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6)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교제 (Fellowship)



지난 주일에는 "아버지와 두 아들" 의 비유인 누가복음 15장 11-32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하시는 회개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 비유의 출발점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들으러
나아왔는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는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며 수근거리는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백 마리 양 중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열 드라크마 동전 중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동전, 두 아들 중에서 잃어버린 한 아들, 한 아들 마저 초청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의 비유라고,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미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모든 성경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허락된 자에게만 알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며
말씀하신 것을 익히 아는 터라, 온갖 기도로 간구하며 한 절씩 읽어 나갔습니다.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나가 세상에서 허비하고 돌아 온 둘째 아들이나
아버지 말만 잘 들으면서 자기에게 돌아 올 그 무엇을 기대했던 첫째 아들에게는
초점이 멀어지게 되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만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만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영광, 예배, 찬송 등의 이야기들로 이어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쉬운 마음을 다음 만남의 기대로 대신하며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네 모두는 하나님을 알고 싶고, 하나님을 알아간다고 하면서도,
내가 첫째 아들일까, 둘째 아들일까 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됨을 깨달아 자기를 부인 당하여 아버지께로 돌아 온 아들을 보며
대견해 하고, 여전히 내 것 밖에 모르는 자기 영역에 집착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가 용서해 주실거라며,
자기를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모두에게 투영하여 어떻게든 나는 구원받은 자임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 비유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죄인들이 동시에 들었을 터인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둘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 받아 주시는 아버지만을 찬송하는 자와 앞으로 변화될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둘째 아들이 그 후로 또 다시 세상으로 나갔는지,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초청에 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아들, 그 아들에게 반응하는 자에게만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아들을 알고싶어 하는 마음, 그 아들과 함께 돌아 온 상한 심령,
그 아들에게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찬송과 예배가 모두
아버지의 은혜로 격발된 것임을 아는 자만이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만을 당신의 자녀로 창세 전에 택정하셨습니다.

그런 사실이 정말 나에게 주어진 현실임을 알아가게 되는 자들이,
둘째 아들처럼 해피 엔딩이기를 바라거나 첫째 아들처럼 슬픈 비극이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자기 판단과 자기 확신들을 어떻게 내 놓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회개는 원래 처음의 자리로의 회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네 인간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나갈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한 순간이라도 부어지지 않으면 곧바로 하나님의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갈 나 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의 육체가 죽는 그 순간까지
회개는 멈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신 하나님의 은혜, 모든 역사를 아우르는 십자가의 은혜가
나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를 자각하게 하십니다.
육신이 죽어 내가 멈추는 그 때가 진정으로 회개가 이루어지는 두 다리 쭉 뻗고 쉬는
안식일진대, 그 자리로 가기까지 참으로 험악한 인생의 여정을 거쳐야 하니,
죽을 만큼 힘듭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에게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풍성히 누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아버지만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아들의 자리에서 감격으로 부르는 노래,
가장 더러운 발에 가장 귀한 머리카락를 대고 입맞춤하며 기쁨으로 부르는 노래,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워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아버지,

창세 전에 택정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새 이름, 성도(Saint)
오직 아버지만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힘써 모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교회,
약속있는 첫 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원으로

여기시는 은혜,

세상과 나는 간 데 없고, 구속한 주만 영원하도다!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산상수훈 강해 (22) 간음하는 자들에게 써주신 이혼증서 (마태복음 5:21-32)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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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1-32)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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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5)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연합, 영원 (Everlastingness)


샬롬,

지난 주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출애굽기 20:12)
""Honor your father and your mother,
so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the LORD your God is giving you."

여기서 이 말씀이 정말,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오래토록 살게 해 준다는
말인가요? 정말 그렇다면,
성경 안에는 우리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독려하는 그런 내용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닐 것 아닙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성경은 그런 내용을 일 점 일 획도 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에도 진리가 담겨져 있으니, 표피만 보지 말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진리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단 말입니까?


한 자씩 어근과 어미를 파자해 나가니까,
어렴풋이 다섯 번째 계명이 말씀하는 진의를 알듯 합니다.

"네 생명이 길리라" 에서 "길다" 의 long 은, everlasting 곧 변함 없는, 변하지 않는,
영원하다는 의미이고,
"너에게 준 땅" 에서 "주다" 라는 giving 은, 값을 치른, 쏟아 부은, 제공한, 이라는
의미
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 land 는, 시간 너머 있는 나라 혹은 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후반 절을 풀어 쓰면,
"주 너의 하나님이 값을 치르시고 너에게 쏟아 부어 주시고 있는 시간 너머의 나라에서
영원으로 변함 없이 살게 된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는 근거는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여기서, "공경하라" 로 번역된 honor 는, 자랑하다, 영화롭게 하다 라는 의미이고,
"부모" 라고 번역된 단어는 "아버지와 어머니" 인데,
접속사 and 는 "카히" 로서 또한(also), 마찬가지로(likewise) 라는 의미입니다.
파자해 보면 "아빠 곧 엄마, 그 엄마는 가족의 종(as bond of the family)" 입니다.

