유되는 것임을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내가 찾아서 찾아지고, 그래서 관계하는 하나님은 이미 해가 뜬 다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 거기 계셨고,
어둠을 밝히실 때도 이미 환하게 만물을 보이실 때도 하나님은 존재 자체입니다.
어둠이 낮익고 편안한 것은 우리의 본성일테지요.
그것이 깨어지는 것이 '성도(saint)' 라 지어진 자들의 숙명이라면,
마지막 어둠이 아늑한 그 순간이 가장 우리에겐 복된 순간일지 모릅니다.

이제 곧 그 어둠이 부수어지고 스스로 불 밝히던 자아가 무력해지며
나를 치고 들어오는 그 빛에 아무런 저항 없이 온 몸을 맡겨야 할 때가 바로 그 때 일테니까요.

새벽의 하늘은 분초를 달리하며 그 아름다운 색을 뽑냅니다.
빛이 환히 비춰 온 만물을 밝히 드러낸 때 보다
지금 이 어둠을 가르는 하늘의 다양함은 훨씬 역동적입니다.
죄를 가르는 하나님 영광의 선명한 파워(power) 입니다.
그렇게 어둠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력을 가진 하늘나라의 이 땅에서의 보여짐이 새벽의 하늘입니다.
내 안의 죄는, 어둠은, 밤은 그렇게 매일 갈라져야 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향해 달려오다 처음엔 해를 찾았습니다.
이미 밝아져 오는 하늘은 관심도 없고, 내 눈에 해의 실체가 보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미 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시간에만 해가 해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해가 떠오르면 차들의 불빛은 이미 그 힘을 잃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렇게 힘을 내던 농염한 색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서로가 길을 비추며 앞 다투어 달려도
바로 눈 앞 밖에 밝히지 못하던 그 허상은 단 하나의 존재에 힘을 잃어버립니다.
아직 그 실체는 보이지도 않는데,
모든 것을 밝히 보이는 힘에 사람이 만들어낸 수 만 볼트의 빛은 민망해하며 자취를 감춥니다.

생각을 내 사랑으로 당겨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미 그 존재로 사랑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도 그 실체가 이미 사랑입니다.
눈에 보이고 잡히고는 언제나 그 다음입니다.
그래서, 함께 해도 서로가 내어놓을 사랑의 실체인 예수가 없으면 외로울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내가 저 안에 저가 내 안에 있는 존재로 가능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신부된 존재가 그렇습니다.
장차 예비된 혼인 잔치 날에 내 신랑이 그렇게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참 존재가 빠진 이 땅에서 죄된 세상과 더불어 갈 때 함께 해도 외로운 절망을 배우는 거고,
지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서로가 관계하는 그 충만한 사랑을 또 배우는 것입니다.

Love is, knowing He's there.

서서히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며 밤이라는 시간을 깨고 쪼개며 빛이 들어옵니다.
기식하는 모든 것들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비추이기 시작합니다.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겐 밤새 장악했던 어둠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 안에 성령의 거울이 있으면 그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그게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화목입니다.

그 거울이 없어 삶에서 빛을 반사할 수 없는 자들은
생령이 없는 생명을 키우는 도구로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용합니다.
그 어둠 속에도 빛을 잃고, 빛이 없다고 외쳤던 자들은
이 아침의 밝아져 옴이 오히려 숨막히고 따분합니다.

빛을 기다리는 자와 어둠이 편한 자들이 똑같이 이 시간을 맞습니다.
원래 존재했던 실체에 대해 보고 감지하는 시각이 서로 다릅니다.
부여된 자만 볼 수 있는 어둠을 내포한 빛입니다.

이 하루에 
나의 죄와 어둠과 죽음과 그것을 깨고 나오는 생명과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이
모두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집으로 가자 (44) 하늘과 바람과 별 - 김성수 목사님



제가 사는 곳은 LA 에서 거의 한 시간쯤 떨어진, 아직은 한적한 "마을" 입니다.
엄연히 '산타 클라리타' 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이지만, 저는 제가 사는 곳을 늘 "마을" 이라 부릅니다.
그게 왠지 정겹기 때문입니다.
제가 굳이 제가 사는 곳을 "마을" 이라 부르는가 하면,
제가 사는 곳에서는 아직도 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밤하늘을 지키고 있고,
바로 코 앞에는 비록 황량한 캘리포니아의 산이지만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한 밤에 창을 열고 내다 보면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 바람이
이내 저를 제가 어려서 자란 우리 할머니 동네로 데려가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자주 그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모두가 잠든 새볔, 새벽기도를 나오기 전에
저는 잠시 그 하늘과 바람과 별을 몸으로 읽으며 행복해 하곤 합니다.

