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0일 금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23) 관용 (Tolerance)



우리 그리스도인들 ...
그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길을 가는 이는 아무도 없네요.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과 친한 내가 나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우리 주님께서 폭력적으로 내 안에 새 마음을 심으셔서
세상과 친한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버렸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는 줄 알았었는데,
하나님의 열심이 세상과 친한 나를 철장으로 죽여가고 계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안에서 거듭난 나는 영원히 죽을 육신의 법에 갇혀 오늘도 탄식하지만,
부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새몸을 어서 빨리 덧입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내게 보여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있다고 믿어 줄께요" 라고
하나님을 조롱하지만,
성령님을 선물로 거저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도우미로 잘못 알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내 육신, 내 마음, 더러워서 더 이상 못 쓰겠으니, 내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세요" 라고
하나님을 자기 종처럼 부려 먹지만,
예수님을 선물로 거저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야 그 더러운 육신과 마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영원히 죽을 몸에 이끌려 예수 안에서 거듭난 내가 탄식하지만,
어서 빨리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덧입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소망 안에서 하나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의해서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지,
보는 것에 의해서 확인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게 되면 될수록 세상사람들과 부하뇌동하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가지 않는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소망 안에서 하나된 형제자매님들,
이 세상에 정처없는 우리 나그네 인생들이여!

힘내세요!
어리고 약함은 품어 주어야 하지만, 사악한 거짓복음과는 타협하지 마세요!
힘써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어 주세요!
예수 만을 의지하세요!

하나님께서 "봐! 저들이 내 자녀들이야!" 라고 하시며,
세상을 조롱하실 그 날을 기대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고,
그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2 Corinthians 5:1-7)

"Now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e live in is destroyed,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n eternal house in heaven, not built by human hands.
Meanwhile we groan, longing to be clothed with our heavenly dwelling,
because when we are clothed, we will not be found naked.

For while we are in this tent, we groan and are burdened,
because we do not wish to be unclothed but to be clothed with our heavenly dwelling,
so that what is mortal may be swallowed up by life.

Now it is God who has made us for this very purpose
and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Therefore we are always confident and know that as long as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way from the Lord.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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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6일 월요일

로마서 강해 (42) 살고 싶은 자들의 죽음과 죽고 싶은 자들의 부활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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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는 나이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또한 사라의 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23. "그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24.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로마서 4: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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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9일 월요일

로마서 강해 (41) 분노하라, 너의 역사와 너의 인생에 대해 분노하라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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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면 이러한 복은 할례를 받은 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10. 그러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그러한 인정을 받았습니까?
      그가 할례를 받은 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할례를 받기 전에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할례를 받은 후에 된 일이 아니라, 할례를 받기 전에 된 일입니다.
11. 아브라함이 할례라는 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2. 또 그는 할례를 받은 사람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할례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걸어간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15. 율법은 진노를 불러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로마서 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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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7일 토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22) 긍휼 (Compassion)


먼저,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 지파, 신약의 열 두 사도는
하나님의 교회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사마리아인에게도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곧 창세 전에 택정된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0:5-6)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오늘 날로 표현하자면,
"예배당에 출석하는 자들이 모두 성령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인 줄 아느냐?
그들에게 다가갈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내가 깨달아진 복음이 나의 의지와 능력을 동원하여 내가 소유하게 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마태복음 10:7-8)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갈 때,
세상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가야 그들이 복음을 믿을까요?
세상사람들이 이리의 모습으로 달려들 때 사자로 돌변해서 달려들지 말고
원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어린 양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 것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10:9-11)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세상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은 이리떼에게 보내어진 양과 같다고 하십니다.
또한, 그들에게 보내심을 받는 열 두 제자들도
그들과 똑같은 세상에게 맞아 죽은 무력한 양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모습입니까? 빌립보서 2장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은
선한 목자의 말씀, 곧 복음을 듣고 따라 나오게 되며, 복음이 생명의 향기로 다가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문전박대 할 것이고, 그런 자들에게는 복음이 사망의 냄새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12-14)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복음을 사망의 냄새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를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자기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인임을 폭로하여 그 죄인을 반드시 죽이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은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그런 죄인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 죽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못 보기 때문입니다.
열 두 제자들은 세상의 죄를 폭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세상사람들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0:17-18)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도저히 값을 수 없는 것을 거저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도 무언가 할 수 있는데 왜 은혜를 받겠습니까?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지!