여기서 쓰인 "아빠와 엄마" 라는 단어가, 창세기 2장 24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가운데 당신을 계시하신 모습이
창세기 1장 26-27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 곧 남자(자카르)와 여자(네카이바)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26-27)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그 모습을 창세기 2장 21-24절에서 다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자(man, 이쉬)가 부모(his father and mother)를 떠나 그의 아내(woman, 이솨)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4)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hey will become one flesh.

여기서, "한 몸" 에서 "한(one)" 은 연합한(united), 온전한(altogether) 이라는 의미이고,
"몸(flesh, 바사르)" 은 사람(person), 몸(body), 인류(mankind), 외음부(pudenda) 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의 본래 처음의 본질(휘포스타시스)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연합한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라는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것은 한 몸인 남자가
먹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가
한 몸인 그들을 둘로 분리시켜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전적인 타락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드러내는 구속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쓰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구원에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어떤 죄인에게
죄의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죄 선고가 내려져 버린 것입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리둥절한 죄인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의인으로 여겨짐을 받은 것이 못마땅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아들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원수인 자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찬송하는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 안에 죽은 흙을 연합시킴으로
하나님의 연합(페리코레시스)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자각한 자는
그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승리하신 하나님의 개선 행렬 마지막에 질질 끌려가는 전리품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오래 산다는 헛된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인과율에 따른 거짓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고 영화롭게 하는 그 자체가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 곧 하나님과 연합한 것이며, 영원한 신적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나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습이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나의 지금 모습이기에,
탄식과 애통이 동시에 터져 나옵니다.
 
당신의 아들의 피 값을 치르시고 구속하신 자가, 왜 하필 나 입니까? ...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날 사랑하냐고 묻는 나에게, 하나님은 나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너는 왜 날 사랑한다고 말하니? 네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네 봐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십니다.
"너는 항상 나를 잊어버리는 구나, 날 기억해! 그리고 나에게 어서 말을 해요."
 
주님,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하나요, 나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 ㅠ.ㅠ
그 첫 마디가 참으로 죽을 만큼 어렵습니다.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로마서 강해 (66)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로마서 6:12-14)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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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2-14)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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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8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4) 죽은 흙으로부터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Glory)


사람 안에서 잊혀져 있는 갈비뼈 하나가
사람의 반 쪽인 그분의 신부가 되어 한 몸이 되었네

온전한 한 몸과 쓸모없는 갈비뼈 하나

나는 예수님에게 쓸모없는 갈비뼈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분이 나를 당신의 피요 살과 뼈라 하시네

나는 예수님에게 있으나마나 한 반 쪽인 줄 알았는데
내가 없으면 그분도 없는 거라고 하시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몸을 천사들과 우리들에게 보이셨네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다!

두 손과 두 발에 못 자국이 나 있고
옆구리엔 뚫린 창 자국이 나 있네



죽임 당한 예수와 다시 사신 그리스도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걸 ...



이 세상 모든 것이 진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예수만이 진리요 그리스도만이 실체이신 걸 ...



이스트 없는 딱딱한 빵이나
갖은 향신료로 만든 부드러운 티라미슈 케잌이나
그 맛에 가치를 둔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혀를 지나고 나면 다 똑같은 것을 ...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건만
하나님의 땅은 변함이 없도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2012년 5월 17일 목요일

산상수훈 강해 (21) 간음하는 자들아, 양고기 카니발을 멈춰라 (마태복음 5:32)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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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2)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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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4일 월요일

로마서 강해 (65) 뱀독의 해독제는 뱀독이다 (로마서 6:12-14)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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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2-14)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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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1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3) 세상이 조롱하는 그 이름, 예수쟁이 (Christian)


(요한복음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그 진리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보여줍니다.

(요한3서 1-8)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이 글을 씁니다. 나는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신도들 몇이 와서, 그대가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그대의 진실성을 증언해 주는 것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신도들을,
더욱이 낯선 신도들을 섬기는 일은 무엇이나 충성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회중 앞에서 그대의 사랑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인데,
이방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와는 가까이 하실 수 없는 진리이신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7:16-17)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자리로 옮겨진 자들은 선과 악의 두 마음으로부터
자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어디서나 진리를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적용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은 진리 안에서 하나이므로, 그 어디에서나 나는 진리를 만날 수 있으니,
내가 그 어떤 것을 보든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
이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 그분만이 선과 악과는 무관하신 진리 그 자체이신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리 안에 거하는 거룩한 자들에게 모든 악에서 떠나라고 했지,
언제 악에도 진리가 담겨져 있으니 거기서 진리를 찾고 거기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습니까?