그렇게 인기척이 없는 모두가 잠든 밤에 하늘과 바람과 별을 느껴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때는 때 아닌 귀뚜라미가 휠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자고 있는 아이들의 숨소리도 확성기 소리처럼 큽니다.
살아있음의 소리, 나뭇가지와 풀들이 자라는 소리, 벌레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들이 일어납니다. 참 신기합니다.
아주 자주, 훤하게 먼동이 터 올라 별들이 해쓱하게 빛을 잃을 때까지 그렇게 있고 싶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자연을 느끼고 있노라면,
저 먼 만주 땅에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별을 노래했던 어떤 시인의 마음과
뤼르봉 산에서 주인님의 딸인 스테파네트와 함께 별을 보며 행복해 했던
도테의 '별' 에 나오는 그 목동의 행복감이 그대로 제 마음 속에 담깁니다.
그 때 바로 그 순간을 글로 쓴다면,
그 알퐁스 도테의 아름다운 소설이 판박이처럼 나올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놓으신 것들을 잘 들여다 보면 그렇게 신비롭고 아룸다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새볔 저는 히브리서 2장을 설교했습니다.
시편 8편의 그 아름다운 내용을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을 해서
우리 이 불가능하고 제한된 인간들이
어떻게 천사까지도 다스리는 만물의 으뜸으로 서게 될 지를 설명해 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 두신 달과 별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 하시나이까"

제가 그렇게 감탄하고 감격하는 그 모든 창조물들이 저를 위해 지어졌고,
우리의 새 창조가 완성이 되는 날, 저는 그 천지를 다스리는 왕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는 것도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데, 제가 그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된답니다.
어찌 불가능하고 타락한 '에노시' 인 사람이 그 아름다운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답니다. 아니,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 다가 올 세상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그 시편과 히브리서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도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을 보아야겠습니다.
그러나, 그 별들이 아마 어제의 별들과 다른 느낌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행복한 날 ...



2013년 10월 24일 목요일

집으로 가자 (43) 내 친구 - 김성수 목사님



우리 서머나 교회가 개척되고 한 달이 자났을 무렵입니다.
한국에서 구상 선생이 타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구상 선생은 6.25 종군 작가를 시작으로 문단에 들어서신 한국 문단의 원로이셨던 분이십니다.

저는 구상 선생의 "구상" 이라는 시집을 읽은 후에 그 분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인사동에서 구상 선생을 뵙게 되었을 때 저는 무턱대고 그 분의 옆 자리에 앉아 버렸습니다.
평소에 너무나 존경하고 보고 싶었던 분이기에 그냥 아무 이야기라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상 선생은 그런 치기어린 청년의 수준에 맞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화가이신 이중섭 선생이 절친한 친구이신데
구상 선생이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이중섭 선생이 병문안을 오셨다는 이야기,
그런데 피차 가진 돈이 없어서 머쓱하게 뒷머리만 긁적이셨다는 이야기,
멋적게 "상아, 뭐가 제일 먹고 싶니?" 라고 물으신 후 구상 선생의 "천도복숭아" 라는 답을 들으시곤
이내 안주머니의 담배 갑에서 그 속의 은박지를 꺼내어 천도복숭아 그림을 그려 주셨다는 이야기,
그 천도복숭아는 우리 집 문 안쪽에 잘 걸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저는 문득 그 그림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막걸리를 한 잔 마신 터라 취기에 구상 선생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구상 선생은 초면의 객에게 흔쾌히 허락하셨고, 저를 댁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구상 선생은 어려서 폐질환을 앓으셨기 때문에 한 쪽 폐가 없으십니다.
그래서인지 몸도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그 분이 스쳐간 자리에는 뭔가 모를 향기가 남겨집니다.
마치 청명한 초가을의 삼림에서 풍겨져 나오는 싱그러운 힘처럼 느꼈습니다.

기실 이미 칠십이 훌쩍 넘으셨던 그 연세에
초면의 대학생 녀석에게 그렇게 친절하실 필요까진 없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분은 마지막 저를 배웅해 주시며
당신이 드시던 석류 알 몇 개를 봉투에 넣어 손에 쥐어주시기까지
내내 제게 향기를 뿜어 내셨습니다.

그 분 댁에 들어섰을 때
단아하고 정갈한 아파트 입구에 그 이중섭 선생의 천도복숭아가 걸려 있었습니다.
병상의 친구가 먹고 싶어 하던 천도복숭아를 돈이 없어 사 주지는 못하고
그림이라도 그려 위로를 하려했던 그 친구의 정성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심 부러움이 몰려들었습니다.
잠시였지만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퍼뜩 생각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그 두 분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그런 친구를 찾아 다녔습니다.

벌써 시간이 오래 지났네요.
새벽녘에 갑자기 구상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늘 허연 백발에 깔끔하게 다듬어진 수염,
바로 그 모습 그대로 그 분의 얼굴이 오롯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곤 잊었던 생각을 떠올렸지요.

'친구' 20 여년이 지난 지금 난 그 친구를 찾았는가?
그 생각과 동시에 어제 밤 읽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친구로 삼으셨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도 천도복숭아 그런 정도가 아닌 자기의 목숨을 나의 목숨과 맞바꾸고서도
끝까지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보호하고 이끌고 계신, 내게는 그런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내가 무언가 준 것도 없고, 친절을 배푼 적도 없고, 여전히 자격도 없고,
때로는 모르는 척 외면하기도 하는 이런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힘이 되는군요.