(베드로전서 4:17-18)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럼에도, 죄를 죽이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기의 삶 가운데 자각하는 자들은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책망하시며 바르게 가르치시는
성령님을 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19-20)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인식하는 열 두 제자들도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마태복음 10:26, 31)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는 열 두 제자들이
자기에게 대접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저주하고, 극진히 대접한다고 해서 축복하겠습니까!
그럼,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을 "거짓교사, 적그리스도" 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세웠는데도
그들은 이방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방인에게 다가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습니다.

거기에 핍박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흩으심이 있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개만도 못하게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 그 사마리아 사람들조차 쓰레기로 여기던
남편을 자기의 힘으로 여기며 여러 차례 바꾸었던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그 사마리아 여인보다 조금 나아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았나요? 아닙니다.
우리의 그 어떤 능력과 재능으로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도 빠짐없이 품에 안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셔서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 지파, 신약의 열 두 사도로 예표된 하나님의 교회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났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내가 죽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서 "내가 스스로 복음을 전한다, 내가 성령님과 함께 복음을 전한다" 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죄인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지켜서 스스로 거룩한 자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거룩한 자로 성숙되어 간다고 스스로 여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은 쓰레기보다 못한 것이므로 은혜를 거부합니다.
오직 자기의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죄인에게만
값없이 거저 주신 하나님의 긍휼이 은혜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구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 가시는구나, 찬송하리로다!"

라는 고백만이 나올 것입니다.

2011년 9월 14일 수요일

세상을 살아가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 (21) 순종 (Obedience)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재능과 능력들이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악의 방법들로만 사용하게 되었는데,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이 죄만 짓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죄만 생산하는 죄악덩어리일 뿐일까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그 어떤 것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일까요?

혹자는, 우리의 외양으로 나오는 선한 것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배 열심히 드리고, 헌금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하루도 기도 빼먹지 않고,
상대방에게 열 번 화낼 것을 한 번으로 줄이고, 화 안내면 더욱 좋고,
자기를 숨기고 자기의 전부를 주어가며 이웃을 도와주는, 이런 일들이 고작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증거들이겠습니까?

과연,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과 불순종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무슬림들은 알라를 예배하는 것이 기준인가요?
"알라"는 "엘" 곧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슬림 그들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자기의 모든 소유와 자기 몸을 불살라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정작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고 몸부림치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는 이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에게 폭력적으로 침노하셔서 그 사랑을 심어주셨는데,
우리에게서 착한 일이 나오면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리스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2:20-2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자기 안에 심겨진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자기가 어떤 죄인인지 자각하지 못할 것이고, 죄를 멀리한다는 의미도 모를 것이고,
자기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력이 어떻게 회복되어져 지금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는지 조차
모를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일 주일에 예배를 몇 번 드리고, 헌금을 얼마나 많이 하고,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들을 빼먹지 않고 이웃을 얼마나
열심히 섬기는 가에 대해서 집중하기 보다는
날마다 자기 내면에서 폭로되는 자기만을 향한 왜곡된 사랑, 곧 죄를 직시하고
죄인임을 자각하여 하나님께서 값없이 거저 부으시는 긍휼을 더욱 간구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폭로되는 죄를 자기 스스로 상쇄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죄를 우리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자기 안에 그 사랑이 있는 자들은 자기의 죄를 폭로시키는 하나님이 사랑스러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내기 위해 열심을 내게 됩니다.
외양적으로는 그 열심이 세상사람들의 열심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도,
왜 세상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을까요?

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이 내놓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죄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성령 받은 자인가를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자들은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헤매고 다니지만,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와
내가 정말 물과 성령으로 세례 받은 자가 맞는지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그 삶이 날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예수님을 좇는 믿음의 삶일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들이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12-18)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로마서 강해 (40) 하쿠나 마타타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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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면 육신상으로 우리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6. 그래서 행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사람이 받을 복을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7. "하나님께서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 주신 사람은 복이 있다.
8. 주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해 주실 사람은 복이 있다."

(로마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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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4일 일요일

로마서 강해 (39) 문둥병자들아, 너희를 비추는 거울을 똑똑히 보라!




남가주 서머나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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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22.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24.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25.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지금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다고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7.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
28.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29. 하나님은 유대 사람만의 하나님이십니까? 이방 사람의 하나님도 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방 사람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30. 참으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은 사람도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31.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로마서 3: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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