선이 뭔지도 모르는 우리네 죄된 인간들이, 선에서 진리를 보는 것은 따분하고
하기 싫으니까, 자기네들이 좋아하는 죄와 악에서 진리를 보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 안에서 진리를 만나기 보다는, 세상 안에서 진리를 만나겠다고
난리들 아닙니까?

그것은 자기네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자기 자신을 속이며 너스레를 떨고 있는
거짓말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네 인간 모두를 율법 아래 가두어 죄인임을 확증하셔서
하나님의 긍휼만을 찬송하도록 하셨는데,
우리는 모두, 나는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고,
말할 수 있는 입을 가졌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니,
이제 하산해도 된다고, 이제 세상에 나가 진리를 나누겠다고 자신한단 말입니까?

사도 요한이 그의 서신서에서 기뻐한 것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 그냥 별 일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가난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정된 당신의 자녀들에게
당신의 열심으로 그 진실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별반 다를바가 없는데도, 정말 저렇게 살아내는 이들이 있구나!"

우리는 옛 장막에 갇혀 새 장막이 내려오기를 탄식하며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옛 장막을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 장막에 의해 삼켜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앎으로 소유할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믿을 수는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이신 진리를 안다고, 그래서 소유하겠다는 시도 그 자체가
죄일진대, 진리가 보인다고 하산할려는 생각은 버리고, 진리 안에 거하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진리 안에 거하기를 즐거워 하는 자들을,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보여줍니다.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로 인해 각처로 흩어진 후에,
바나바와 바울은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모임을 가지며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가운데
많은 이방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부르며,
마치 조센징 처럼 비아냥 거렸습니다. "예수쟁이" 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별 일 없이 살았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세상이 이해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길과는,
다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조롱하는 그 이름,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산상수훈 강해 (20) 돌은 이미 던져졌다 (마태복음 5:31-32)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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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31-32)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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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6일 일요일

로마서 강해 (64) 산 자에게만 들리는 소리 '에바다'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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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10-11)

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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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일 목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2) 죄의 울타리 (Fold of Sin) 하나님의 울타리 (Fold of God)


샬롬,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자들이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로 이 세상에 태어나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상 풍속을 좇아 자기만을 높이고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습은 그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우리네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분의 은혜로 죄의 울타리에서 하나님의 울타리 안으로,
죄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져 버린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처음 주어진 원래의 신분으로 복귀되어 버린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때의 나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기쁨으로 인해
이 땅 위의 그 어떤 곳도 내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땅으로 여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울타리와 하나님의 울타리의 경계를 아직 모른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하루 하루 지내는 가운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이 보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보면,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죄들이 하나씩 스물스물 기어나오게 됩니다.

"아니, 이런 것도 죄란 말인가!"

그 때마다 죄의 울타리와 하나님의 울타리의 경계가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이것만은 죄가 아니라고 자신하던 나는 그 죄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 후로는 이리저리 마냥 뛰어 다니던 나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기 사작합니다.

차츰 죄로부터 자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는 건지 알게 됩니다.
죄의 노예로 죄의 울타리 안에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울타리 밖에서 의로부터
자유로웠지만,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죄로부터 자유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선한 삶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알아가는 순간 순간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의 의의 노예, 곧 온전한 자발적인 순종을 하는 자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 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입니다.

은혜스럽게도, 그 평화는 이미 묵시 속에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묵시 속에 완성된 평화를 소망할 수록 나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이제는 그 어디를 둘러봐도 죄만 내어놓는 이 땅을 한 발짝도 디딜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을 벗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압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즐기고 그 달콤함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어떻합니까?

그 어디를 둘러봐도 비상구는 보이지 않고, 점점 사방이 낭떠러지가 되어 버립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는데, 죄가 드러날 수록 사망이 나에게
입을 크게 벌립니다.
언제쯤 낭떠러지가 내 앞까지 다가오게 될까요?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안했는데 ...

이 모습이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네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죽음 앞에 직면하는 그 순간,
죄의 울타리와 하나님의 울타리의 경계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진리의 말씀이요 실체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울타리의 경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울타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가 죽어 함몰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햇살을 맞으며 눈을 뜨는 나는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봐도 하나님의 울타리 밖에서 나만을 높이고 나만을 자랑하는 역사 속 내가
이미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거하고 있는 묵시 속 나를 기대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나님께서 내일도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허락하시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만을 힘써 알아 가기를 원합니다.