목회를 하다 보면 이모저모로 힘이 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가끔은 자폭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할 정도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큼 힘이 든 일이 있을까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목소리 높여 설교를 해놓고
정작 자기에게 붙여주신 원수를 향해 사랑의 손을 내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맛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진퇴양난, 그야말로 목사의 삶은 "전쟁" 입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제 안의 친구는 말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넌 절대 자폭하지 않아. 힘을 내" 하고
또 다시 나를 추스려 줍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그 친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 친구는 낯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내가 그에게 가겠다고 수차례 약속을 한 친구거든요.
여러분, 그 예수께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친구로 사귀어 보세요.
그 때 진정한 "이김" 의 삶이 무엇인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혹 지금 절망하고 계십니까? 혹 지금 실패의 눈물을 흘리고 계셔요?
아님 좌절의 쓴 잔을 마시고 계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을 진정으로 위하고 위로해 줄 친구를 찾고 계시진 않으세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친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집으로 가자 (42) 책상 위의 단상 - 김성수 목사님



학창 시절 저의 꿈은 작은 시골 마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고사리 같은 손들이 왁스로 광을 내놓은 마룻바닥 위에 
올망졸망한 책상과 걸상들이 놓여 있고,
오른 켠엔 열심히 발을 굴려야 하는 오래된 풍금이 있는 그런 초등학교 교실이
저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삼학 년 때인가요,
어느 봄 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
혼자 조용한 교실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시던 우리 담임선생님 모습을
복도에서 유심히 본 적이 있었습니다.

늘 청바지에 짧은 머리, 그리고 썩음썩음 한 오래된 클래식 기타를 교실 캐비넷에 넣어 두시고
아이들이 돌아간 뒤,
양희은의 노래며, 트윈 폴리오의 노래, 박인희의 노래를 나지막하게 즐겨 부르시던 
그 선생님 덕택에
저는 비로소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류의 노래를 벗어나 어른들의 노래를 알게 되었지요.

저는 그 선생님 책상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안 계실 때면 살짝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 책상에 앉아 보곤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 책상에는 늘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가져다 놓은
칠성사이다 병을 깨끗이 닦아 만든, 들꽃이 듬성듬성 담긴 꽃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 책상에서 내다 보이는 운동장 가에는 개나리가 만발했지요.
창가에는 커다란 버들가지가 풋풋한 향기로 새 봄의 소리를 속삭여 주고 있었고,
거기에 봄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이러한 평안과 안식을 어디서 또 맛 볼 수 있을까' 하는 조숙한 만족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언젠가 부터 저와 함께 노래하는 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선생님은 저에게 '들길 따라서', '모닥불', '한 사람' 같은 노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한두 번 들은 뒤 이내 선생님과 듀엣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빨리 노래를 배웠고요.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선생님은 늘 손수 흐트러진 아이들의 책상을 바로 맞추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사랑이 지극했던 그런 선생님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또 다른 감사함입니다.

지금 제가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 이 사무실 밖에도 야자수 나무와 이를 모를 꽃나무가 있습니다.
바람의 냄새도 그 때의 그 바람과 흡사합니다.
제 책상에는 '목사님, 힘내세요.' 라는 작은 카드와 분홍색 포장지로 예쁜 선물이 놓여 있습니다.
저도 가끔 기타를 잡고 찬송가가 아닌
그 때 우리 선생님과 불렀던 그리운 노래들을 나지막하게 부르곤 합니다.
그리고, 매일,
우리 교인들이 매주 앉아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당에 들어가 그 의자들을 이리 저리 만져 봅니다.

그 때 우리 선생님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선생님은 우리가 앉아 있던 그 책상과 걸상을 하나하나 맞추시며
'건강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씩씩하게 자라다오.' 라고 기도를 하셨을 거에요.

저도 우리 교회 식구들이 앉았던 의자며 여기 저기 두고 가신 주보와 성경책들을 정리하며
그 자리에 앉았던 부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꼭 우리 함께 천국 가게 해 주세요."

"거기 가서는 제가 이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 때는 정말 저도 책임감에 질끈 동여매었던 머리끈과 허리띠를 풀고
사심과 꽁수가 없는 허심하고 맛있는 이야기를 가슴 터지는 자유와 함께 나눌 수 있겠지요."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집으로 가자 (41) 진정한 위대함 - 김성수 목사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앤드루스는 그의 책을 시작하면서,
조슈아 로렌스 체임벌린의 말을 인용하여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사뭇 궁금했습니다.
"그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위대함은 어떤 행위와 관련된 것일까?"
아주 표면적으로 그의 위대함은 '전쟁',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것',
'학살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하루하루를 기뻐하는 것' 등의 상황을 통해 설명되어 집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런 '위대함' 을 습득하게 된 사람은 '백만장자' 의 미래를 얻는 것으로
그의 책은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앤드루스가 무슨 이유에서, 무슨 생각으로 인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인용한 바로 이 체임벌린의 말입니다.