(잠언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거니와"
"The path of the righteous is like the first gleam of dawn,
shining ever brighter till the full light of day."

(골로새서 1:10)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growing in the knowledge of God"

(베드로후서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동틀무렵 희미하게 그 빛을 바라보면서부터 마침내 한낮의 광명한 그 빛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찬송합니다.
 
 
 

산상수훈 강해 (19)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마태복음 5:31-32)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플레이버튼을 누르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31-32)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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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일 화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51) 하나님의 열심, 회개 (Repentance)



샬롬,

회개(메타노이아)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로부터 멀어져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가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 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할 능력이 없는
전적으로 타락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 회개를 이끌어내는 주체는 우리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양 같아서, 제각기 자기가 원하는 길로만 갈려고 하지만,
우리의 목자되신 한 분 그리스도는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울타리 안이 우리의 처음 자리임을 알게 하셔서 그리로 이끌고 계십니다.


마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받는 유산을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미리 상속받아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버린 둘째 아들 탕자와도 같이,
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는 집 나간 그 아들이 떠난 그 자리에서
반드시 그 아들이 돌아 올 것을 믿으시면서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에 눈을 돌려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떠난 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가장 좋은 것을 모두 잃어버린 후에야
자기의 처한 자리를 알게 됩니다.
마침내 아버지 집에서는 쓸모없는 것들을 위해 돼지들과 싸우고 있는
자기의 죄된 모습을 자각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가장 좋은 것, 내 안에 그런 내가 이미 주어졌지만,
나만을 높이고 자랑만을 일삼는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연한 순같은 나를 죽여 버리고 맙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직시하도록 오래 참으시면서 깊은 탄식으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자기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내가
아버지께서 주신 가장 좋은 나를 죽인 자임을 알게 되는 그 순간,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 더럽고 추한 쓰레기요 똥덩어리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불러 들이시기를 은혜로 허락하신
아버지의 열심의 산물입니다.

"아! 아버지가 보고 싶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 당신의 자녀는
세상으로 향했던 발 길을 돌려 두렵고 떨리지만 담대히 아버지의 집으로 향합니다.
비록, 아버지의 집에서 죽을지언정
자기 때문에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신 그 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
아버지는 가물가물 보이지도 않는 그 아들을 알아 보시고
부리나케 달려와 그 아들을 덥썩 감싸 안으십니다.

아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버지께 고백합니다.
"저는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저로 하여금 당신을 주인으로 부르게 허락하시고 
혹시라도 당신의 집 문지기 노예로
저를 써 주신다면, 그보다 더한 은혜가 없겠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일으키시며 말을 건네십니다.
"아들아!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내 아들로 여기지 않은 적이 없단다.
네가 그 어디에 있든지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인 것은 절대 변하지 않아!
나는 네가 꼭 돌아 올 줄 알고 나의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
나와 함께 집에 가자꾸나!"


나는 아담의 후손, 인간으로 태어나 하나님처럼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동안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의 발꿈치를 물어 피를 빨아 내 배만을 채웠
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곡해하던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를 죽인 것 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는 자들에게만 찾아오셔서 철장으로 머리를 박살내
죽여 버리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의 열심으로 당신의 집을 떠난 탕자에게만 허락하시는
상한 심령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아골 골짜기에 묻어 천국의 소망을 맛보게 하십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와서 편히 쉬라고,
당신의 아들 안에 충만히 부으신 안식을 즐거이 누리라고 하십니다.

세상 풍속을 좇아 살던 눈 먼 소경이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뜨면서부터 문득문득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그 때는,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죄로부터의 돌이킴,
곧 회개가 단 한 순간도 나를 놓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날려고만 하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절규하는 죽음의 순간일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세상으로부터 죽어 영문 밖에 버려진 그런 시체들을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덮어 다시 살려 부활의 첫 열매 안으로 동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한 당신의 열심으로 우리에게 당신을 설명하시고
계시하십니다.
창세 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에게
아담의 자손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 계시하신
당신을 기억하게 하시고
세상으로부터 발 길을 돌려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오게 하시는 회개를 반드시 이루고
마십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Union Christ)
반드시 당신의 아들에게 접붙여 당신의 아들의 거룩한 신부로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다다른 아들이 촉촉한 눈망울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곁에서 함께 살고 싶어요.
이제는 아버지가 사랑스러워졌으니까요. 
영원히 당신과 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입을 열어 다시 말을 건네십니다.
"나는 빛이요 생명이라! 아들아, 나와 함께 영원히 내 집에 거하리라!"

하나님 나라 안에서 누리는 평화,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