"위대한 행동은 그 향훈(香薰)을 뒤에 남긴다. 위대함의 들판에는 그 여운이 계속 머무른다.
형태는 바뀌거나 지나가고 신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정신은 계속 머무르면서 영혼의 신성한 자리를 빛내어준다.
아주 여러 세대 전에 살아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또 우리를 알지 못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깊이 생각하며 인생의 심오한 꿈을 꾼다.
그리하여 그 비전의 힘이 그들이 알지 못하는 후대 사람의 영혼 속으로 흘러든다."

이 위대함의 향훈(香薰) ... 위대함의 들판에 남은 여운은 앤드루스에게는 무엇이었을까?
아니, 이 책을 수백 만 권이나 사서 읽고,
이 책을 격찬한 인간들에게
바로 이 향훈(香薰)은, 여운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저는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내내 궁금해 했습니다.
그 답은 '백만장자의 빌딩' 이었습니다. 정말 미국스럽지 않은가요?

저들은 '위대함' 을 생각하면, '돈이 쏟아지는 모습' 이 보이는 것입니다.
저들은 '거대한 빌딩을 소유한 한 인간' 에게서 '위대함' 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입니다.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로 대표되는 물질을 추구하는 모든 인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 사람들을 한 번 둘러 보세요.
우리는 언제든지 그 속에서
이 앤드루스가 말한 바로 그 미국적인 '위대함' 의 공감을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대함' 에 대한 정의는,
그렇게 화폐가 되어 후대 사람의 영혼 속으로까지 흘러 다니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영혼은 화폐다."

모든 인간은 가난을 두려워합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죽음' 이 두려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이미 죽어서 냄새가 풀풀 나는 썩어 문드러진 쥐새끼 같은 것입니다.
그 썩은 영혼에게 '백만장자의 빌딩' 은 기꺼이 ...
모든 것을 버리고, 팔고, 참고, 각오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도전할 만한 위대함인 것입니다.
모두가 그 두려움을 '자기를 치장하고', '자기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 으로 위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 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나를 비우고 내가 비워짐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이 유익을 얻고,
내가 비워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미소를 지으시는 그것이 바로 위대함인 것입니다.


미국적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정반대의 삶을 보신 적이 있나요?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작은 것에 행복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추켜세우는 그런 모든 것들을
그냥 시기와 질투가 없는 소박한 눈으로 담담하게 바라보며 지날 수 있는 그런 실력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집으로 가자 (40)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 김성수 목사님



아이의 죽음 앞에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은 다윗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를 합니다. 
그리고, 궁으로 돌아와 밥을 먹습니다.
참담하게 일어난 일로 왕의 훼상함을 걱정하는 신하들 앞에
다소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며 내어놓는 말이 '시방은 죽었으니' 입니다.
솔직히 뭐 이런 아비가 다 있습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입니다.

이 말을 보는데 마음이 아픕니다.
여기서 서둘러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긴 다윗의 믿음으로 넘어가지 맙시다.
나단의 지적에 두 번 고민도 없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를 고백한 다윗에 대해서도
너무 미화시키지 맙시다.

성경이 말하는 그 진의에 대해 몰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너무 성경 앞에서 거룩의 흉내를 낼 준비부터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 밥은 먹었겠지요. 살라 하시니까요.

죽음이라는 죄의 삯 앞에 성경이 내어놓은 인물들의 믿음을
그들조차 붙들려야 토해낼 수 있었던 말 따라 하기로 먼저 가지 맙시다.
이건 비극입니다.
가족의 붕괴를 가져오는 인간사 극한 슬픔이라는 것 앞에,
치고 들어와 장악하는 믿음의 간섭이 정말 그렇게 발휘되어 나오던가요?

하나님 찬양으로 우선하여 나오던가요?
사유되기는 커녕 기억에 요청한 적도 없는데,
내게 들어와 나를 장악하는 힘에 순순히 동의되던가요?

아벨의 죽음이 동산에서 쫒겨난 아담과 하와에겐 그 옛날 선악과에 손을 댔던,
아니면 손을 뻗어 생명나무를 탐했던 그들의 죄악에 대한 또 다른 징계로 보이진 않았을까요?
가죽옷을 입힌 하나님을 기억은 하고 있었을까요?
자식이 죽인 자식의 죽음 앞에서요?
주변인 모두의 사라짐을 경험하는 노아의 상실감은 어땠을까요?
그가 포도주에 취해 누워 잤다고 누가 비웃을 수 있나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나선 아브람의 인생이
이삭의 가슴에 칼을 꽂아야 하는 아브라함의 자리로 오기까지
험난하기로 치면 야곱에 비길까요?
사랑하는 아들과의 오랜 분리는 어미 리브가에겐 쓴 물의 경험입니다.
옥에 갇힌 요셉의 발리 착고에 상하며 몸이 쇠사슬에 매인 것은,
혼이 쇠사슬에 찍혀 정신이 나간 상태라 했습니다.
완성된 성도의 모습은 언제나 상징으로 주어지고 삶은 그 과정으로 질문을 던지며 몰아칩니다.

이 모든 인간의 트라우마를 잠식시키는 하나님의 의는 도대체 그 가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들의 사지를 찢어 나를 살리셨다는 그 은혜가 내게 체감됩니까?
언제부터 어떻게 지속적으로 고백되던가요?
간혹 터져 나오는 기쁨의 고백이
대부분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의 공격 앞에 무색해진 기억은 없으십니까?

그래서, 저는 밤을 세운 다윗의 기도에 먼저 마음이 갔습니다.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
먹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나의 죽음을 담보하여 내어놓는 것입니다.
나의 열심과 진정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응답은 '장자의 죽음을 내어 놓아라' 입니다.
모든 부정과 죄를 짊어지고 칠 일을 앓다 죽은 아이의 죽음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십자가가 내포된 그 죽음에,
그래서 다시 주신 생명으로 살아나는 솔로몬에게서 그 죽음이 위로될 수 있나요?
가슴에 묻는 겁니다, 자식은.
그리고 돌아서서 웃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내는 겁니다.
겨우 머리로만 이해되는 일에 다윗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밥을 먹었다고요?
그래요, 밥은 먹었겠지요.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한 일에 아니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순전히 받은 다윗!
물론 따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평생에 그 아이를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울었을 다윗이 더 좋습니다.
다윗이라면 그랬을 겁니다.

그가 하나님을 몰라 그랬겠습니까?
허락하신 솔로몬의 이름에서 여호와께서 사랑을 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인간의 반응 유뮤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분의 선포일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하고자 하시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인간의 사유와 감정의 무용함은 결국 살으라고 주어진 인생길 가는 동안
버려지거나 삭제될 일인 것만 알게 하셨습니다.
그건 믿음이라는 것으로 내게 부어져 알게 됩니다.
하지만, 죽어 완전한 몸으로 완료되기 전까지 나와 묶여 썩은 냄새를 내는 이 육의 결과들에
우리가 내도록 그렇게 담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린 비극에 먼저 노출되는 백성입니다.
이 땅에선 편히 웃을 수도, 웃을 일도 없는 자들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땅이 정의하는 희극도 비극으로 해섣되는 우리들이라 해서
이 땅의 비극이 다반사를 말하며 일반화 될 수 있습니까?
결국에 죄의 증상인 결과물들 앞에서 약속된 영원 속의 완전함을 보아낸다는 것이
살으라고 하시는 날 동안의 마음앓이에 무감해진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느 날 아침 말씀을 묵상한 후 기도를 하는 중에 이 죄라는 것에 치가 떨리며 울음이 터졌습니다.
점점 선명하게 보이는 죄의 실체 앞에,
그래서 정말 은혜가 아니고는 내가 살 방법이 없다는 사실 앞에
왜 그렇게 죽음이 떠올려 지던지요.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극에 달할 때 죽음이 함께 느껴지던 통증,
그 자리에서 부르짖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너무나 강하게 소망 되던 천국으로의 회귀.

그래서, 다윗이 일어나 하나님께로 갑니다.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하던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갑니다.
성경이 굳이 땅을 반복하여 말합니다.
인간의 열심과 노력이 완전히 부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죽음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앞에 그 생명력이 차압당한 것입니다.
그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으로 드러난 아이의 생명도 이미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아비의 애통은 하늘나라에서의 연합으로 위로됩니다.
살아도 그 소유는 하나님께로 속한 생명을 알라, 연합된 그 날을 기다리며
저에게로 가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살아난 아이는 죽음을 결과하는 이 땅에 올 수 없음을 안 것입니다.
보내진 솔로몬으로 아비는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살아도 죽은 자의 삶을, 죽어도 산 자의 약속을 가진 성도의 삶을, 그리고 저의 삶을 대입해 봅니다.
그 삶을 다윗이 살다 갔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들이 어떻게 갈 것인지 너무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겁이 납니다. 저는 못할 거니까요.

분연히 털고 일어난 다윗이 이 땅에서 행복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늘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다는 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밥은 먹겠지요. 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옷기도 하고, 울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아는 나의 결국은 '내가 그리로 가려니와 ...' 입니다.

너무나 오래 입어 줄이 없어진 바지르 입고도 전혀 그 입성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화려했던 시절의 옛 친구를 만나 예수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사람, 저는 그이를 사랑합니다.
넉넉지 않은 바지 주머니를 연신 만져 보며 어색한 여자 옷가게에 들러
오랜만에 사랑하는 아내의 치마를 고르며, 고생하는 아내에게 눈물겹게 고마움을 전하는
그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을 저는 사랑합니다.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파충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작은 도마뱀을 하나 사서 아이 앞에서 그것을 손에 올려놓고
좋아라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라보는 떨리는 아빠의 손을 저는 사랑합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아내와 차 한잔, 맥주 한잔을 놓고
'오늘도 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노라고'
도란도란 하루를 이야기하는 정겨운 그 모습을 저는 사랑합니다.


그게 진정 위대함인 것입니다.
미국에 살며 미국의 위대함에 젖지 않으려는 이 애씀도 역시 위대함일 것이고요.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집으로 가자 (39) 이별에 대하여 - 김성수 목사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정오의 그 따뜻한 시간을 지나면 중심을 거쳐 쓸쓸하게 변경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날 시내를 거닐다, 이렇게 밤이 되고 캄캄해지면
그 지나갔던 오후의 시간들이 꿈결 같다는 인상을 가끔 받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꾸는 꿈과 그 오후의 변경 모두는
두 번 다시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동류인지도 모르지요.
삶은 그렇게 꿈꾸듯 서둘러 변경으로 치달아 갑니다.

주변에서 많은 죽음들을 봅니다.
오랜 시간 감기인 줄 알고 방치해 두었다가 하반신 마비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친구도 있고,
어제 통화를 한 목사님이 책상에서 과로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떤 병사의 아버지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고,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것만 같았던 부모님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망연한 자녀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생명이 끊어지고 이별을 하는 것은,
그 시기가 빠르건 느리건, 우리가 맞닥뜨리는 또 하나의 자명한 시간들입니다.
그것들은 참 아픈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별이 너무 아프기에, 만남을 원망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이생의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해 무지합니다. 무관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에 설탕을 몇 스푼 넣을까를 고민하는 게 삶이기도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게 자신의 반쪽과도 같은 이와도 생이별을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자명한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
여전히 돌아서면 이생의 너머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궁극적으로 죽음과 소멸을 대면하지 않으려는 삶의 소소함은
매우 가볍거나, 알고 보면 대단히 이기적인 삶인 것입니다.

인생은 이생에 한 번 알뜰하게 주어진 축제이기도 하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한낮의 무대와의 이별이
다른 곳에서의 더 큰 만남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도의 이별은 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더 큰 만남, 아니 이 오후의 신기루 같은 만남들이 아닌 진짜 만남을
이 땅에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들을 이별로 끝장내지 않기 위해
나의 삶을 그들의 구도의 다리로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작은 예수로 성숙해 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별을 아파하기 전에 먼저 그 이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사색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크고 작은 이별 속에서 슬픔에 머물지 않고

가슴 설레는 기대와 소망 속에서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우리 성도들이기를 기도합니다.


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집으로 가자 (38) 아, 이 교회를 어찌할 것인가? - 김성수 목사님



한 사람이 교회에 다니면 적어도 다니기 전보다 좀 더 좋은 인간이 될 법한데
애석하게도 우리가 접하는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오히려 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대개의 교회에 분명히 이기심과 탐욕을 강화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물론, 이기심과 탐욕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기심과 탐욕이 무한정 뻗어 나가지 않을 수 있는 건
인간 내면의 다른 한편에 그걸 견제하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흔히 그걸 양심이라고 부릅니다.

제 아무리 이기심과 탐욕으로 똘똘 뭉친 인간도
이기심과 탐욕을 대놓고 자랑하진 않는 이유도 바로 그 양심 때문인 것입니다.
심지어 양심을 팽개친 지 오래인 인간에게도
양심의 기억은 남아 조용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교회가 그 양심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남보다 잘 되고 남보다 많이 갖는 걸, 그 과정이나 방법은 눈감은 채
'하나님의 축복' 으로 공인해줌으로써 견제되던 이기심과 탐욕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다면 양심(혹은 양심의 기억) 때문에 조금은 마음에 걸렸을 일도
교회에 다니면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나' 를 축복하셔야만 하고, 난 그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왜 그렇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해고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인간의 죄성을
교회가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오늘날 교회라 불리우는 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어디로 가 버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그 빌어먹을 '나' 만을 축복해야 하는 요술램프의 '지니' 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의 결실은
내 자아가 점진적으로 부인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더러운 자아는 점점 성장하고 있으니
어찌 주님의 보혈이 값으로 치러진 교회이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죽는 자는 없고,
주님의 죽으심으로 나의 위상을 높이려는 시도만이 충만한 이 교회 아닌 교회들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나' 를 주장하고,
도덕적인 정결한 삶으로 '나' 를 숭앙케 합니다.
봉사를 열심히 해서도 '나' 를 주목케 하고,
폼 나는 미소로 '나' 를 자랑합니다.

예수가 왜 죽으셨는지,
도대체 '나' 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였으며,
지금도 그 더러운 사랑의 이빨을 언제든지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이들이 없는
교만한 똥걸레들의 모임.

'아, 이 교회를 어찌 할 것인가 ...'


2013년 10월 9일 수요일

집으로 가자 (37) 울화통 터지는 날에 - 김성수 목사님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화평함과 거룩함을 쫒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로마서 12장 14절)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이것이 없으면 아무도 주를 못 본다고 하니...
분이 치밀어 올라 본 적이 있으시지요.
혹시 우리에게 일어난 그 현상이 그냥 누구에게나 있는 징후가 아니라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주 심각하게 여겨 보신 적이 있느냐 말이지요!

기분 나쁜 말이지만 꺼내야겠습니다.
우린 예수를 믿고 나서도 천사가 아니라 마치 독사 같습니다.
"누구든지 건드리기만 해봐라, 물어버린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은 여전히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죽이는 독입니다.
너무하다고요? 너무 몰아세우고 있다고요?

여기서 문제는 우리늬 분냄의 대상이 예수님조차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차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솔지히 얘기해서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이고 신앙을 내 열심으로 장악하고 있으니까
나의 분냄이 예수님과 무관해 보이지만,
막상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다고 본다면 그렇게 막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라"
기분 좋을 때야 이 말이 "아멘!" 으로 와 닿을지 모르지만,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일 때도 그러냐 말입니다.
"하나님, 제발 입 좀 다물고 계시지요!" 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라" 는 말은
"기분 좋을 때만 화평하라" 는 얘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 가슴이 답답해 오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아니고
'모든 사람' 과 화평함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그러한 요구를 하시는가?
화내는 우리 속에 뭐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나 외에 모든 것을 원수로 겨냥하고 있는 인간 세상에
뭔가 새로운 사건이 터졌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화평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일어났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아니,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다는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도 없는 외국인으로서 약속의 계약에서 제외된 채
이 세상에서 희망도, 하나님도 없이 살아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아 하나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 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 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빼도 박도 못하게 이미 설정된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화평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해시킨 장(場)에 들어와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분을 내면서, 울화통을 터뜨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모든 사람과 화평케 만들어 버리신 예수를 떠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또 면목 없는 눈물을 짓게 만드십니다.

화가 나시고 미움이 입어납니까?
그 몸동작이 단지 나의 가벼운 감정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화평케 만드시고 화평하게 살라고 요구하시는 예수님에게 대들고 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도는 화평의 장(場)에서 노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화평을 뼈저리게 확인받게 된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순간에라도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무언가가 마음 속에서 일어나시거든
나 때문에 분통 터지신 예수님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예수 믿는 것은 이렇게 힘이 듭니다.


2013년 10월 4일 금요일

집으로 가자 (36) 삶은 계란을 한 입 물은 채 울어보신 적이 있나요? - 김성수 목사님

 
 
제가 다니던 대학 근처에는 속칭 '난곡' 이라는 달동네가 있습니다.
이미 그 때도
재개발의 불도저 앞에 하릴없이 합판 쪼가리에 불과한 담들과 벽들이 많이 헐려 있었습니다.
그래도 갈 곳이 없어 그 철거된 집터에 간이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놓아 밥을 짓는
아낙네들의 슬픈 한숨이 썰렁한 북풍처럼 한기를 성큼 몰고 올 때,
저는 같은 교회 친구들과 함께 그 황량한 산동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비릿한 악취마저 풍기는, 그리고 여기저기서 악다구니하며 다투는 시장 아줌마들을 지나
산동네 골목에 들어서면 '훅' 하고 이내 냉기가 돌았습니다.
지저분한 옷차림의 아이들이 여기저기에서 흙장난을 하고,
골목에 누가 있는지 살필 새도 없이 설거지물을 홱 뿌리고 돌아서는
가여운 어느 어미의 마른기침이 한없이 슬프기만 한 그런 곳,
몇 걸음 올라가다 보니 한 아이가 여러 아이들에게 매를 맞고 있었습니다.

콧물과 먼지가 얼겨 붙은 얼굴에 빡빡 깎은 머리, 아마도 버버리 코트를 흉내 낸 듯 싶은
같은 문양의 낡은 잠바를 입은 아이가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입에는 삶은 달걀을 통째로 넣은 듯
계란 노르자가 침과 섞여 그 아이의 울음과 함께 스물 스물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섞인 삶은 계란을 입에 문 아이는
계속되는 아이들의 폭력에 전혀 대응을 하지 못하고 그저 엉엉 울고만 있었습니다.
이유인 즉은 맞고 있던 아이는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정신지체아였는데,
아이들이 먹고 있는 삶은 계란이 너무 먹고 싶어서 살짝 훔쳐가지고 달아나다가
그렇게 몰매를 맞게 된 것입니다.
몰매를 맞으면서도 그 삶은 계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 입에 다 넣어 버린 것이지요.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 신림동 산동네 야학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 동네에는 알코올에 중독이 된 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너무나 살기가 힘이 들어서, 맨 정신에는 도저히 하루를 다 감당해 내기가 힘들어서
그들은 취기를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빚더미,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해결되지 않는 무지,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풍성해지지 않는 먹거리가 그들을 절망케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서 나온 자식들이 정신지체아가 되어
또다시 그 부모의 삶을 답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삶은 계란 하나를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는 그 지경까지 추락하고 추락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누가 그들을 그 곳으로 몰아넣은 것인가?"

바로 '우리' 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과 그러한 상황들을 '신자'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들의 죄악이 만들어 낸 실체를
세상에 까발리시는 현장이 바로 그 곳입니다.

세상은 그러한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곧 마음 속으로 경멸의 소금을 뿌리지요.
'게으르고 무식한 인간들, 남들 공부할 때 뭐하고, 남들 일할 때 뭐하느라 저런 꼴이 된 거야?'
라고 재수에 옴이라도 붙을까봐 얼른 소금을 뿌리지요.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신림동 달동네 정도가 아니라 이글이글 타는 불길 속에서
삶은 계란은 커녕 혀 끝에 물 한 방울도 허락이 되지 않는 그런 곳에서
'영생' 이 허락된 하늘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 은혜를 실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맞다면,
우리 안에 이미 충만하게 자리잡고 있는 그 묵시 속에서의 은혜가
역사 속으로 튕겨져 나오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난하고 무식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은
바로 구원받기 전의 내가 쏟아 놓은 쓰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해자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위해 '나' 를 보호하고,
'나' 를 자랑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무언의 폭력을 휘둘렀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폭력의 현장에서 나의 주먹을 맞고 나의 몽둥이에 맞고 쓰러진 사람들이 바로 그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돌봐야 하는' 거룩한 의무가 부여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의무는 부담만 주는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저주 받아 스러질 뻔한 '나' 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 라는 인간은 오늘도
어느 찬바람 부는 골목에서 삶은 계란을 한 입 물고 낮선 이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던 그 아이처럼
영원한 결핍 속으로 던져졌을 거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013년 10월 2일 수요일

집으로 가자 (35) 왜 레퀴엠은 슬퍼야만 하는가? - 김성수 목사님



오래 전에 음악을 즐겨 들을 때 자주 들었던 음악이 레퀴엠이었습니다.
'진혼곡', 레퀴엠은 저마다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삶이 그리 명랑한 것만은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 명랑함만을 위장하여 쏟아내고 있는 위선들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을 앞당겨 생각해 보고 그 무서운 죽음을 달래주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음산한 레퀴엠을 들었던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지강현이라는 탈주범이 세상을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TV 에서는 지강현을 비롯한 탈주범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헬기로 중계를 하고 있었고,
공중파 3사가 그 탈주범들이 최후의 죽음을 맞이했던 그 허름한 집을 포위하고 있었지요.
그 때 그 야위고 그늘진 지강현의 입에서 단말마처럼 튀어 나온 말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꽂혀 버렸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는 놈은 죄를 지어도 변호사 판사까지 사서 무죄로 풀려나고,
돈 없는 놈은 아무리 가벼운 경범이라 할지라도 보호감호까지 십수 년을 썩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동생이 천문학적인 돈을 착복하고 엄청난 비리에 연루되어 수감이 되었다가
금방 감형이 되어 출옥하게 된 것을 꼬집어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탈주범들은 정말 배가 고파서 밥값을 도둑질한 사람,
술 마시다 시비가 붙어 싸움질하다가 들어 온 사람,
추석에 어머님 선물을 마련하려고 백화점에서 도둑질하다가 걸린 사람,
그야말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가끔씩이나마 쉽게 저지르는 사소한 죄로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울화통이 터졌겠지요. 왜 안 그랬겠습니까?

세상은 그렇게 억지 속에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억지에 대한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마저도 그 억지뿐인 세상을 고치시려 하지 않으십니다.
억울해서 미치겠는데도 하나님은 그 상황을 그저 보고만 계십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유리를 깨서 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목을 그었겠습니까?
'이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사람들 만들지 말라고,
돈 있고 언제든지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는 당신들이 우리 같은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좀 배려해 달라고'
그는 홀로 그 전쟁의 말미에 스스로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 때도 저는 레퀴엠을 들었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며 욕설을 퍼부었던 그 무리 속에서 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레퀴엠으로 그 죽음을 달래려 해도 그 처참한 영혼은 달랠 수가 없었지요.

그 죽음이 무엇을 바꾸었나요? 뭐가 바뀌었습니까?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한 사람이 피를 철철 흘리며
'우리 약한 사람들 좀 가만히 놔두란 말이야!' 하고 외치고 갔는데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세상은 그렇게 악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의 죽음을 선술집 안주거리로 밖에 생각지 않는 세상을 단면을 본 듯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억울함과 그 억지에 대한 분통이 제게서 떠나 갔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인간이 살다가 죽는 과정을,
그저 단순하게 세포와 물질 덩어리들이 결합이 되어 잘 구르다가
때가 되어 해체된다는 식의 물리 환원주의적 해석은
인간과 같은 생명과 죽음의 현상에 대한 해명에 있어서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 지식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영원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억울함이 그렇게 억울하지 않습니다.
분통 터지는 일들을 오래도록 붙들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울한 죽을들 앞에서 슬픈 진혼곡을 울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네요.

이 땅에서 아무리 슬프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은 찬란한 영광의 서설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성숙에 방법이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기에 이제는 레퀴엠이 식상하게 된 것이지요.

사는 게 그래요. 억울하시지요? 분통이 터지십니까? 고통스러우세요?
혹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이런 처참한 인생을 사는 난 이미 죽은 거나 방불해'
 
누구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신가요?
그 누구도 여러분을 위로해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레퀴엠은 여러분을 더욱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인도해 줄 뿐입니다.
 
그 때 슬픈 진혼곡이 아닌 하나님의 위로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끝까지 이기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